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6년 06월 02일 08:3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양해각서(MOU)를 맺었지만 달라진 건 없다. 조건도 불분명하고, 본계약 시점도 명확하게 명시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채권단이) 당장 비판을 피하기 위한 목적 외에는 별 다른 의미가 없었다고 본다."현대산업개발과 성동조선해양 채권단이 지난달 20일 경남 통영 조선소 부지 매각 MOU를 맺은 직후, 이번 딜에 정통한 관계자가 해준 말이다. MOU에 법적 효력을 갖는 별도 조항을 포함시킨 것도 아니고, 또 본계약 시점 역시 여전히 불투명하다는 얘기였다.
현대산업개발은 지난해 9월 성동조선해양의 경남 통영 조선소 부지 인수 우선협상대상자 자격을 획득했다. 2013년 정부의 제6차 전력수급계획에 따라 통영시LNG발전소 사업자로 선정됐고, 이를 위한 부지 확보에 나섰다.
유가 하락으로 LNG 발전사업은 채산성이 크게 떨어지는 상태로 치달았다. 이에 따라 현대산업개발은 성동조선해양 부지 인수를 포기하려고 했다. 특히 채권단이 밀어붙인 부지 매각가(1350억 원)는 공시지가 등을 고려할 때 회사가 생각한 가격(800억 원)과 편차가 너무 컸다. '최대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회사 입장에서 보면 인수 포기가 당연한 결정일 수 있었다.
채권단이 MOU '데드라인'으로 제시했던 20일 오전까지만 해도 현대산업개발은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취재 과정에서 회사 관계자는 실제 "MOU를 맺지 않을 것"이라고 이날 오전 밝혔다. 그러나 당일 오후 현대산업개발과 수출입은행, NH농협은행 등 채권단은 MOU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현대산업개발이 불과 몇 시간 만에 갑작스럽게 생각을 바꾼 이유는 뭘까.
채권단은 현대산업개발이 인수 포기를 결정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직후인 20일 오후 "사인만이라도 일단 해달라"고 요청했다. 대신 조항을 크게 수정해주기로 약속했다. 본계약 등 시일을 명확히 하지 않기로 했다. '언제든지 해지할 수 있는' 길을 자진해서 열어준 셈이다.
현대산업개발이 MOU를 맺는 쪽으로 마음을 돌린 것도 이 때문이다. 해외 사업 등을 진행할 때 향후 사업비 등 조달이 필요하면 관계를 맺을 수도 있는 국책은행이 거래 상대였다. 빠져나갈 구멍이 있는 상황에서 수출입은행 등 채권단의 심기를 굳이 불편하게 만들 이유는 별로 없었다.
수출입은행이 이처럼 무리해서까지 MOU를 밀어붙인 것은 국책은행이 부실 조선·해운사의 구조조정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최근 여론의 '뭇매'를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STX조선해양은 법정관리 직전에 놓였다. SPP조선도 상황이 좋지 않다. "성동조선해양은 다르다"고 외치고 있지만 정상화가 요원하기는 마찬가지다.
결국 이번 MOU는 사실상 채권단이 꺼내든 '궁여지책'에 가깝다. MOU 전후 바뀐 사정은 전혀 없다. 성동조선해양의 유동성 확보 계획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사안이지만 무산될 가능성은 그만큼 여전히 크다. 시간만 질질 끌다가 제대로 된 인수자를 찾을 시기만 놓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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