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5년 03월 07일 07시10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조만간 주전부리를 끊을 생각이다. 군것질이 몸에 안 좋다든지 어른다운 입맛을 갖춰야 한다는 당위에 사로잡혀서가 아니다. 소싯적 즐겨 먹어 추억이 가득한 스낵 브랜드의 포장을 뜯을수록 이런 결심은 강화된다.요즘엔 군것질하다가 몸 건강을 망치는 걸 넘어 과거를 부정당해 정신건강도 흔들리겠단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추억을 훼손당하느니 스낵 소비를 거부하겠다는 심리의 기저엔 '슈링크플레이션'이 자리해 있다. 슈링크플레이션은 꾸준히 물가가 상승하는 과정에서 제품의 크기나 양을 줄여 판매하는 방식이다.
특히 스낵류는 슈링크플레이션의 정도가 심해도 너무하다. 거대한 백상아리의 죠스(Jaws)는 아기상어의 하관으로, 찰떡 모양을 본 뜬 아이스크림이 3개에서 2개로 바뀐 게 언제인지 모르겠다. 어렸을 때부터 즐겨먹던 프랑스식 파이를 손에 들면 '내 성장판이 아직도 열려 있는 건지' 의심까지 하게 된다.
슈링크플레이션이 무조건 지탄받을 일은 아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가격을 유지하며 인플레이션에 대응해야 하는 기업의 생존방식 중 하나다. 불가피하게 제품의 양을 건드는 그들의 상황도 이해는 간다. 그러나 적정선을 넘으면 그야말로 소비자들은 '기업이 줬다 뺏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슈링크플레이션이 유독 거센 반발을 사는 이유다.
이사회 경영에도 이 논리를 대입할 수 있다. 기업은 인플레이션에 따라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고 그만큼 이사회의 구성원이 늘어나며 인원별 역할도 세분화된다. 이에 따라 이사회에서 모두 처리하던 현안은 소위원회로 분배된다. 성장과 분배, 리스크 관리를 담당할 인적재원을 구성해 다시금 위원회를 만들려면 이사회 총원도 증가하는 게 정석이다.
여기엔 작금의 이사회 트렌드에선 마땅한 이유없이 기업에서 이사회 총원을 줄이는 행위를 받아들이기 어렵단 의미도 담긴다. 그런데 기업결합을 성사하면서 글로벌 10위권 초대형 항공사 운영을 앞둔 한진그룹이 이런 선택을 내렸다.
한진그룹은 오는 주주총회를 거쳐 지주사인 한진칼과 핵심 계열사 대한항공의 사외이사를 줄인다. 그리고 사외이사가 아닌 임원 즉 조원태 회장을 포함한 사내이사 임원보수한도를 기존 대비 30억원 증액한다.
임원기본연봉을 동결한지 3년차를 맞아 처우 조정이 필요하며 대한항공 등 주요 계열사 역시 양호한 실적을 달성했다는 게 근거다. 한진그룹은 더불어 기업결합에 따라 경영진의 역할과 책임도 확대될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그런데 오히려 이 기간 사외이사 총원은 줄여나가고 있다.
한진그룹은 중대한 변곡점에서 '이사회 슈링크플레이션'을 선택했다. 이 결정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슈링크플레이션을 선악으로 나눌 일은 아니다. 그러나 한진그룹 주주나 이해관계자라면 반드시 진위를 가리는 포장지를 열어 실체를 들여다봐야 한다. 곧 탄생할 매가캐리어를 둘러싼 이해관계자들이 어떤 가치 판단을 내릴 지 자못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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