[편집자주]
이 기사는 2011년 06월 24일 09:0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증권사 콜머니 규제’, ‘김치본드 발행 억제’, ‘신용카드 경쟁 억제’.
굵직한 신용규제 정책이 연이어 발표되고 있다. 그래도 금융시장의 반응은 담담하다. 정책에 공감해서나, 무관심해서가 아니라 좀처럼 어떤 판단이 서지 않는 것 같다.
같은 시기에 나온 정책들이지만 배경과 목표가 서로 다르다. 각각 단기자금시장, 외환시장, 신용카드시장의 안정화를 겨냥하고 있다. 하지만 결국은 신용시장으로 효과가 파급된다. 그렇다면 회사채 시장에는 과연 어떤 영향을 미칠까?
◇ 증권사 콜머니 규제
증권사 콜머니(이하 ‘증권콜’) 규제는 전체 콜머니의 약 40%를 증권사가 쓰고 있는 ‘이상한’ 현실에 대한 우려를 반영한다. 지준 기관이 아닌 증권사가 콜시장을 좌지우지하면서, 이를 통해 자산운용을 폭발적으로 확장하는 상황이었다. 단기금융시장의 쏠림이 부주의한 성장과 위기 대응력의 훼손으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구조였다.
단순한 가설이 아니다. 2008년 4분기의 실제 상황이다. 외부 충격, 대형 손실, 규제 강화가 일부 증권사의 자금수급을 경색시켜 급기야 긴급 자금지원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래도 한동안은 규제조치가 없었다. 지급결제의 본류가 아닌 주변시장에서의 일과성 이벤트로 치부된 것이다.
하지만 자통법으로 증권사의 업무범위가 넓어지고 위기 이후 금융시장에서의 비중이 커지면서, 증권사 단기자금 흐름의 왜곡을 더 이상은 방치하기 어렵게 되었다. 처음에는 자기자본의 100%에서 방화선을 모색하다가 증권콜의 비중이 더욱 올라가자, 자기자본의 25%로 방화선을 끌어올렸고 아예 전면적인 차단까지 논의되고 있다.
돈에 꼬리표가 없으니 증권콜의 용처를 특정하기는 어렵다. 콜머니 자금으로 고금리 상품을 운용하는 과감한 차익거래까지 있었다지만 상식적으로 그리 큰 규모는 아니었을 것이다. 너무나 뚜렷이 드러나는 반칙은 막상 큰 위협이 되지 않는다.
반면 최근 빠르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투자은행 업무가 콜자금에 대한 의존도를 높였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자통법 도입 이후 우리 증권사들에 나타난 가장 큰 변화는 자기자본투자(PI)와 종합자산관리계좌(CMA)다. 이를 바탕으로 단순한 유가증권 중개업무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자금을 모으고 유가증권 투자에 나서고 있다.
새로운 지평이 열린 만큼 변동성도 커졌다. 하지만 체계적인 리스크 관리와 고객 관리보다는 인수순위나 자산규모와 같은 외형경쟁이 우선이 되었다. 언제든지 대규모로 값싼 콜머니를 끌어와 변동성에 대처할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런 요령과 틈새전략에 마냥 의존하기에는 판이 너무 커져 버렸다.
이제 콜머니에 고삐가 걸리면서 콜머니의 ‘일부’가 CP나 회사채로 전환되는 조달구조의 변화도 나타날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변화는 투자은행 본연의 모습을 갖춰가는 질적 성장에 있다. 투자은행으로의 발걸음이 잠시 더뎌지는 것이 답답할 수도 있겠지만 빨리 가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양적 확대에 급급한 도금시대(Gild age)에서 차별화된 서비스로 경쟁하는 황금시대(Gold age)로 한 단계 도약해야 한다. 사고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 김치본드 발행 억제
대외의존도가 높고 금융시장의 개방도가 높은 우리나라에서 외환시장의 안정은 절대적인 우선명제다. 근자에는 특정 수준의 환율에 집착하기 보다는 변동 폭의 안정에 더 크게 신경을 쓰는 눈치다. 최근 단기외채 이슈가 부각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이제 세계경제를 움직이는 힘은 교역이 아니라 자본이동이다(Capital movements rather than trade have become the driving force of the world economy).” 몇 차례의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확인된 Peter Drucker의 통찰(“The changed world economy”, 1986)이다.
