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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결합 심사를 묻다]'파킨슨 법칙' 예외가 있다? 심사 얼마나 더 표류할까②자료요청 기간 포함 안되는 최장 120일 '무용지물', 평균 288일...공정위 "연내 결론 내겠다"

박상희 기자공개 2021-11-01 07:45:08

[편집자주]

M&A(인수합병)는 ‘돈의 논리’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풍부한 자금력을 보유해도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면 무위로 돌아간다. 독과점 발생 가능성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기업결합 심사는 공정위의 존재 이유와 맞닿아 있다. 동시에 국내 기업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면서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심사가 필요하지만 동시에 경제와 산업 경쟁력을 고려하지 않을 수도 없다. 더벨은 아시아나항공과 대우조선해양 M&A를 중심으로 '기업결합 심사'라는 고차 방정식을 다면적으로 들여다본다.

이 기사는 2021년 10월 26일 16:0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파킨슨의 법칙(Parkinson’s law)은 관료조직의 인력, 예산, 하위조직 등이 업무량과 무관하게 점차 비대해지는 현상을 지칭한다. 이 이론을 정립한 영국의 해군사학자 노스코트 파킨슨은 각종 정부 위원회와 의회의 비효율성도 질타했다. ‘한 안건을 논의하는 시간은 그 안건에 포함된 예산액에 반비례한다’는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의 기업결합 심사가 기약 없이 표류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2019년 7월에 기업결합을 신청한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인수합병(M&A)는 2년 3개월째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기업과 산업은행을 비롯한 정부기관에서 공정위의 하세월 심사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파킨슨의 법칙이 공정위의 기업결합 심사에는 예외인 셈이다.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 결합 심사 2년 3개월째 결론 못내

국민의힘 윤창현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공정위 직원 1명이 평균 124건의 기업결합 심사 업무를 담당했다. 기업결합 심사는 2016년 646건에서 2020년 865건으로 5년간 꾸준히 증가했다. 하지만 이 기간 기업결합 심사를 담당하는 인력은 7명으로 변함이 없었다. 이 때문에 직원 1인당 평균 심사 처리 건수는 2016년 92.3건에서 2020년 123.6건으로 늘었다.

과중한 업무 대비 인력 부족으로 인한 부실 심사가 우려된다는 지적이 나올만하다. 파킨슨 법칙에 따르면 공정위 경쟁정책국 기업결합과에 주어진 인력과 예산 등을 감안하면 심사 결과가 빨리 나와야 한다. 실상은 오히려 반대다. 늑장 심사로 인해 기업과 해당 산업군 경쟁력 발목을 잡는다는 목소리가 재계에서 흘러나오는 게 현실이다. 특히 대우조선해양과 아시아나항공 건은 산업은행 주도로 인수합병(M&A)가 진행됐다는 점에서 국책은행과도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공정거래법(12조)과 시행령(18조)에 따르면 공정위는 기업결합 심사를 접수일로부터 120일 이내에 끝내야 한다. 신고일로부터 30일 이내 완료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최장 90일까지 연장할 수 있다. 이는 심사기간뿐만 아니라 피심인 의견서 제출기간(최대 3주)과 위원회 상정기간(평균 2~4주)까지 포함된 것이다.

다만 자료보정과 추가 자료요청에 소요된 시간은 심사기간에서 제외된다. 미흡한 서류 청구 요청 기한 등은 심사기일에 포함되지 않아 120일 이상 기업결합심사가 걸리는 경우가 발생한다. 공정위 입장에서는 법정 심사기간 120일을 초과하지 않으면서도 사실상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연장이 가능한 셈이다.

2019년 이후 공정위가 외국 경쟁당국과 동시에 기업결합 심사를 진행한 경우는 총 8건이다. 이 안건들이 상정되는데 걸린 기간은 평균 288일(약 10개월)이었다.

LG유플러스의 CJ헬로 지분인수에 관한 공정위 기업결합심사는 역대 최장기간인 274일만에 승인이 났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결합심사는 어떻게 결론이 나든 총 소요기간이 역대 최장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다.

현대중공업그룹의 조선부문 중간 지주회사인 한국조선해양은 공정위에 대우조선해양 주식 취득 관련 기업결합 심사 신청서를 2019년 7월 제출했다. 공정위 심사는 이후 2년 3개월 간 사실상 '일시유예' 상태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 심사 역시 예상보다 시간이 더 소요되고 있다.


◇심사보고서 및 전원회의 일정 미정...업계 "심사 여전히 일시유예 상태"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은 국정감사에서 연내에 기업결합 심사를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이다. 공정거래법 전문 변호사는 “공정위가 연내 심사를 마무리하겠다는 것은 전원회의를 소집해 M&A 승인에 대한 가부를 결정하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공정위는 공정거래법 등에 의거하는 심판기능을 수행하는 준사법적 기관으로 위원회를 구성하는 위원들의 합의가 필요한 합의제 행정기관이다. 소회의와 전원회의 두가지 형태의 합의제를 운영하고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대우조선해양과 아시아나항공 M&A 건은 전원회의에서 기업결합 심사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전원회의의 의결 정족수는 재적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위원장을 포함한 위원 9명 전원 중 5명 이상이 찬성해야 최종 결정이 이루어진다. 공정위는 전체 회의에 앞서 심사보고서를 작성한다. 심사보고서 채택까지는 기업결합 당사자의 의견수렴을 거쳐 통상 2주가량이 소요된다. 이후 전체회의를 거쳐 기업결합 승인 여부를 결정한다. 통상적으로 심사보고서 발송 이후 늦어도 2달 내에는 최종 결과가 나온다.

연내 심사를 마무리 하겠다는 공정위 결심이 확고하다면 조만간 기업에 심사보고서를 발송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현대중공업그룹 관계자는 “공정위로부터 심사보고서를 아직 받지 못했다”면서 “공정위 결합 심사가 여전히 일시유예 상태인걸로 안다”고 말했다. 한진그룹 관계자 역시 “아직까지 공정위로부터 심사보고서를 전달 받은 바 없다”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공정위 기업결합 심사가 길어지면서 신청을 철회하는 경우도 있었다. CJ ENM과 JTBC의 OTT 합병법인에 관한 심사도 6개월 이상 장기화 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오면서 결국 양측은 결합심사 신청을 철회했다. 대신 심사를 받지 않는 기준 이하로 지분율을 낮추는 대신 외부 투자를 유치하기로 결정했다.

아시아나항공과 대우조선해양 인수 거래의 경우 해외당국 결합 심사도 걸려 있기 때문에 간단하지가 않다. 국내 공정위 심사가 끝이 아니기 때문이다. 공정위 입장에선 한 국가에서만 반대를 해도 거래가 무산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서둘러 결론을 낼 이유가 없다는 설명이다. 기업결합 시 경쟁 제한성이 발생한다는 것이 명백한 상황에서 공정위가 어떤 결론을 내더라도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특히 공정위는 EU의 결합심사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내 조선사에 선박을 발주하는 해운사가 유럽에 포진해있기 때문에 EU 심사 향배가 공정위 결정에도 영향을 미칠 공산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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