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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열 재정비하는 SK㈜]최창원 체제서 확 바뀐 '정체성'①재계 최초 투자형 지주사로 이목…'성장' 담보 안되자 다시 순수지주사로

정명섭 기자공개 2024-10-17 07:31:29

[편집자주]

SK그룹의 지주사인 SK㈜는 투자형 지주회사를 표방해왔다. 국내 대기업 지주사 중에선 처음 있는 일이었다. SK㈜의 행보는 급변하는 시대에 대응하기 위한 유연한 행보로 평가됐다. 그러나 지난 몇 년간 투자-엑시트-신규 투자라는 선순환 구조가 무너지면서 SK㈜는 올해 평범한 지주회사로 돌아가고 있다. SK㈜의 성장 전략은 이대로 멈춘 걸까. 더벨은 SK㈜의 현 주소를 다각도로 짚어본다.

이 기사는 2024년 10월 14일 16:1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이 작년 말에 부임한 이후 가장 눈에 띄는 변화를 꼽으라면 SK㈜의 정체성이다. 2020년 들어 투자형 지주사를 넘어 투자전문회사로 지주사 색깔을 지워오다가 올 들어 다시 순수 지주사로 '유턴'하고 있다.

근간에는 부진한 투자 성과로 인한 재무부담이 있다. '제2의 하이닉스'를 발굴하기 위해 공격적으로 추진해온 지분투자, 인수합병(M&A) 전략은 그룹의 주력사업 부진과 글로벌 경기침체 여파로 더 이상 성장 공식으로 작동하지 않았다.

올해는 신규 투자보다 기존 자산들을 매각해 차입 규모를 줄이는 작업이 한창이다. 최 의장 체제가 굳어진 연말과 내년 상반기 사이에는 투자자산을 슬림화하는 '리밸런싱'이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사업 아닌 '투자'로 성장 모색했던 SK㈜

SK㈜는 2015년 SK C&C와 SK가 합병해 통합 지주회사로 출범했다. SK㈜는 당시만 해도 지주부문과 사업부문으로 나뉘어 그룹 지배구조 최상단에서 계열사 지분을 소유하며 지배권을 행사하는 일반적인 지주사 모델을 따랐다.

변화가 시작된 건 2년 후인 2017년이다. 장동현 대표이사 사장(현 SK에코플랜트 부회장)이 부임하면서 '투자형 지주회사'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내걸었다. 성장 사업 영역에 과감하게 선제 투자해 기존 사업과의 시너지로 기업가치를 끌어올린 후 엑시트(회수)하는 전략을 폈다. 당시 국내 대기업집단의 지주사들 사이에선 볼 수 없는 행보여서 큰 주목을 받았다.

첫 투자 성과는 약 3년 만인 2020년에 나왔다. SK㈜가 2017년 8월과 2018년 9월 두 차례에 걸쳐 약 4900억원을 투자해 지분 4.6%를 확보한 글로벌 물류회사 ESR이 홍콩 증시에 상장하면서 투자 원금을 회수할 수 있었다. 자신감을 얻은 SK㈜는 이후 매년 1조원가량을 미래 먹거리에 투자했다. 2017년부터 2020년 말까지 투자한 곳만 40여곳에 달했다. 카셰어링 등의 공유경제와 빅데이터, 스마트팩토리 등 분야를 막론하고 유망하다 싶으면 투자에 나섰다.



2021년부터는 움직임이 더 과감하고 정교해졌다. 장 사장이 2025년까지 'SK㈜ 주가 200만원, 기업가치 140조원' 시대를 열겠다고 말한 시기다. SK㈜의 주가가 당시 26만원 안팎에서 움직였던 점을 고려하면 파격적인 목표였다. 중복 상장 등으로 가치가 디스카운트되는 지주회사는 주가 상승에 더 불리할 수밖에 없어 목표가 허황됐다는 지적도 일었다.

기존 투자센터는 첨단소재와 그린, 바이오, 디지털 등 4대 분야의 투자센터로 개편됐다. 이전까지 소위 '돈 되는' 영역이라고 판단하면 가리지 않고 투자했다면 SK그룹의 주력 사업인 반도체와 통신, 에너지 등의 분야와 직접적으로 맞닿는 핵심 사업에만 투자하겠다는 의미와 같았다.

일례로 SK㈜는 당시 글로벌 전기차 충전기 제조사인 시그넷EV 지분 55.5% 인수를 결정했는데 전기차 배터리 사업과 중장기적인 시너지를 염두에 둔 투자였다. 이외에도 플러그파워, 예스파워테크닉스, 솔리드에너지시스템(SES), 모놀리스, 퍼펙트데이, 네이처스파인드, 미트리스팜, 폴스타 등에 투자했다. 투자에 지출한 금액만 3조원이 훌쩍 넘었다.