국제적 단기자본이동을 억제해야 한다는 공감대에도 불구하고 어느 나라나 구체적인 조치에는 매우 신중한 것이 현실이다. 국제 금융자본의 영향력도 작용하고 있겠지만, 그보다는 경쟁력과 효율성을 일정부분 포기해야 하는 것이 그리 쉽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단기외채는 성격상 크게 3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가장 규모가 큰 것이 각종 헤지 거래에 따른 선물환 관련 단기외채이고, 가장 실물과의 연관성이 큰 것이 내국수입유산스(Usance)다. 마지막 하나는 그야말로 투기적 자금이다.
선물환 거래는 구조적으로 변동성이 크다. 계약과 만기 시점의 차액만 결제하는 NDF(Non Delivery Forward)로 레버리지가 큰데다가, 외은지점들이 장악하고 있어 정책적 조율에 한계가 있다. 또한 거래위험을 헤지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위험이 증폭될 가능성까지 안고 있다. 기본적으로 내외금리차를 이용한 재정거래이기 때문에 투기적 거래와 구분하는 것도 용이하지 않다.
당국이 최근 명백한 외환수요가 없는 경우 김치본드 발행이나 해외채권 발행을 제한하려는 것도 주로 이러한 선물환 관련 단기외채의 증가를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더 위험한 것은 실물과의 연관성이 큰 Usance(수입금융)가 아닐까? 지난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당국은 Usance 자금으로 170억불 이상을 국내 은행들에게 지원했다. 중앙은행간 통화스왑 인출금액과 맞먹는 규모다.
선물환 거래나 투기적 거래는 환율의 변동성에만 영향을 미치지만, Usance 자금은 해당 기업과 은행의 신용이슈로 이어진다. 물론 유사시에 지난번처럼 당국이 충분히 외환을 공급하면 된다. 하지만 비약적으로 수입자금 수요가 확대되는 상황에서, 당국이 책임진다는 도덕적 해이까지 겹치면 과연 어떻게 될까? 갈라파고스의 코끼리거북이가 그랬듯이 몸집을 키우다가 어느 날 중대한 운명의 기로에 서게 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원자재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기업은 포스코다. 그런데도 포스코는 대부분의 달러를 Usance가 아닌 해외 장기회사채 발행으로 조달한다. 글로벌 시장에서 통하는 신용도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포스코도 장기 회사채 금리가 단기 Usance보다 낮기는 어렵다. 그래도 감수한다. 안전을 위한 비용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원자재 수입자금을 단기외채에 의존하다가 글로벌 금융경색에 휘말리면 난감한 상황을 맞을 수 있다. 이미 우리 은행들이 보호할 수 있는 몸집이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그런 취약한 체질로 글로벌 기업들과 대등한 거래를 할 수 있겠는가? 글로벌 수준의 리스크 관리가 필요한 이유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홀로 설 수 없는 기업들은 아무래도 은행의 우산아래 깃들어야 하고, 그만큼 은행의 어깨는 무거워진다. 그래서 이런 국내판 대기업들을 위한 공간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김치본드 시장이다. 김치본드 시장은 훌륭한 인큐베이터요 징검다리다. 실력은 있으나 경륜이 부족한 우리 기업들을 위해 안마당에 멍석을 까는 것이다. 이렇게 잘 키운 김치본드는 Usance 과잉의존을 완화시켜 준다. 대기업들의 원자재 수입자금은 장기 안정화되고, 은행도 단기외채 부담이 가벼워지는 것이다.
외환수요가 없는 기업까지도 힘들여 외화채권을 발행하려는 이유가 무얼까? 규모는 작고, 변동성은 큰 국내 금융시장에만 의존할 수 없는 ‘연못 속의 고래’들에게 자금조달경로의 다양화는 절대적 생존전략이다. 하지만 주로 부각되는 것은 저금리 요인, 내외금리차다.
