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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덕수 회장과 산은의 오판

이재영 기자공개 2013-09-02 11:33:10

이 기사는 2013년 08월 26일 08:3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한 때 재계 순위 10위권을 넘보던 STX그룹은 그룹 해체 수순을 밟으며 자율협약 또는 법정관리 등 강도높은 채권단 발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KDB산업은행(이하 산은)을 위시한 채권단은 계열사들에 자금지원 방안을 연일 내놓고 있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격이다.

이 와중에 이제 STX그룹과는 아무런 관계없는, STX에너지의 지분 96.35%를 보유한 최대주주인 일본계 사모투자회사 오릭스PE(이하 오릭스) 또한 STX에너지 매각에 나섰다. 경영권을 포함한 지분 71.35%가 우선 매각 대상이지만 이후 최종 인수자가 나머지 지분도 가져갈 전망이다.

문제는 STX에너지의 기업가치다. 지난 봄 STX그룹의 유동성 위기가 시작되고 사모투자회사 한앤컴퍼니가 제시했던 최대 7500억 원 가량의 제안을 거절했던 오릭스는 내심 쾌재를 부르고 있다. 인수후보 중 하나인 삼탄은 이미 STX에너지 인수를 위해 1조 원을 제시했다. 업계에서는 STX에너지 매각대금을 8000억~9000억 원 수준으로 바라보고 있다.

불과 두 달 전 산은은 ㈜STX의 STX에너지 보유지분 43.15%의 리픽싱을 통해 최종 37.5% 수준의 지분을 오릭스에게 2700억 원에 매각했다. 단순계산으로 역산하자면 STX에너지 지분 100%의 가치를 7200억 원 정도로 평가한 것이다. 하지만 최근 논의되고 있는 가격과는 최소 1000억 원 이상 차이나는 밸류에이션이다.

산은은 ㈜STX의 만기도래 회사채 및 그룹 구조조정을 위한 자금계획 등을 STX에너지 지분 매각의 변으로 삼았다. 하지만 당시 만기도래했던 800억 원의 회사채 중 산은과 정책금융공사가 갖고 있는 400억 원은 자율협약에 따라 이미 상환 유예된 상태였다. 그룹 구조조정을 위한 자금지원도 각 계열사별로 산은이 자체적으로 단계별 자금지원을 진행하고 있다.

글로벌 해운업 불황과 무리한 수직계열화 등으로 위기에 빠진 STX그룹과는 별개로 최초의 민간 기저발전 사업자로 선정된 STX에너지는 집단에너지 사업, 유류유통 사업, 자원개발 사업 등을 영위하며 그룹 내 유일한 이익창구였다.

지난해 말 오릭스가 STX그룹에 3600억 원을 투입하며 STX에너지 2대주주로 등극했을 때도 강덕수 회장은 STX에너지에 대한 애정을 여실히 보여줬다. 강 회장은 당시 오릭스 외에 국내외 유수의 재무적투자자(FI)들과 투자협상을 진행했지만 결국은 STX에너지에 대한 실사도 제대로 안한 오릭스의 손을 들어줬다.

M&A업계 관계자는 "STX에너지를 그룹 내 유일한 캐시카우며, 알짜회사라고 생각한 강 회장은 외부세력이 실사 등을 통해 회사를 낱낱이 살펴보는 데 거부감이 심했다"며 "이를 감지한 오릭스는 실사 대신 트리거 조항으로 대체, 강 회장의 위신을 세워주며 협상을 성공시킬 수 있었다"고 전했다. 그룹 전체의 위기 까지는 상상하지 못했던 강 회장에게 그룹 위기를 전제로 한 트리거 조항 따위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강 회장의 이 오판은 결국 국가 기저발전 사업자이자 그룹 내 유일한 이익창구였던 STX에너지를 손 한번 못써보고 고스란히 오릭스에 넘겨주는 불씨가 됐다. 더욱이 산은은 한앤컴퍼니 등 여러 원매자들의 제안에도 결국 ㈜STX의 잔여 보유지분을 오릭스에 넘겼다.

한 때 시장에서는 산은의 이러한 거래를 이해하기 위해 산은-오릭스 간 또 다른 계약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품었다. 락업 조항 혹은 오릭스의 지분 매각 시 일정 부분 프리미엄 제공 등 말이다. 2700억 원의 매각대금은 너무 적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아무런 추가적 계약은 없었다. 트리거 조항들을 해소하는 조건 이긴 하지만 과연 STX에너지 지분 37.5%가 '2700억 원'에 불과한가에 대한 시장의 의구심은 더욱 깊어졌다.

지난해 3600억 원, 올해 2700억 원 등 총 6300억 원을 STX에너지에 쏟아부은 오릭스는 이제 투자 1년 만에 1조원 밸류를 논하는 단계에 와있다. 불과 몇 달만에 이뤄진 이런 결과에 대해 STX에너지를 통해 다음을 준비하던 강 회장과 STX그룹에 밑 빠진 물 붓기를 하고 있는 산은, 어느 쪽 속이 더 쓰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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