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6년 03월 21일 07:3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예상 거래가 '5000억~6000억'→'7000억~8000억'→'1조(?)'.갈수록 점입가경인 현대증권 M&A는 몇 년 전 웅진과 금호에게 '승자의 저주'를 안겨준 극동건설, 대우건설 등을 연상케 한다. 인수 경쟁이 과열되면서 매물의 본 가치를 망각하고 과도하게 비싼 대가를 지불, 결과적으로 승자가 도산 위기에 처하는 모습을 우리는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목격했다.
매물로 나온 현대증권 지분(22.56%)의 시가는 3000억~4000억 원. PBR(주가순자산비율)은 0.5배가 채 안된다. 일반적으로 증권사 PBR은 ROE(자기자본이익률), 즉 수익성에 비례한다. 여기에 경영권 프리미엄을 후하게 얹어도 매매가가 4000억~5000억 원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는 게 상식적이다. 이것도 우발채무가 없을 때의 이야기다.
현대증권 인수 후보들은 지난 한 달 간의 예비실사 과정에서 몇 가지 심각한 리스크 요인을 발견했다. 과다한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비중과 '주가연계증권(ELS)' 발행 등이 그것이다.
작년 말 기준 현대증권의 부외계정 약정액은 총 2조 7433억 원. 이 중 85%를 차지하는 게 부동산 PF다. 전체 자금운용한도(북·book)가 3조 3000억 원임을 감안하면 상당한 규모다. 우발채무로 인식되는 증권사의 부동산 PF 지급보증은 주택경기 하락으로 미분양이 발생할 때 치명적인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
눈에 띄는 점은 부동산 PF를 가장 큰 수익원으로 하는 현대증권 IB 수익 추이다. 2014년만 해도 320억 원에 불과하던 것이 지난해 1250억 원까지 불어났다. 지난해 1분기 오릭스PE를 우선협상자로 맞은 이래 현대증권은 자체 북을 써야 하는 모든 IB 투자건에 대해 오릭스의 동의를 얻어야 했다. 오릭스의 현대증권 인수가 무산된 3분기까지는 자연히 투자가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한 해 IB 수익금이 전년도의 4배에 달한다는 것은 현대증권이 다시 주인 없는 회사로 돌아간 4분기, 단 3개월 동안 부동산 거래를 저돌적으로 수임했다는 얘기다. 그렇게 수수료 수익을 올리고 직원들끼리 보너스 잔치를 벌였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시장에선 한 때 "부동산 딜 하려면 현대증권 가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었다는 후문.
또 한 가지 위험 요소는 현대증권이 찍은 ELS의 '자체 헤지' 비율이 국내 증권사 평균치(45%)를 크게 웃돈다는 점이다. 작년 말 기준으로 60%를 돌파해 국내에서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자체 헤지는 백투백(Back-To-Back) 헤지와 달리 발행 증권사가 직접 채권이나 예금, 주식, 장내외 파생상품 등을 매매해 제반 리스크를 제거하는 방식이다. 발행사 스스로 방향성을 정해 헤지하는, 가령 '환율이 이렇게 움직일 거다'라는 추측(speculation) 하에 투자하는 것. 환율이 원하는 방향대로 안움직이면 증권사 손해다.
일례로 최근 한바탕 난리를 치른 '홍콩H지수' 기반 ELS 쇼크는 리스크 관리 능력이 받쳐주는 증권사라 해도 예기치 못한 시황 변동성 확대 구간에서 자체 헤지로 큰 폭의 운용손실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해줬다.
문제는 정보의 비대칭성이다. 실사 기간 인수의향자들은 해당 리스크에 대해 매각자 측으로부터 만족할 만한 자료나 답을 얻어내지 못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렇다 보니 원매자들 사이에선 "차라리 조금 기다렸다가 삼성증권을 사는 게 낫지 않나" 등의 목소리도 나온다.
유력 후보 중 한 곳인 KB금융지주 관계자의 말이다. "현대증권은 인수대상 지분이 20% 정도밖에 안돼 사실 '이 딜을 꼭 해야 하나'라는 생각도 든다. 혹여 샀다가 부실이라도 터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있다. 응찰한다 해도 높은 가격은 못 쓸 듯하다. 반면 삼성증권은 M&A 시장에 나올 경우 인수할 수 있는 지분이 훨씬 많고 우량한 데다, 상대적으로 비즈니스를 보수적으로 하다 보니 무엇보다 안전하다는 인식이 있다."
현대증권이 사실상 마지막 남은 대형 증권사 매물이어서 KB금융이나 한국투자금융지주 등이 인수전에 열의를 보일 것이란 기존 관측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 나타날 개연성도 있어 보인다.
이쯤 되면 이번 인수 경쟁에서 누가 최종 승자가 될지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있다. 그보다는 누가 얼마에 인수할지, 우발채무를 감당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본입찰까지 남은 닷새 동안 잠재 투자자들이 현대증권의 가치를 더욱 면밀히 따져봐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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