원론적으로 효율적 시장에서 내외금리차는 환율변동으로 해소된다. 하지만 현실 시장에는 이런 저런 제약요인이 있고, 그래서 적절한 정책 조합이 필요하다. 그 하나가 국제적 자본이동에 대한 부과금(Bank levy), 부문간(예를 들어 국내은행과 외은지점 등)의 규제 차이 축소 등을 통해 가격유인을 줄이는 것이다. 이러한 가격유인 축소정책은 직접규제에 비해 상대적으로 예측 가능성이 높아 시장교란이 적고, 장기성장동력을 훼손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보다 시장 친화적이다.
김치본드 발행 제한이 회사채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무조건 부정적이다. 물론 풍선효과로 일반무보증 회사채 발행이 어느 정도 늘어나겠지만, 이는 단순히 원화사채만 집계하면서 나타나는 착시일 뿐이다. 기업의 외환수요가 다시 Usance로 돌아가는 퇴행을 잊으면 곤란하다. 질적인 측면의 발전이 지체되는 것뿐만 아니라, 양적인 측면에서조차 마이너스다.
◇ 신용카드 경쟁 억제
당국이 전면적으로 신용카드 경쟁억제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전면적이기에 오히려 초점이 분명하지 않다. 카드채 발행한도 특례 폐지는 이미 상법개정으로 회사채 발행한도가 없어진 상황이고 카드사들의 레버리지도 그리 높지 않아 큰 부담이 없다. 영업활동에 대한 검사 강화도 카드위기 이후에 강화된 시스템을 감안하면 의미가 퇴색된다. 더욱이 지난해 후반 치열했던 카드사간 경쟁도 당국의 경고 이후 상당히 수그러들었다. 업계에서도 크게 긴장하기 보다는 그냥 합리적 조정국면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사실 카드사들의 펀더멘털은 지난 2003년 카드 위기 당시와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개선되었다. 레버리지, 연체율 등의 핵심관리 지표는 물론이고 성장률 및 유동성 리스크 관리도 현저히 좋아졌다. 경쟁강도도 당시에 비할 것이 아니고, 당국이 철저하게 관리 감독하고 있는 점도 고무적이다. 그렇다면 신용카드에 특정한 정책이라기보다는 종합적인 가계부채 대책의 일환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가계부채 문제는 상당히 복합적이다. 우선 상기해야 할 것은 우리가 상대적으로 금융위기 극복이 빨랐다는 점이다. 펀더멘털도 비교적 양호했지만 무분별한 디레버리징을 억제한 것이 특히 주효했다. 자연히 부동산 가격 하락도 크지 않았다. 우리나라 가계의 자산구성에서 부동산의 비중은 80%를 상회한다. 주택담보대출의 LTV와 무관하게 부동산 가격 변동에 민감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건설당국은 주택임대업 활성화로 주택과잉공급 문제를 풀자는 입장이다. 하지만 가계부채 이슈가 두드러진 상황에서 신용규제 완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당연히 은행들이 공격적 확장전략으로 전환할 가능성도 낮아진다.
우리나라 회사채 시장의 가장 큰 특징은 마이너 시장이라는 점이다. 어떤 내부요인보다 은행 대출 동향이 미치는 영향이 크다. 더욱이 우리 회사채 시장은 건설부동산 신용이슈와도 거리를 두고 있다. 결국 가계부채 이슈가 부각되어서 잃을 것보다는 반사이득이 크다.
다만 캐피탈 채권은 다소의 변화가 예상된다. 상대적으로 시스템이 정비된 카드사와 달리 캐피탈사들은 규제 강화의 영향이 크다. 가계대출 비중이 큰 캐피탈사들은 더욱 그렇다. 물론 작금의 신용도가 상당부분 모기업의 지원역량에 기대어 있는 만큼 당장 영향을 받지는 않겠지만, 일부 재평가 가능성은 열어두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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