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강한기업]뷰웍스, 의료용 X레이 최강자 '한국에 있다'①세계최고 기술력…상장후 6년 연속 코스닥 '라이징 스타'
정호창 기자공개 2016-11-07 09:56:06
[편집자주]
알려진 수많은 국내 강소기업, 그 중에서도 '더' 강한기업은 어떤 기업일까. '더 강한기업'으로 성장한 기업의 성장 스토리, 재무구조, 지배구조를 분석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성공'을 꿈꾸는 수 많은 중소·중견기업에 귀감이 될 만한 정보를 제공하자는 취지다. '더 강한기업'이 되기 위해 거쳐야 할 관문과 그들의 극복 노하우도 함께 들어봤다.
이 기사는 2016년 10월 24일 10:4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뷰웍스는 의료용 엑스선(X-ray) 장비와 산업용 카메라 등을 생산하는 의료·특수영상기기 전문기업이다. 독보적인 기술력을 바탕으로 관련 시장에서 글로벌 최상위권 지위를 확보하고 있으며, 높은 재무 건전성과 수익성을 갖춰 상장 후 매년 코스닥 '라이징 스타(히든 챔피언)'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강소기업이다.뷰웍스는 1999년 9월 삼성테크윈 출신 광학기술 연구원 6명이 의기투합해 '레이시스'란 사명으로 설립됐다. 현재 회사를 이끌고 있는 김후식 대표를 포함해 6명의 창업 멤버들은 당시 막 주목받기 시작한 디지털 엑스선 영상진단기기 시장의 성장성을 확신하고 창업을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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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테크윈 디지털 카메라 개발 분야에서 엔지니어로 활약한 이들이 엑스선 장비와 인연을 맺기 시작한 것은 1997년이다. 의료기기 사업의 성장성에 주목한 삼성테크윈은 엑스레이 디텍터 개발에 나서기로 결정하고 광학장비 렌즈 설계 전문가였던 김 대표 등에게 개발 임무를 맡겼다.
연구진들이 2년간 기술 개발과 노하우 축적에 매달린 결과 제품화 성공 단계에 접어들었으나 문제가 발생했다. 갑작스레 찾아온 외환위기로 사업 추진에 빨간불이 켜졌다. 당시 경영활동의 최우선 순위를 재무 건전성과 유동성 관리에 둘 수밖에 없었던 삼성테크윈은 결국 1999년 엑스레이 디텍터 사업을 접었다.
김 대표를 비롯한 창업 멤버들은 고민에 빠졌다. 사업화를 눈 앞에 둔 단계에서 포기하기엔 아쉬움이 너무 컸다. 결국 그들은 창업을 통해 그동안 개발한 기술을 사업화하기로 결정했다.
6명의 창업 멤버들은 기술 개발 과정에서 기존 아날로그 방식의 엑스선 촬영장치가 방사선 피폭 위험과 필름 사용으로 인한 화학물질 배출 등 환경오염 문제를 갖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에 따라 조만간 인체에 유해한 엑스선 배출량이 적은데다 고해상도 영상을 빠르게 얻을 수 있는 디지털 방식으로 관련 장비가 빠르게 대체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뜻을 모은 멤버들은 1억 5000만 원의 자본금으로 회사를 설립했고 곧 유력한 조력자와 손을 잡았다. 당시 국내 최대 의료기기 전문업체인 메디슨이 지분 20%를 보유하는 조건으로 적극적인 지원에 나섰다. 메디슨은 운영자금의 70~80%를 대면서 판로 개척과 납품 등에도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탄탄대로를 달릴 것 같던 회사에 곧 위기에 찾아왔다. 메디슨이 2002년 부도를 맞으면서 뷰웍스도 자금 위기 상황을 맞게 됐다. 직원들은 급히 미국에 있던 김 대표를 호출했다.
김 대표는 뷰웍스 창업 후 회사 경영을 동료들과 메디슨에 맡기고, 미국으로 떠나 방산분야 광학기술업체인 AOD(Advanced Digital Optics)에 입사했다. AOD의 수석 엔지니어로 근무하면서 그는 뷰웍스의 기술고문 역할을 맡았다.
