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업계, 엔데믹에 서다]미국 진출 총력 랩지노믹스, 신약개발 전략은 선회루하PE 매각 후 매출다각화 집중…"클리아랩·디지털헬스케어 두 축"
차지현 기자공개 2023-09-22 10:58:54
[편집자주]
진단 분야는 코로나19 수혜를 입은 대표 업종이다. 코로나19 확산 직후 발 빠르게 진단키트 개발에 성공하면서 위상을 높였다.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하며 몸집을 불렸고 현금 곳간도 넉넉히 채웠다. 문제는 포스트 코로나 전략이다. 엔데믹 상황에서도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을지 의문 부호가 붙는다. 신성장 동력 확보에 나선 진단업계의 생존 전략을 들여다봤다.
이 기사는 2023년 09월 20일 07:2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랩지노믹스는 코로나19를 계기로 외형을 빠르게 늘린 진단 업체로 꼽힌다. 팬데믹 기간 벌어들인 대규모 자금을 기반으로 신성장 동력을 찾던 창업자이자 최대주주는 신생 사모펀드(PEF) 운용사에 경영권을 넘기는 결단을 내렸다.새 주인을 맞은 뒤 미국 진단 기업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엔데믹으로 인한 공백 메우기에 나섰다. 이와 함께 기존 주력 사업을 강화해 매출 다변화를 꾀하는 중이다. 다만 야심 차게 도전장을 내밀었던 신약 개발 사업엔 힘을 빼는 모습이다.
◇팬데믹서 매출 300억→2000억, 엔데믹에 매출 급감
랩지노믹스는 2002년 설립한 분자진단 기반 체외 진단기기 업체다. 산전 기형아 검사, 암유전자 검사 등 유전체 분자 진단 사업을 주로 영위한다. 국내 최초로 차세대 염기서열분석(NGS) 기반 비침습 산전 기형아 검사(NIPT) 진단키트를 개발하고 상용화했다. 국내 3000개 이상 병원 및 200개 이상 산부인과 전문병원 등 최대 규모 병원 네트워크를 보유한 점을 강점으로 내세운다.
다른 진단 업체와 마찬가지로 코로나19를 계기로 몸집을 단기간에 불렸다. 2019년 300억원대였던 연 매출이 2021년 2000억원대로 대폭 늘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률은 3% 수준에서 약 52%까지 높아졌다. 2021년 기준으로 진단키트 1000원어치를 팔아 520원을 남긴 셈이다.
실시간 유전자증폭(RT-PCR) 진단 시약을 통해서다. 35분 내 결과를 확인할 수 있고 정확도가 99%에 달하는 제품이다. 씨젠, 이원다이애그노믹스(EDGC) 등보다 각국 규제당국의 긴급사용승인은 늦게 획득했지만, 적극적으로 해외 판로를 개척하며 실적을 끌어올렸다.
그러나 엔데믹 이후 실적 감소를 피하지 못했다. 작년 매출(1448억원)은 전년보다 28%가량 감소했다. 영업이익은 662억원으로 약 37% 줄었다. 반기 매출로 보면 실적 감소세가 더욱 도드라진다. 올 상반기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1% 이상 감소한 299억원이었다. 영업이익은 전년의 18분의 1 수준인 29억원을 냈다.
◇루하PE 품 안긴 뒤 매출 다각화 사활
실적 후퇴에도 믿을 구석은 있었다. 두둑해진 현금 곳간이다. 2019년 말 142억원이었던 현금성자산이 2021년엔 990억원이 됐다. 고민은 늘어난 현금을 기반으로 신성장 동력을 찾는 것. 신사업을 추진하려면 대규모 투자금이 필요한 데 반해 창업자 진승현 대표의 지분율은 12%대에 불과했다. 신규 투자를 유치할 경우 경영권 방어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고심하던 진 대표는 큰 결단을 내린다. 지난해 8월 업력 2년차 신생 PEF 운용사 루하프라이빗에쿼티(루하PE)에 경영권을 넘긴다고 발표했다. 루하PE는 지난 1월 진 대표 보유 지분 9%(600억원)를 사들이고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827억원, 전환사채(CB) 발행 400억원을 투자하는 거래를 최종 마무리했다. 이로써 루하PE는 약 30%의 지분을 확보했다.
