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시간 집중 포화' 이재용의 득실은 [기업총수 최순실 청문회]청문위원 공세에 몸낮춘 자세로 선방… 미전실 조기 해체는 부담
정호창 기자공개 2016-12-08 08:14:22
이 기사는 2016년 12월 07일 15:56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최순실 사태'의 여파로 6일 진행된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단연 화제의 중심에 오른 인물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사진)이다. 국내 재계 서열 1위인 삼성그룹의 총수 자격으로 청문회에 참석한 그에게 청문위원들은 날선 질문과 비판을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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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문위원 '무능력' 질타 vs 재계·법조계 '비교적 선방'
이번 청문회는 사실상 '삼성청문회'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청문위원들의 질의가 이 부회장에게 집중됐다. 오전 10시부터 밤 11시까지 13시간 가량 마라톤 청문회가 진행되는 동안 중계 카메라는 늘 그를 비춰야 했다.
청문위원을 맡은 국회의원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그에게 최순실씨와의 연루 의혹을 집중 추궁했다. 위원들 대부분은 국내 기업 중 최강의 정보력을 갖춘 삼성이 최씨가 비선실세라는 사실을 발빠르게 파악하고 조직적으로 금전지원에 나서 삼성물산 합병 특혜 등을 받았다는 선입관을 인식의 저변에 깊게 깔고 이 부회장을 거세게 몰아붙였다.
이 부회장은 "최씨 관련 자금 지원이 이뤄질 당시에는 보고를 받지 못했고 문제가 불거진 후 확인하니 부적절한 부분이 있었음을 알게 됐다"며 "드릴 말씀이 없을 정도로 국민 여러분께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어 "모두 제 불찰이며 향후에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모든 일에 더 신경을 써 국민 여러분을 실망시키지 않겠다"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청문위원들은 최씨 실체에 대한 삼성의 인지 시점과 해당 자금 지원 이유, 관련 실무 책임자 명단 등을 상세히 밝히라고 압박했으나 이 부회장은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해당 사안에 관여하지 않아 상세 내용을 알지 못하고, 검찰 수사에서 사실 관계를 밝혀야 할 사안이라 공개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위원들의 질타가 쏟아졌다. 중요 사안을 제대로 보고받지 못할 정도로 조직을 제대로 장악하지 못하고 있다거나, 아는 게 없는 무능력한 경영자이니 경영권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라는 비난도 나왔다.
하지만 재계와 법조계의 평가는 다르다. 대그룹을 이끄는 총수로서 조직 안정을 위해 최선을 다해 선방했다는 분석이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그룹의 연간 기부금 규모가 6500억 원이 넘는데, 총수인 이 부회장이 사안마다 보고를 받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이 부회장이 최씨 모녀 관련 지원 내용에 대해 알고도 모른척 했다기보단 정말 인지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청문회장에서 쏟아진 질타와 수모를 모두 감내하면서 모든 책임을 조직원이 아닌 자신의 불찰로 돌린 점 역시 잘 대처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법조계 관계자는 "헌법상 재판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무죄 추정의 원칙이 적용되는데 이미 유죄로 단정한 청문위원들에게 사안의 세부내용이나 관계자를 일일히 밝히면 나중에 큰 부담이 될 수도 있다"며 "현재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고 더 날카로운 특검 수사가 예정된 상황에서 이 부회장이 내놓을 수 있는 답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전실 해체' 결단력 빛났으나 어려운 숙제 떠안아
이 부회장은 청문회에서 최대한 낮은 자세를 취하긴 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국내 재계 서열 1위인 삼성그룹을 이끄는 총수다운 모습도 보여줬다. 전경련 탈퇴와 삼성 미래전략실 해체를 선언하는 장면에선 과감한 결단력을 드러냈다.
민감한 사안이기에 향후 검토를 약속하는 선에서 물러설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단호하게 전경련 탈퇴를 약속하고, 3대에 걸쳐 삼성그룹 총수 일가를 보좌해 온 전사적 콘트롤타워 미래전략실 해체도 전격 선언했다.
삼성그룹에 따르면 미래전략실 해체 발언은 사전에 검토하거나 준비된 사안이 아니라 이 부회장이 현장에서 내린 결단이다. 당초 삼성 실무진은 미래전략실 해체가 아닌 '조직 축소'로 방향을 잡아 이 부회장에게 보고를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는 청문회장에서 미래전략실에 대한 질타가 쏟아지자 좌고우면하지 않고 '해체'라는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대신 그와 삼성그룹은 큰 숙제를 안게 됐다는 게 재계의 중론이다. 삼성그룹과 같은 거대 조직을 운영해 나가는 데 있어 두뇌 역할을 하는 미래전략실의 전격 폐지는 지배구조 재편이 아직 완성되지 않은 단계임을 고려할 때 시기적으로 너무 이르다는 지적이다.
재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선대와 달리 미래전략실에 대한 의존도를 계속 낮춰가고 있어 조직을 꾸준히 축소 중이었고, 언젠가는 해체될 것으로 예상됐으나 단기간에 이뤄지긴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중론이었다"며 "이 부회장이 평상시 가져왔던 생각을 청문회를 계기로 정리해 선언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는 "온 국민이 시청하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약속한만큼 삼성그룹이 최대한 빠르게 미래전략실 해체 작업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나, 아직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갑자기 맞게 된 상황이라 내부적으로 혼란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시장에서 예상하는 것처럼 삼성그룹이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면 콘트롤타워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추진 과정에 상당한 시간과 자원이 소모되고 적지 않은 논란에 부딪힐 수 있다는 난제를 안고 있다.
이 때문에 관련 업계에선 삼성그룹이 미래전략실이 수행해 온 기능과 역할 중 꼭 필요한 부분은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등에 법적 근거와 실체를 갖춘 조직을 신설해 이전하는 방법으로 약속을 이행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삼성그룹이 최근까지 미래전략실 조직 축소와 기능 이전 등에 대한 준비를 진행해 왔던만큼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제시된다.
하지만 이 경우 삼성전자나 물산과 무관한 계열사들의 문제나 업무를 다루기 어렵다는 문제가 발생해 현재와 같은 일사분란한 그룹 통제가 불가능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대형 인수합병(M&A)과 투자 등 그룹의 미래를 설계하는 일에 차질이 빚어져 성장동력이 약화될 가능성도 있다. 시장에서 이 부회장과 삼성그룹이 어려운 숙제를 안게 됐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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