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8년 04월 20일 08:09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이벤트 리스크(event risk)라는 게 있다. 유가·환율·천재지변과 같은 통제 불가능한 위험 요인을 말한다. 신용평가업계에서 항공업종을 분석할 때 빠지지 않는다. 국내 항공사 입장에선 북핵, 한일관계 악화, 조류 독감, 메르스 사태 등도 이벤트 리스크였다. 수 개월 이내의 단기적 영향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때마다 실적 하락을 감수해야 했다.이보다 무서운 건 계열 리스크다. 계열 지원 여력과 '동전의 양면'처럼 쓰이는 말이다. 자금 지원을 '제공받는' 계열사는 좋지만 이를 '제공하는' 모회사는 부담스럽다.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을 때가 많다. 액수가 커지면 재무 위험이 그룹 전체로 퍼질 수 있다.
웅진그룹의 극동건설이 그랬고,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대한통운이 그랬다. '승자의 저주'는 계열 리스크를 달리 부르는 말이다. 최근 삼성증권 사태처럼 계열사의 평판하락이 그룹의 위험요소로 부각하는 경우도 있다.
한 때 대한항공 채권 투자자들은 계열 리스크의 최대 피해자였다. 제수씨의 허약해진 한진해운을 넘겨 받으면서 부터다. 이후 유상증자로만 수천억원의 자금이 빠져나갔다. 조양호 회장이 기대했던 육해공 종합 물류그룹으로서의 시너지는 없었다. 신용등급은 추락했고 한진해운은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해외 호텔 등 비주력 사업에 따른 우발채무 부담도 오롯이 대한항공이 짊어져야 했다.
가장 위험한 건 오너 리스크다.
대한항공은 이미 현실화된 지 오래다. 오너 삼남매는 '땅콩', '뺑소니' 그리고 '물컵'으로 회자되고 있다. 공통적인 키워드는 '갑질'이다. 통제가능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통제불능이다. 실적 등에 미치는 영향을 계량화하기도 어렵다. 고객들의 뇌리에는 부정적 이미지로 쌓인다. 특히 대한항공이 '진짜' 어려울 때 발목을 잡는 요인이 될 수 있다.
국적 항공사 그리고 기간산업 일부를 맡고 있다는 점에서 정부·금융권의 재무 지원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대한항공의 매출채권 ABS가 꾸준히 차환이 가능했던 점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국적 항공사는 대한항공만이 아니다. '대한'이 사명에 있지만 민간 항공사 중 하나일 뿐이다. 오너 일가에 대한 반발 여론이 커질 경우 채무 상환 시나리오는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분위기는 긍정적이었다. 북핵 위기와 중국과의 사드 정국도 해빙기를 맞고 있었다. 아시아나항공의 구조조정은 상대적으로 대한항공을 빛나게 했다. 환율 효과 등으로 실적 개선도 꾸준했다. 시간이 지나면 A급 신용도 회복을 기대해 볼 만 했다. 이런 상황에서 오너 일가가 '자살골'을 넣어버린 것이다.
그래도 대한항공이 '운'은 나쁘진 않은 듯 하다. 동생이 물컵을 던진 이후였다면 언니의 경영진 복귀가 어려웠을 지 모른다. 진에어 상장은 외국인의 국적항공사 등기임원이 불법으로 알려지기 전이었기에 가능했다. 국토부가 델타항공과의 JV 설립을 승인한 시점은 이번 사건이 터지기 열흘 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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