루하PE는 미국 실험실표준인증연구실(클리아랩)을 인수해 엔데믹으로 인한 매출 공백을 메우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클리아랩은 미국실험실표준인증(클리아)을 받은 연구실로, 미국 식품의약국(FDA) 인허가 없이 미국 시장에 연구실 개발 검사(LDT) 서비스 등을 제공할 수 있다. 지난달 미국 100위권에 드는 뉴저지주 소재 클리아랩 큐디엑스를 약 768억원에 인수했다.
큐디엑스를 발판 삼아 미국 시장 진출을 가속화한다는 구상이다. 또 클리아랩 인수가 곧바로 실적 개선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지분 100%를 인수한 만큼, 큐디엑스 실적이 연결 재무제표에 그대로 반영돼 빠르게 의미 있는 실적을 낼 수 있다는 설명이다. 큐디엑스는 2020년 501억원, 2021년 778억원, 지난해 665억원 등 매년 5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다음 클리아랩 인수 후보군도 지속해서 검토 중이다. 앞서 1000억원 이상을 투자해 클리아랩 7곳을 인수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랩지노믹스 측은 큐디엑스 인수 당시 "작년 연말부터 다수 클리아 랩에 대한 인수를 검토했고 첫 번째 인수 대상 랩을 신중하게 결정했다"며 "두 번째 랩 인수도 바로 착수할 계획"이라고 했다.
매출 다각화에도 힘을 쏟고 있다. 특히 기존 주력 사업이었던 유전체 분자 진단 사업을 강화하는 모습이다. 2021년 인공지능(AI) 기반 유전자분석 플랫폼 제노코어BS 지분 48.5%를 인수를 시작으로 관련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최근 제노코어BS가 의료 데이터 기반 AI 알고리즘을 자체 개발한 데 이어 AI 기반 맞춤형 암질환 분석 플랫폼 '메셈블'에 대한 특허 출원을 마쳤다.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하는 암 정복 프로젝트 '캔서문샷' 프로젝트에도 합류했다.
소비자 직접 의뢰(DTC) 유전자 시장 공략을 위한 행보도 눈에 띈다. 국내 1위 다이어트 서비스 기업 쥬비스, 임신·육아 플랫폼 마미톡을 운영사 휴먼스케이프, 핀테크 플랫폼 뱅크샐러드등과 DTC 사업을 위한 협력을 연이어 맺었다. 5월엔 휴먼스케이프 해외 자회사 제노스케이프 유상증자에 참여해 지분 30%를 확보, 2대주주 자리에도 올랐다. 지난해 전체 매출 가운데 유전자 검사 서비스 비중을 60%대로 끌어올린 점이 긍정적 요소다.
◇미래 성장 동력서 빠진 신약…진단 '선택과 집중'
다만 새 주인을 맞으면서 신약 개발 전략엔 변화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랩지노믹스는 신약 개발에 꽤 진심인 분위기였다. 2021년 항암 신약 개발 기업 에이비온에 20억원을 투자하고 그해 신약연구본부도 출범했다. 크리스탈지노믹스, 콜마파마 등에서 신약 연구개발 경험을 쌓은 이태규 이사를 신약연구소장으로 영입했다.
파이프라인도 갖췄다. △CD47 타깃 면역항암제 'LGP-S01' △코로나19 다가백신 'LGP-V01'이 주인공이다. 여기에 미국 세포치료제 개발사 메디진에 4억원, 영국 면역항암제 개발사 옥스박스에 8억원을 투자하는 등 직간적접 투자도 이어왔다. 자회사 진앤투자파트너스를 통해 RNA 항암신약 개발사 네오나에 5억원을 출자하기도 했다.
그러나 루하PE가 최대주주에 오른 뒤 연구개발(R&D) 조직 구성이 달라졌다. 지난해 말 기준 R&D 인력은 전년보다 15명 늘었지만 신약연구본부는 사라졌다. 신약 개발을 이끌던 이 이사 역시 회사를 떠났다. 강점을 지닌 진단 분야에 '선택과 집중'해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전략 선회로 풀이된다.
랩지노믹스 관계자는 "면역항암제와 코로나19 백신 개발은 이전 경영진의 구상으로 변경된 최대주주는 성장 전략에 있어 우선순위로 두고 있지 않다"면서도 "현재 포스트코로나 전략은 크게 클리아랩 인수를 통한 즉각적인 미국 시장 진출, AI 의료 기반 디지털 헬스케어 생태계 조성 두 가지 축을 중심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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