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이 기사는 2011년 08월 10일 09:4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이탈리아 경찰이 평가사 사무실을 압수 수색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S&P는 미국의 신용등급을 AA+로 끌어내리고, 세계경제는 다시 금융위기 모드로 들어갔다. 잠깐 사이에 평가사가 동네북에서 태풍의 눈으로 돌변한 것이다.
평가사의 이기주의나 음모론 같은 말장난에 휩쓸리지 말자. 평가사의 본질과 우리 속의 악마를 돌아보는 냉정한 성찰이 더 필요한 시점이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심사위원
요즘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대세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사이사이에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심사위원 또는 전문가 패널의 역할이 재미있다. 엄정한 심판이 아니라 치어리더에 더 가깝다. 전문성을 바탕으로 날리는 매서운 비평도 기실은 절묘한 추임새다.
낮은 단계에서의 교통정리는 심사위원들이 담당하지만 상위단계에서의 최종적 결정은 관객이나 온라인 투표에 맡겨진다. 더욱이 대중과 전문가들의 판단이 확연히 다른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당연히 대중의 판단이 옳다. 아니 최종적이다. 그러면 대중과 다른 견해를 펼친 전문가들은 자질에 문제가 있는 것인가? 프로그램에 출연한 전문가들의 역할은 대중의 뜻을 미리 읽는 것이 아니다. 시청자들의 이해와 몰입을 돕는 것이 그들의 역할이다. “나만 가수다!”는 최고의 추임새였다. 가슴 속 울림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증권사의 신용평가
요즘 증권사들은 그 어느 때보다 신용분석 역량 강화에 열심이다. 당장의 영업적 수요 때문이지만 증권사들의 시선은 더 먼 곳을 향하고 있다. 본격적인 투자은행 시대를 대비한 장기 포석에서 크레딧 리서치 역량 확보는 절대로 빠질 수 없는 옵션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직 미래는 불확실하고 현실은 팍팍하다. 불과 몇 명의 인적 자원으로 온갖 신용이슈에 전천후로 대응하고 있는 것이 증권사 크레딧 리서치의 현주소다. 회사채 시장의 부가가치 창출능력이 제한적인 우리 현실의 한계다.
한계가 있으면 도전은 더욱 빛나는 법이다. 회사채 발행절차 정상화를 위한 다각적인 모색과 새로운 시장 창출을 위한 영업현장의 분투가 있다. 그리고 자원활용의 극한을 넘나드는 리서치 서비스도 눈부시다.
그런데 의욕이 넘치는 것인지 증권사가 신용평가에 도전한다는 식의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증권사가 신용평가를 대체할 수도, 그럴 이유도 없다. 증권사는 언제나 고객지향적이고 수급과 분위기에 훨씬 더 예민하다. 구조적 측면에 치중하는 평가사보다는 이슈대처 능력이 탁월하다. 그래서 투자자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다. 구태여 평가사의 무거움까지 짊어질 이유가 없다. 악어새는 악어의 이름을 시샘하여 날개를 버리고 딱딱한 등껍질을 얹지 않는다.
◇평가사의 존재이유
파티가 한창일 때 접시를 빼는 것이 중앙은행의 역할이라고 한다. 경기의 순환적 성격을 강조하는 측면도 있지만, 그보다는 무리한 성장 드라이브를 견제하여 물가안정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미가 더 강하다. 신용평가도 이런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가속도가 붙은 쏠림을 가로막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중앙은행과 평가사에게 권위가 필요한 이유다.
몇 개월 사이에 두 개의 평가사에서 비슷한 주제로 상반된 내용의 보고서가 나왔다.최근 대단한 성과를 올리고 있는 우리 기업을 글로벌 상위기업과 비교한 보고서다. 한쪽은 영업실적을 중심으로 격차가 줄었다는 입장, 다른 한쪽은 재무역량의 차이를 강조하며 당장의 영업적 성과에 대한 상찬을 경계하는 입장으로 읽혔다.
같은 투자자라도 입장에 따라 선호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어느 것이 보다 평가사 본연의 자세에 가까운가? 치어리더는 본부석이 아니라 선수와 팬들에게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 잡아야 한다.
이번 S&P의 등급강등이 충격적인 것은 단순히 미국의 신용등급이 하락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미국 정치구조가 문제해결에 실패하고 있으며, 이것이 지속될 경우 상황이 더 나빠질 것이라는 냉혹한 현실인식을 부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S&P의 문제제기에 대한 최고의 채권투자자 Bill Gross의 화답을 살펴보자.
“이번 미국의 신용 등급 하락은 향후 몇 년간 영향을 줄 큰 사건이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미국의 경제적 부흥으로 이끌 작지만 긍정적인 신호의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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