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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의 일관된 '실리' 전략, 최선의 결과 도출 딜 초기부터 20% 내외 소수지분 확보에 주력… 최소 투자로 최대 효과

정호창 기자공개 2017-06-23 09:06:56

이 기사는 2017년 06월 21일 16:3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SK하이닉스가 포함된 한·미·일 컨소시엄이 낸드플래시 업계 2위인 '도시바메모리' 인수 우선협상권을 확보함에 따라 SK그룹은 투자 리스크는 최소화하면서 시너지 효과 등 실리는 최대한 챙기는 최선의 결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도시바메모리 지분이 매물로 나온 초기부터 SK하이닉스가 일관되게 고수해 온 '실리' 중심의 소수지분 인수 전략이 결실을 맺었다.

SK하이닉스는 도시바가 지난 2월 초 메모리사업부 지분 20%의 외부 매각을 시도할 때 3조 원 수준의 가격에 인수하겠다는 제안서를 제출한 바 있다. 투자 규모가 충분히 자력으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고, 낸드플래시 분야에서 업력과 시장 지위가 앞선 도시바메모리 지분을 취득해 경영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기에 SK하이닉스 입장에선 인수전 참여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당시엔 도시바와 낸드플래시 사업 제휴 관계를 맺고 있는 미국 웨스턴디지털(WD)이 유력한 인수후보로 거론되던 상태여서 SK하이닉스가 지분을 손에 넣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게 관련 업계 전문가들의 중론이었다.

도시바의 미국 원전사업 손실이 예상보다 크게 드러나 메모리사업부 매각 방향이 소수지분 투자자 유치에서 진성매각으로 전환됐지만 SK하이닉스의 전략은 바뀌지 않았다. 도시바 메모리사업부가 투자 가치가 있는 매력적 매물임에는 틀림없지만 △천문학적 인수비용 △현실적으로 경영권 지분 단독 인수가 어려운 점 △중장기적 사업 리스크 등 난관이 적지 않아 '모험'을 걸 필요까진 없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SK그룹 내부에서 본 도시바메모리 경영권 인수의 최대 걸림돌은 비싼 몸값이다. 도시바에서 클린 컴퍼니 형태로 분사되는 메모리사업부의 지분 100% 가치는 SK하이닉스가 소수지분 인수 추진시 제안한 가격을 기준으로 삼더라도 최소 15조 원, 경영권 프리미엄을 감안하면 20조 원을 상회할 것으로 예상됐다.

인수자금의 절반 가량을 외부에서 차입하더라도 SK하이닉스나 그룹이 10조 원 가량의 자금을 감당해야만 지분 100% 인수가 가능한 셈이다. SK하이닉스가 보유한 투자여력이 5조 원 수준임을 감안하면 사활을 걸고 나서지 않는 이상 지분 100% 인수 시도는 사실상 무모한 도전에 가까워 보였다.

도시바메모리를 완전히 품을 수 있다 해도 SK하이닉스가 투자비용 대비 충분한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라 장담하기도 어렵다. 도시바가 낸드플래시를 최초 개발해 다수의 특허와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만 시장의 판도가 도시바가 강점을 가진 2D 낸드플래시에서 적층 구조의 3D 낸드플래시 중심으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어 향후에도 업계 2위의 시장 지위를 수성할 수 있을 지는 불투명하다.

반도체업계 전문가들은 업계 1위인 삼성전자를 제외하면 도시바와 SK하이닉스 등 2위 이하 업체들의 3D 낸드플래시 제조 및 개발력은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 때문에 도시바메모리 진성매각이 발표된 후 반도체업계 일각에선 SK하이닉스가 차라리 20조 원을 3D 낸드플래시 제조기반과 기술투자(R&D) 확보에 투자하는 게 더 빠르고 나은 성과를 거둘 것이란 반론이 제기되기도 했다.

제품 수요가 일정한 사이클을 타 호황과 불황기가 극명하게 갈리는 반도체산업의 특성을 감안하면 천문학적 비용을 들여 대형 사업자를 인수하는 전략은 리스크가 너무 크다는 분석도 SK그룹 안팎에서 고개를 들었다. 이른바 '승자의 저주'를 걱정하는 목소리다.

