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6년 03월 23일 07:5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알려진 것과 실제가 다르다 느낀 적 있는가. 미디어에 소개되는 맛집이 대표적인 경우 아닐까. 유명 식도락가의 품평, 파워블로거의 포스팅이 발길을 이끌지만 정작 먹어보면 '그저 그렇다'거나 '그럭저럭 한다' 정도지, 호들갑 떨 정도는 아닌 경우가 왕왕 있다.'무엇이 어떻다'는 식의 주관적인 평가가 절대적일 수 없다. 개인의 취향이나 선호의 기준이 다를 수 있고, 또 세월 따라 변하기 마련이니 말이다. 유행처럼 시대 분위기가 선호나 인식을 한쪽으로 몰아가기도 한다.
사모펀드(Private Equity)라면 '먹튀' 이미지부터 떠올리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IMF 구제금융 직후 망가진 시중은행과 기업들을 먹성 좋게 사들였다 몇배 차익을 보고도 세금 한푼 안내고 유유히 사라진 그 외국펀드들에 대한 기억이 뇌리에 선명하다. 당시엔 구조조정이란 미명 아래 많은 직장인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벌써 20여년이 흘렀다. 그 사이 국내 사모펀드 시장이 생겨나고 10년여 만에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금융당국에 등록된 사모펀드(경영참여형 사모전문투자기구)만 해도 320개가 넘고, 출자 약정액이 60조 원에 육박한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역외 PE펀드를 포함하면 시장 규모는 훌쩍 커진다.
어찌보면 기이하기까지 하다. 약탈자란 부정적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그 와중에 더 많은 사모펀드 운용회사(GP)들이 생겨났고, 펀드에 출자하는 기관투자자 군이 늘면서 펀드 사이즈도 점점 커져갔다. 지금은 펀드 운용규모가 1조 원이 넘는 국내 GP만도 10곳이 넘는다.
세간의 평가야 어떻든 '잘 되는 집'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경험적으로 보면 아무리 악플이 많아도 리플 한줄 없는 '듣보잡' 식당보다는 음식 맛은 더 있다. 대개 이런 경우 악플은 식당의 본원적 경쟁력인 음식 맛에 관한 것 보단 종업원의 불량한 태도나 청결성을 지적하는 경우다.
국내 사모펀드 시장이 이렇게 빨리 성장한 이유도 있지 않을까. 기존의 제도권 금융이 감당 못하던 위험자본, 성장자본의 기능을 대신해 온 것은 두 말할 나위 없다. 당장 드러나는 부분에 주목해도 긍정적인 현상들을 금새 찾을 수 있다. 가령 탄탄한 중소기업도 인재 구하기 쉽지 않은데, PE가 인수하고나선 대졸 신입사원 뽑기가 수월해졌다고들 한다. 사모펀드의 젊고 유능한 이미지에다 능력과 성과에 합당한 보상을 기대할 수 있다 여기기 때문 아닐까.
최근 정부가 발표한 '2015년도 고용창출 100대 우수기업' 명단에 사모펀드가 투자하거나 인수한 기업들이 다수 포함됐다. 이중 바디프렌드, 동양매직, 현대로지스틱스 등은 사모펀드가 바이아웃한 대표적 기업들이다. 청와대는 이들 기업의 대표들을 불러 고용 창출에 기여한 공로를 치하했다고 한다. 이 기업들에 투자한 VIG, 글랜우드, 오릭스 등 국내 바이아웃 펌들에게 진심어린 축하를 보내고 싶다.
이 같은 고용 창출은 펀드가 인수한 기업들이 성장 중에 있다는 것을 후행적으로 입증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닐지 모른다. 성장 상태를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해 신규 고용을 늘릴 필요가 있다 판단했을 것이란 뜻이다. 투자 수익 극대화를 최우선 가치로 삼는 투자펀드가 정부의 고용 정책에 부응하기 위해 성장이 멈추고 퇴행 중인 기업의 신규 고용을 늘리진 않을테니 말이다.
어쩌면 사모펀드의 실제 미덕은 '수익 추구'라는 목적의 선명성에 있을 지 모르겠다. 투자 수익을 위해 공장의 생산공정을 효율화하고 인재를 영입하는 등의 기업 가치 제고 노력에 최선을 다한다. 물론 세습된 오너 기업들 역시 기업 가치와 주주 가치를 제고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 중 하나일테지만, 목적의 선명성 면에서는 사모펀드를 능가하기는 구조적으로 어려운 게 사실이다.
이제 우리도 사모펀드의 '긍정적인 실재(實在. existence)'에 주목할 때가 된 것 같다. 사모펀드에 대한 과거의 부정적 고정관념이 경각심을 유지하게 하는 역할도 하겠지만, 사모펀드를 통해 우리 경제와 기업들이 얻을 수 있는 많은 좋은 효과들을 상쇄한다면 자승자박일 뿐이다. 일단 앞뒤 따져보지도 않고 사모펀드들에 대해 '먹튀'란 딱지를 붙이는 일부터 그만두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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