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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드 생태계의 다윗과 골리앗 [thebell desk]

김일문 자산관리부장공개 2024-07-05 07:15:23

이 기사는 2024년 07월 01일 07:1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국내 바이아웃 블라인드 펀드의 적정 규모는 딱 5000억원 내외다. 조단위 펀딩은 운용사에겐 부담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엑시트 성과는 기대에 못 미칠 확률이 높다." 최근 만난 대형 출자기관 담당자의 말이다. 처음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국내 토종 운용사 가운데도 1조원 이상의 펀드를 가진 곳이 상당수인데 이런 말을 하다니.

하지만 이어진 설명을 듣고나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국내에서는 대형 바이아웃의 기회 자체가 많지 않다는 것. 그래서 무작정 규모만 늘리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는 설명이었다. 경영권을 인수한 뒤 기업가치를 끌어올려 엑시트 해 출자자들에게 수익을 안겨다 주는 경영참여 펀드들이 활동하기에 그 토양 자체가 비교적 척박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운용사들은 필연적으로 덩치를 키우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야 더 뛰어난 투자처를 선점할 수 있고 딜을 신속하게 끝낼 수 있다. 또 펀드 AUM이 커야 관리보수를 더 많이 받을 수 있고 이를 재원으로 우수한 운용역을 뽑아 딜 소싱과 포트폴리오 관리에 만전을 기할 수 있다. 따라서 새로운 펀드를 만들 때 이전 펀드 보다 더 크게 조성하는 것은 운용사 성장을 위한 필요조건이기도 하다.

그러나 마땅한 투자 기회를 찾지 못해 부작용이 발생한 사례도 적지 않았다. 블라인드 펀드는 언제든 실탄을 쏠 수 있는 막강한 화력을 지녔다는 점이 큰 장점이지만 참신하고 독창성 있는 딜을 발굴하기에는 몸집이 지나치게 크다. 반대로 경쟁 입찰로 진행되는 대형 투자 건이 출현하면 딜 성사에만 골몰한 나머지 밸류에이션의 냉정한 접근 보다는 가격으로 승부를 보려는 '머니게임'의 패착에 빠지기도 한다.

이러한 딜레마는 비단 경영참여형(기관전용) 사모펀드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종합자산운용사나 일반사모 운용사 역시 비슷한 고민에 빠지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성과가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AUM이 늘 제자리인 사실이 의아하다는 물음에 한 헤지펀드 운용사 대표는 "하우스의 깜냥과 능력치 대비 과도하게 많은 돈을 받는 것은 굉장히 위험요소가 많다"고 답했다. 물밀듯 들어오는 투자금이 운용사의 사세를 키우는 날개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자칫 족쇄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겸손으로 해석하기 보다는 냉혹한 현실을 간파하는 혜안이다.

펀드 규모에 따라 그에 걸맞는 옷이 필요하다. 여기서 옷이라 함은 적정 수의 인력과 변동성 관리를 위한 시스템을 말한다. 결국 덩치가 커질수록 그에 따른 비용 역시 수반되지 않는다면 AUM이라는 숫자는 사상누각에 불과하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종합운용사 역시 마찬가지다. 메가펀드·공룡펀드의 타이틀로 잘 나가던 상품들이 실제로는 넘치는 돈에 비해 특정 전략과 컨셉트에 갇혀 유연한 운용과는 유리된 방향으로 흘러갔던 사례를 시장은 기억하고 있다.

펀드 규모는 다윗이 될 수도, 골리앗이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AUM 자체가 운용사의 사세를 키우기 위한 목적이나 보수를 더 받기 위한 의도로 퇴색돼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펀드가 크건 작건 운용사의 가장 큰 미덕은 기민하고도 적극적인 전략과 변동성 관리로 투자자들의 믿음에 수익으로 보답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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