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bell

전체기사

한국 바이오산업이 잃어버린 시간 [thebell desk]

최명용 산업2부장공개 2018-11-19 09:15:04

이 기사는 2018년 11월 16일 08:2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2013년은 잃어버린 1년이었다."

5년 전을 돌이켜보며 셀트리온 내부에선 이같은 평가가 나온다. 셀트리온은 2013년 공매도 세력으로부터 지속적인 공격을 받았다.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라고 했다. 공매도에 시달리다 못해 서정진 회장은 보유 주식을 다국적 제약사에 매각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셀트리온이 바이오시밀러를 내놓고 글로벌 시장에 도전장을 내던 시기였다. 6만원대를 넘보던 주가는 2만원대로 추락했다. 국내 연기금은 자금을 빌려주지 않았고 투자도 없었다. 셀트리온은 주가를 방어하고 회사상황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 시간을 보내야 했다. 바이오시밀러 공장을 소개하고 의사들을 만나 세일즈를 할 시간에 투자자를 찾아 다녔다. 김형기 부회장은 "공매도 세력과 싸우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다면 셀트리온의 글로벌 영토는 더 넓어졌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한국의 미래 먹거리로 바이오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말엔 누구나 동의한다. 더이상 제조업은 경쟁력을 갖추기 힘들고 IT 및 SW 산업은 노하우가 부족하다. 바이오 산업이 그나마 경쟁력이 있다. 오랫동안 제약업을 한 노하우가 있고 뛰어난 인재들도 있다.

하지만 바이오산업은 부침의 연속이었다. 주기적으로 칼날이 날아 들었다. 바이오산업만큼 규제가 많은 업종을 찾기 어렵다. 정부 규제가 아니어도 때만 되면 스캔들이 불거졌다.

황우석 교수팀이 줄기세포를 연구하던 2000년대 초반은 바이오산업의 초석을 쌓는 시간이었다. 세계 최초로 기술을 개발했다는 소식이 연이어 나왔다. 황우석 교수팀이 연구를 조작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분위기가 반전됐다. 황우석 교수팀의 연구 조작 사건을 옹호할 생각은 전혀 없다. 연구 윤리를 저버린 행위는 어떤 말로도 해명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후 한국에선 '줄기세포=사기'란 인식이 자리잡았다. 줄기세포 치료는 금기시됐다. 줄기세포를 활용한 산업이라곤 화장품과 마스크팩이 거의 전부다. 전세계 줄기세포 치료 시장은 수백억달러 규모로 커지고 있는데 한국은 제자리걸음이다.황우석 사태로 촉발된 바이오 산업에 대한 불신으로 바이오산업의 초석을 10여년간 잃어야 했다.

2017년 기준 전세계 줄기세포 시장은 628억달러 규모다.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는 2025년에 줄기세포시장이 3944억달러 규모로 성장한다는 전망도 내놨다. 한국에선 줄기세포 치료는 여전히 규제 대상이다. 줄기세포 치료 시술을 받으려면 일본, 중국으로 건너가야 한다.

최근엔 바이오 업체들의 회계가 이슈가 됐다. R&D에 쓴 비용을 자산으로 볼지, 비용으로 볼지 여부를 두고 금융당국은 특별 감리를 했다. 특별 감리 분위기 속에 바이오 스타트업들의 특례 상장은 번번이 무산됐다. 바이오 산업에 대한 투자자들의 기류가 냉각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R&D비용을 자산으로 하든, 비용으로 하든 전체 기업 가치엔 차이가 없다. 회계장부 상 논란일 뿐이다. 금융당국이 제기한 불확실성 탓에 투자 기류만 냉각됐다.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대한 분식 회계 논란은 당국이 자초한 혼란이다. 당초 문제 없다던 회계 처리를 뒤늦게 문제 삼았다. 금융감독원은 삼성바이오로직스가 고의로 회계를 조작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삼성 측은 회계 원칙대로 처리했다며 팽팽히 맞섰다. 금융당국은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대해 대표이사 해임권고와 과태료 처분을 내렸다.

양측의 주장이 첨예하게 맞서고 있어 회계 처리의 잘잘못을 단정하긴 힘들다. 지리한 소송까지 마무리 돼야 일단락 될 것이다. 그 사이 삼성이 바이오 산업을 키우려 했던 골든타임을 놓칠 우려가 크다.

한국 바이오 산업의 흥망을 보며 음모론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한국 바이오 산업을 경계하는 어떤 세력이 주기적으로 스캔들을 일으켜 성장을 꺾는다는 것이다.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성공할까 말까 하는게 바이오 산업이다. 수십 년간 쌓아온 글로벌 제약사들의 카르텔을 깨며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 정치 프레임 속에 그 싹마저 꺾는 우를 범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먼 훗날, 2018년을 돌이켜 보며 바이오산업에서 몇 년을 잃어버렸다고 회고할지 모르겠다.
< 저작권자 ⓒ 자본시장 미디어 'thebell',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주)더벨 주소서울시 종로구 청계천로 41 영풍빌딩 5층, 6층대표/발행인성화용 편집인이진우 등록번호서울아00483
등록년월일2007.12.27 / 제호 : 더벨(thebell) 발행년월일2007.12.30청소년보호관리책임자김용관
문의TEL : 02-724-4100 / FAX : 02-724-4109서비스 문의 및 PC 초기화TEL : 02-724-4102기술 및 장애문의TEL : 02-724-4159

더벨의 모든 기사(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copyright ⓒ thebell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