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7년 09월 04일 15:2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투자자문사에 근무하는 A씨는 최근 시중은행에서 상장지수펀드(ETF) 신탁을 가입하면서 깜짝 놀랐다. 은행이 고객 신탁 계좌를 열어 ETF를 편입해주는 대가로 적지 않은 수수료를 챙겼기 때문. ETF는 증권계좌만 있으면 개인이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사고 팔수 있는 상품이다. 그럼에도 은행에서 ETF신탁은 투자 경험이 많지 않은 개인들을 대상으로 불티나게 팔려나가고 있다.

시중은행의 ETF신탁 판매가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국내 은행들의 ETF신탁 잔고는 8월 말까지 2조5000억 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KB국민은행이 약 1조6000억 원으로 가장 많고 신한은행, KEB하나은행, 우리은행 등 나머지 시중은행들도 ETF신탁 판매를 빠르게 늘려가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은행 ETF신탁이 상당히 비싼 수수료를 책정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운용보수가 싼 코스피200 ETF을 대신 매매해주고 수수료를 최대 2%씩 받고 있기 때문이다. 거래량이 많은 삼성자산운용의 코덱스 200 ETF의 보수는 0.16%, 미래에셋운용의 타이거 200 ETF는 그보다 더 낮은 0.05%에 불과하다. 은행들이 증권거래를 하지 않는 일반 개인들을 대상으로 과도하게 수수료를 챙기고 있다는 지적이 많아지고 있다.

◇코스피200 ETF 하나 편입해주고…수수료 2%

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국내 은행들의 올해 일평균 ETF 거래대금은 327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대비 77% 증가한 수치다. 은행들의 ETF신탁 잔고가 늘어남에 따라 거래가 더욱 활발해지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은행들이 ETF신탁을 판매하는 것은 수수료 수입이 늘어나는 것과 관련이 깊다. 보통 은행이 고객 신탁계좌에 편입하는 ETF의 총 보수는 0.05~0.30% 수준이다. 반면 신탁 판매 수수료는 1~2% 정도를 떼어간다. 일반 공모펀드를 판매하는 것보다 차익이 훨씬 커 은행들이 ETF신탁 판매에 적극 나서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 시중은행에서 판매중인 '○○코리아인덱스 ETF신탁'의 경우 적립식은 1.2%, 거치식은 2% 수수료를 매겨 가입자를 받고 있다. '○○코리아인덱스 ETF신탁'이 편입하는 자산은 삼성자산운용 'KODEX200'다. 'KODEX200'은 운용보수 등을 포함한 연간 총 수수료가 0.1611%에 불과하다. 신탁으로 떼어가는 최대 수수료의 10분의 1이 채 안되는 가격이다.

은행에서 판매하는 ETF신탁은 코스피200 지수 추종 상품 외에도 다양하다. 국내 상장 ETF 숫자가 300개를 넘어서면서 투자자 성향에 맞는 상품을 찾아 편입하기가 과거보다 훨씬 수월해졌다. 은행들은 주요 운용사 ETF 라인업을 펼쳐놓고 적당한 상품들을 골라 손쉽게 신탁으로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은행들의 ETF신탁 판매에 대해 비판을 제기하기도 한다. 증권 계좌를 열면 누구나 쉽게 거래 가능한 상품임에도 방법을 잘 모르는 개인들에게 비싼 값을 지불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개인고객 대상 고액 수수료 부과 논란

반면 은행들은 ETF신탁이 보수적인 은행 거래 고객에게도 투자 영역을 넓힐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고 보고 있다. 은행에서는 증권계좌를 열 수 없는데다 전문가가 검증해준 상품에만 투자하려는 고객들에게 은행 ETF신탁은 유용한 수단이라고 설명한다.

실제 은행들은 주기적으로 시장 변동을 추적해 매월 추천 ETF를 바꾸고 있다. 은행 내 전문가들의 분석을 바탕으로 해당 월의 가장 유망한 ETF 상품을 추천상품 리스트에 포함시키고 있다. 최근 1~2년 사이 ETF 상품이 다양해지면서 코스피200과 코스닥150 등 국내 대표지수는 물론 해외 주요국 지수와 각각의 테마, 섹터 지수 같이 다양한 영역을 커버할 수 있게 됐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시장 트렌드가 패시브(passive) 투자 쪽으로 확산되고 있고 이에 따라 ETF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면서 "별도 증권계좌 개설 없이 접근성이 가장 좋은 은행에서 쉽게 ETF 투자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시중은행 ETF신탁이 유용한 점도 있지만, 개인들이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수수료를 상당부분 아낄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ETF신탁은 은행들이 판매에만 공을 들일 뿐 고객별 맞춤 자산관리를 해주는 수단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도 많다. 은행이 고객들에게 ETF 개별 거래시 부과하는 수수료 체계에 대해 고지했는지 여부도 논란이다.

증권사 관계자는 "ETF는 거래소에 상장되어 있어 개인들도 누구나 쉽고 싸게 매매할 수 있는 상품"이라며 "은행들이 ETF 여러개를 활용한 분산투자 포트폴리오를 구축해주는 것이 아닌 이상 비싼 비용을 내고 신탁에 가입하는 것은 합리적 투자법이 아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