반도체산업은 영업활동과 함께 늘 차세대 공정 개발과 구축에 대규모 투자를 병행해야만 한다. 이 때문에 SK그룹 내부에선 20조 원을 들여 도시바메모리를 인수한 후 추가로 투입되야 하는 연간 수조 원의 투자비 문제와 최근의 낸드플래시 호황이 저물고 수년 안에 침체기로 전환될 경우 후폭풍을 어떻게 감당할 것이냐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게 제기된 것으로 전해진다.

자금문제와 리스크를 넘어서더라도 SK하이닉스가 도시바메모리 경영권을 손에 넣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점 역시 소수지분 인수 전략을 고수하게 만든 배경으로 꼽힌다. 사실상 일본 반도체업계의 마지막 보루로 여겨지는 도시바의 낸드플래시 사업을 일본 정부와 재계가 최대 경쟁국인 한국 기업에 순순히 넘겨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 반도체 굴기를 선언하고 한국을 바짝 추격하고 있는 중국 정부가 기업결합심사 등을 통해 어깃장을 놓을 공산이 적지 않다는 점 등이 걸림돌로 지목된다.

이 같은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SK그룹은 결국 당초 전략대로 도시바메모리의 소수 지분을 확보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게 최선이란 결론을 내린다. 일단 소수지분을 손에 넣는 데 성공한 뒤 시장 상황과 인수 시너지 등을 살펴 중장기적으로 도시바메모리를 완전히 인수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 인수에 실패하더라도 딜을 완주해 실사기회를 얻고, 홍하이 등 중국 기업에 인수권을 뺏기지 않는다면 차선의 결과라는 전략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SK하이닉스는 경영권을 노리는 인수 주체로 나설 경우 우선협상권 획득은 고사하고 딜 완주도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미국 사모투자펀드(PEF) 운용사인 베인캐피탈과 손잡고 마이너 투자자로 컨소시엄 내 지위를 낮췄다. 베인캐피탈-SK하이닉스 연합은 본입찰에서 도시바메모리 지분 51%를 약 1조 엔(한화 10조 2782억 원)에 인수하겠다는 제안을 제시했다. 인수에 성공하더라도 최대 4조 원 내외의 투자만 단행하겠다는 SK하이닉스의 전략이 반영된 제안이다.

본입찰 이후 경쟁구도 변화와 인수후보들의 합종연횡을 통해 SK하이닉스는 베인캐피탈과 함께 일본 민관펀드인 산업혁신기구(INCJ)와 국책은행 일본정책투자은행이 이끄는 컨소시엄에 합류하는 데 성공, 결국 우선협상권을 따냈다. 컨소시엄이 제안한 인수가격은 도시바메모리 지분 100% 기준 2조 엔(한화 약 20조 5400억 원) 수준이며, SK하이닉스가 부담할 투자액은 3000억 엔(한화 약 3조 800억 원) 정도로 알려졌다.

IB업계에선 SK하이닉스가 베인캐피탈에 자금을 대는 형태로 컨소시엄에 합류해 경영권 인수와 선을 그은 점, 인수 주체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않아 각국의 반독점 및 기업결합심사 문턱을 수월하게 넘을 수 있다는 점 등을 인정받아 한·미·일 컨소시엄이 우선협상권을 따낼 수 있었던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딜 초기부터 일관되게 소수지분 확보에만 주력한 전략이 빛을 발했다는 평가다.

시장 관계자는 "딜 초기만 하더라도 SK하이닉스의 높은 의지에도 불구하고 도시바메모리 지분 확보 가능성이 매우 희박했으나, 진성매각으로 딜 방향이 바뀌고 특정 인수후보의 단독 인수가 어려운 형태로 인수전이 전개되면서 결과적으로 전화위복이 됐다"며 "당초 목표에 가깝게 15% 정도의 지분에 대한 영향력을 3조 원 가량의 자금으로 확보하는 최선의 결과를 얻어낸 셈"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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