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리콥터 머니', 옥석 가릴수 있을까 [벤처 추경 1.4조②]운용 경험많은 대형사 중심될듯...무분별 배분, 벤처투자시장 '빙하기'
권일운 기자공개 2017-07-19 14:50:31
이 기사는 2017년 07월 17일 14:4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1조 4000억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 집행을 벤처캐피탈 업계는 '대목'으로 바라보고 있다. 4000억~5000억 원 안팎(중진계정 기준)의 출자금을 놓고 벌어진 경쟁에서 배제되기 일쑤였던 벤처캐피탈들에게도 모태펀드 운용사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했다는 점에서다.문제는 운용사 선정 과정에서 옥석 가리기가 가능할지의 여부다. 부실하거나 운용 실력이 뒤처지는 운용사에게 추경 예산이 배정될 경우 단순 '헬리콥터 머니'로 전락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1조 4000억 원이라는 유례가 없었던 천문학적인 자금을 짧은 시간 내에 적재적소에 배정될 수 있을지에 대한 벤처 생태계 전반의 우려가 증폭되고 있는 실정이다.
◇'헬리콥터 머니' 운용사 당 평균 100억원 이상
2017년 5월 말 기준 중소기업청에 등록돼 있는 창업투자회사는 총 118곳이다. 유한책임회사형(LLC)형 벤처캐피탈은 5곳이다. 신기술투자조합을 조성·운용할 수 있는 신기술금융사는 2016년 말 기준 31곳(전업 신기술금융사 기준)이다. 모태펀드의 잠재적 출자 대상이 될 수 있는 벤처캐피탈이 150곳 안팎이라는 의미다.
산술적으로 1조 4000억 원을 150곳의 벤처캐피탈에 모두 배정한다고 가정하면 93억 원 씩이 돌아간다는 계산이 나온다. 넉넉히 잡아 200억~300억 원씩을 출자한다고 가정해도 50~70곳에 출자금을 나눠줘야 한다. 하지만 모태펀드가 창업초기 부문 등에서 개별 운용사에 200억~300억 원을 배정하는 사례는 드물다.
복수의 벤처캐피탈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한국벤처투자는 이미 추경 예산 집행을 위한 사전 수요조사에 나섰다. 한국벤처투자가 모태펀드 추경 출자사업을 통해 결성하려는 자조합은 100개 안팎인 것으로 전해진다. 100곳의 운용사에 1조 4000억 원을 출자할 경우 140억 원씩을 배정할 수 있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벤처캐피탈 업계는 이같은 시장 상황을 고려, 벤처캐피탈 라이선스를 보유한 대부분의 운용사가 추경 예산의 수혜자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심지어 추가경정 예산 배정 시기를 앞두고 투자 경험이 풍부한 중견급 심사역들이 독립해 LLC형 벤처캐피탈을 설립하려는 움직임도 속속 포착되고 있다.
◇한국벤처투자, 옥석 가리기 가능할까
모태펀드 추경 예산이 창업 경기 부양과 이를 통한 일자리 창출의 기폭제가 될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상당수 시장 참여자들이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예산 집행 과정에서 적격 운용사를 골라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 부호가 붙는다. 중소기업청 등 관리감독 부처로부터 제제를 받은 운용사를 제한한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실력이 '그저 그런' 운용사에 모태펀드 자금이 배정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다.
모태펀드 운용 기관인 한국벤처투자 또한 이같은 리스크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비교적 트랙 레코드가 탄탄한 벤처캐피탈에 상대적으로 많은 출자금을 배정, 큰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려는 시도에 나섰다는 전언이다. 이 경우 벤처캐피탈 업계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존재한다.
앞서 출자한 모태펀드 자금과 중첩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한국벤처투자는 통상 모태펀드 자조합을 구성한지 2~3년이 지나지 않았거나, 해당 자조합의 소진율이 일정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곳에는 추가로 모태펀드 자금을 배정하지 않는다. 운용자산(AUM)을 늘리는 데만 집중한 나머지 앞서 조성한 펀드 투자와 사후 관리를 소홀히하는 일을 막기 위해서다.
최근 수년 사이에 비슷한 콘셉트의 모태펀드 자조합을 결성한 곳을 추경 운용사 선정에서 배제할 경우 가용할 수 있는 풀(Pool)은 더욱 좁아지게 된다. 한국벤처투자가 우수 운용사를 유치하기 위해 기존 출자금과의 중첩 규제를 일시적으로 완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 것도 이런 이유다. 하지만 중첩으로 인한 악순환 리스크는 상존한다.
◇벤처투자 시장 '빙하기' 발생 우려도
어쨌건 벤처캐피탈 업계는 추경 모태펀드의 등장 자체는 반기고 있다. 대신 산이 높은만큼 골이 깊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가 지금과 같은 출자사업 기조를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점에서다. 대규모 자금이 일시에 풀린 뒤 벤처투자 시장의 '빙하기'가 도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모태펀드는 꽤 오래 전부터 기존에 투자해 놓은 자금을 회수해 재투자하는 방식으로 운용돼 있다. 이번에 투입된 1조 4000억 원이라는 자금의 회수가 시작되는 시점은 아무리 짧아도 2~3년이 걸린다. 이 기간 동안 비슷한 방식의 모태펀드 증액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차기 정기출자 사업 규모는 급격히 축소될 수 밖에 없다.
결국 벤처캐피탈들은 이번 추경 예산을 따내기 위해 사활을 걸어야만 한다. 모태펀드 운용사 선정에서 고배를 마신 일부 벤처캐피탈의 경우 지속적인 생존을 장담하기 어려울수도 있다. 반대로 추경 예산을 배정받은 벤처캐피탈은 지속적인 관리보수 수입은 물론, 트랙 레코드도 확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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