메디슨이 부도에 처하면서 뷰웍스는 당장 직원들의 월급을 지급하기도 어려울 만큼 심각한 자금난에 처했다. 당시 공동 창업자 중 현금을 보유한 사람은 김 대표 뿐이었다.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급히 귀국한 김 대표는 AOD 근무 시절 저축한 돈을 몽땅 털어 뷰웍스에 쏟아 넣고 경영을 떠맡게 됐다. 운영자금이 부족할 때엔 다른 광학장비 업체들의 렌즈 설계 용역을 수행하고 그 수입으로 살림을 꾸렸다.
폐업 위기를 가까스로 넘긴 뷰웍스는 2003년 디지털 엑스선 촬영장치 특허를 취득하고 본격적인 시장 공략에 나섰다. 뷰웍스가 내놓은 엑스레이 디텍터는 그해 5월 산업자원부의 차세대 세계일류상품에 선정됐고, 12월엔 장영실상(IR50)을 수상했다.
하지만 환자의 생명을 다루기에 안전성을 중시하는 의료기기 시장의 특성으로 인해 초기 판로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다. 바이어들이 무명 기업의 제품 구입을 꺼린 탓에 2003년 매출은 고작 20억 원 수준에 그쳤고 영업이익도 거두지 못했다.
김 대표와 창업 멤버들은 좌절하지 않고 기술 개발과 제품 성능 향상에 주력했다. 의료기기업체 사이에 서서히 입소문이 퍼지며 인지도가 조금씩 높아졌고 2004년 36억 원의 매출을 통해 3억 원 가량의 영업이익을 내면서 드디어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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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도시바의 까다로운 품질 테스트를 통과하고 납품업체로 선정되면서 매출이 본격적으로 증가해 사세가 빠르게 안정됐다. 도시바와의 납품계약 체결로 2006년 처음으로 매출액 100억 원을 돌파했고, 2년 후인 2008년 200억 원 고지도 넘어섰다. 당시 3년간 평균 영업이익률은 30%를 넘는다.
안정적인 사업기반을 마련한 뷰웍스는 2009년 4월 코스닥 시장에 성공적으로 상장했다. 이듬해인 2010년에는 한국거래소가 선정하는 코스닥 '히든 챔피언'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임에도 상장 첫 해인 2009년 매출이 전년보다 20% 이상 증가했고, 영업이익률이 25.6%에 달하는 등 높은 수익성을 갖췄기 때문이다.
뷰웍스는 이후 지난해까지 단 한 번도 놓치지 않고 6년 연속 코스닥 '히든 챔피언'에 선정됐다. '히든 챔피언' 선정 제도는 주력 제품의 세계 시장 점유율 3위 이내인 강소기업으로 기술력과 성장성을 보유한 코스닥 상장 업체를 한국거래소가 선정해 IR개최 지원 등의 특혜를 제공하는 제도로 지난해부터 명칭이 '라이징 스타'로 변경됐다.
뷰웍스가 이처럼 세계적인 강소기업으로 꼽히고 있는 것은 엑스선 이미징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광학 분야 엔지니어들이 창업한 회사답게 뷰웍스는 엑스선 디텍터와 산업용 카메라 개발·제조에 필수적인 광학과 전자공학 기술은 물론이고 하드웨어 설계와 소프트웨어 개발, 기계공학 기술 등을 모두 자체 보유하고 있다.
관련 분야 글로벌 업체 중에서도 뷰웍스처럼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기술을 모두 갖춰 제품 설계부터 생산까지 독자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기업의 수는 극히 적은 편이다. 엔지니어 출신의 경영자들이 여전히 기업 경쟁력의 본질을 기술 개발과 연구활동에 두고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설립 초기 전체 인력 중 연구원 비중이 절반 이상을 차지했고, 사세가 확장된 현재도 230여 명의 직원 중 40% 수준인 90여 명이 연구인력일 정도로 기술개발에 공을 들이고 있다. 중소기업임에도 매년 연간 매출액의 10% 이상을 연구개발비로 재투자하며 기술 경쟁력 강화에 힘을 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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