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민의 Money-Flix] 사모펀드가 막장드라마를 만났을 때영풍제지 경영권 매각을 모티브로 제작된 드라마 <품위있는 그녀>
이철민 VIG파트너스 부대표공개 2017-10-13 10:24:38
[편집자주]
많은 영화와 TV 드라마들이 금융과 투자를 소재로 다룬다. 하지만 그 배경과 함의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알고 보면 더 재미있다'는 참인 명제다. 머니플릭스(Money-Flix)는 전략 컨설팅 업계를 거쳐 현재 사모투자업계에서 맹활약 중인 필자가 작품 뒤에 가려진 뒷이야기들을 찾아내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려 한다.
이 기사는 2017년 10월 11일 15:0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빈지뷰잉(Binge Viewing)이라는 신조어가 있다. 우리말로는 ‘정주행'쯤으로 해석되는 이 단어는, 주말이나 휴가를 이용해서 드라마 전편을 몰아 시청하는 행위를 뜻하는 말이다. 넷플릭스나 훌루 등 스트리밍 서비스 사업자들이 구작은 물론 신작까지 드라마의 한 시즌을 한꺼번에 공개하면서 확산된 시청 방식이다.재미있는 것은 최근엔 스트리밍 서비스가 아닌 일반 케이블 채널에서도 유사한 시청 형태를 유도하는 사례를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주말이나 연휴에 인기 드라마들을 몇 편씩 연속으로 방영하는 파격적인 편성을 선보이는 것. 이번 추석 연휴 동안 드라마 <품위 있는 그녀>가 며칠 동안 연속 재방송된 것도 그런 사례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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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가 제작·방영한 드라마 중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한 바 있는 이 드라마는, 본방 당시에 다양한 측면에서 화제가 되었던 작품이다. 스타PD와 작가를 앞세운 김희선과 김선아의 화려한 복귀작이라는 것도 이유였지만, 상식적으로는 언뜻 이해하기 힘든 드라마의 핵심적인 스토리가 실제 있었던 사건을 모티브로 쓰여졌다는 점도 큰 역할을 했다.
드라마 속에서 대성펄프의 회장(김용건 분)은 자신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 간병인이자 가정부(김선아 분)의 계략에 넘어가 재혼을 하고 회사의 지분도 모두 넘긴다. 그렇게 경영권 허무하게 빼앗긴 회장의 자녀들이 헛소동을 벌이는 동안 둘째 며느리(김희선 분)만 중심을 잡고 문제를 해결하려 나선다. 그러나 김선아는 곧바로 회사를 사모펀드에게 매각해 버린다.
이는 회장이 35세 연하인 세 번째 부인에게 경영권 지분을 넘긴 2년여 후에, 회사가 모 사모펀드에 매각되었던 영풍제지의 상황과 실제로 매우 유사하다. 작가와 PD가 간담회 등에서 직접적인 연관성을 부인했지만, 회사 이름, 회장 가족의 구성, 사모펀드의 세부적인 역할 등만 다를 뿐 실제 사건이 모티브가 되었다는 것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진 이유다.
그런데 정작 드라마 속에서 회사가 사모펀드에게 넘어가는 과정은 사모펀드를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실소를 터뜨리게 만드는 수준이다. 김선아가 사모펀드 모임이라는 ‘칠공주'를 소개받는데, 보일러 회사, 건설사 등의 대표라는 그녀들이 김선아를 사우나로 불러 무당이 행하는 입회식을 치르게 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사모펀드의 대표가 회장의 딸을 꼬드겨 지분을 되파는 계약을 체결 한 후, 투자은행에 100억대의 대출을 알선해주고 이를 갈취하는 장면도 빼놓을 수 없다. 사모펀드를 피도 눈물도 없으며 사기까지 일삼는 일종의 사채업자와 비슷하게 설정한 후에 최순실의 비선조직이라는 루머가 있었던 ‘팔선녀'와 같은 비밀 모임과 뒤섞어 놓은 것이다.
물론 복잡한 사모펀드의 투자 구조를 제대로 반영할 필요까지는 없었겠지만, ‘사모펀드 = 사채업', ‘사모펀드 대표 = 사기꾼'이라는 지극히 피상적이고 부정적인 설정만은 피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 드라마가 국내에선 사실상 최초로 사모펀드가 핵심적인 역할로 등장한 사례라서 더 그렇다.
이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품위 있는 그녀>가 여느 막장 드라마와는 확연히 다른 점 하나는 김희선이 연기한 며느리 우아진이란 캐릭터다. 회사를 갈취하고 돈에 취해 있는 김선아에게 "난 내가 정당하게 가져야 할 것만 욕망해. 난 딱 거기까지. 가지면 안 되는 걸 욕망하면 결국 그 끝은 파멸이야"라고 일갈하는 모습은 여느 막장드라마에선 찾기 힘든 참신함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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