동시에 SK㈜는 영문 사명을 'SK Holdings Co., Ltd.'에서 'SK Inc.'로 바꿨다. 지주사를 뜻하는 'Holdings'를 뗀 건 투자전문회사라는 정체성을 부각하기 위한 결정이었다.

2015년 96조원 규모였던 SK㈜의 자산총계는 2022년 194조원까지 불었다. SK하이닉스 자산까지 더하면 약 284조원에 달했다. SK그룹은 2022년에 현대차그룹을 제치고 재계 2위에 올랐다. 2006년 3위에 오른 후 약 16년 만이었다.

◇2022년부터 더디게 도는 '엑시트' 시계

투자가 항상 장밋빛 미래를 가져다주지는 않듯, SK㈜의 투자도 늘 성공적이진 않았다. 특히 코로나19로 풀린 유동성을 회수하기 위해 전 세계적으로 기준금리가 오르기 시작한 2022년부터 엑시트 성과가 둔화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2022년은 SK㈜가 투자형 지주사로서 변신을 선언한 이후 유일하게 엑시트를 하지 않은 해다. 그러나 연간 투자금액(1조원)은 이전과 똑같이 가져갔다.

배당금·상표권 수익과 IT 서비스 사업 수익(SK C&C)은 제자리인데 엑시트로 인한 유입은 전무하다 보니 부족한 자금을 차입으로 메우기 시작했다. SK㈜의 2022년 말 별도기준 순차입금은 11조원 수준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부채비율과 차입금의존도는 각각 80%, 40%에 가까워졌다. 2015년 말에는 부채비율 53.2%, 차입금의존도는 31%였다.

2023년에 미국 P2P 카셰어링 업체 투로 지분을 약 871억원에 매각(차익 약 475억원)하고 쏘카 지분 17.9%를 롯데렌탈에 매각(1462억원)했지만 가중된 재무부담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비슷한 시기 중국 동박업체 왓슨 지분 30%도 시장에 내놓았으니 전기차 시장의 성장세가 꺾이면서 현재까지 지분을 정리하지 못했다. 동시에 SK이노베이션의 유상증자에도 참여해 3807억원이 유출됐다. 신사업 투자에 더해 자회사 지원이라는 부담이 얹어진 셈이다.

올해 최 의장이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에, 장용호 사장이 SK㈜ 신임 대표에 부임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최 의장은 1994년 SK그룹에 입사한 후 기획 부서에서 근무하며 회사 전략을 세우고 사업구조의 비효율을 개선하는 업무를 주로 맡아왔다. 과거 워커힐호텔과 SK상사(현 SK네트웍스)에서 근무할 당시 조직 쇄신을 이끌었고 2006년 SK케미칼 대표이사 부회장을 맡을 당시 섬유사업에서 바이오와 헬스케어 중심으로 사업을 재편한 이력이 있다.

최 의장의 눈에 SK㈜의 투자는 '중복'과 '방만'으로 가득했다. 그가 장 사장과 가장 먼저 추진하기 시작한 건 4대 투자센터 개편이었다. 첨단소재·그린·바이오·디지털 투자센터에서 '투자센터' 명칭을 떼고 그린 부문과 바이오 담당, 첨단소재 담당으로 개편했다. SK㈜ 투자인력의 20~30%가 담당 계열사로 내려가는 인력 재배치도 진행됐다. SK㈜ 정체성에서 '투자전문'이라는 색채가 흐려지기 시작한 건 이때부터다.


SK㈜는 올해 신규 투자보다 자산 매각과 투자 포트폴리오 관리 등에 집중했다. 올 상반기 말 SK㈜의 매각예정자산은 4조6000억원이다. 작년 말 1조3000억원 대비 약 3배나 늘었다. △ESR케이만 △쏘카 △SK엔펄드 등 반도체 소재 사업 △SK렌터카(매각 완료) 등이 이름을 올렸다. 하반기 중에는 SK스페셜티와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 플러그파워 등의 지분 매각이 검토되고 있다.

체중 감량은 숫자로 드러나고 있다. 올 상반기 말 667개였던 종속회사 수는 작년 말 대비 49개 줄었다. 신규 편입된 회사(14개)보다 청산과 매각 등으로 정리된 회사(63개)가 3배가량 많아 연결대상 회사 수가 순감했다. 정리된 63개 중 연결법인에 흡수합병된 회사는 11개사였고 청산과 매각으로 정리된 회사는 각각 9개, 42개였다. SK㈜의 종속회사 수가 줄어든 건 2018년 이후 처음이다.

앞으로 더 많은 투자 자산이 정리될 것이 유력하다. 우선 'SK' 브랜드를 사용하지 않는 투자 기업들이 리밸런싱 대상으로 거론된다. 대체식품, 수소처럼 미래 성장 가능성을 보고 대규모 자금을 넣었다가 손실을 본 투자 건들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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