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9년 05월 21일 08:2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베트남 금융시장, 특히 은행시장에서 한국 은행들의 점유율은 2~3% 정도 입니다. 한국기업을 대상으로 한 영업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머지 98%의 시장을 공략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최근 만난 A은행 글로벌담당 임원은 사석에서 이 같이 말했다. 베트남은 동남아시아지역 중에서 국내 은행들이 가장 많이 진출한 나라다. 국민·신한·우리·하나 등 4대 은행을 비롯 대다수 은행이 현지법인 또는 지점의 형태로 베트남 시내에 간판을 내걸고 영업을 하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신남방 진출 전략의 핵심도 베트남이다. 베트남 경제의 성장 가능성, 베트남에 진출했거나 진출하려는 국내 기업의 수요 등을 고려한 선택이다.
그간 국내 은행들은 베트남 시장에서 나름대로 정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신한은행 베트남법인 '신한베트남은행'은 베트남 금융권 내 '외국계 1위 은행' 타이틀을 거머쥐며 현지 시장에 안착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국민·우리 등 다른 은행들도 순익을 늘리며 안정적인 성장을 해왔다.
하지만 최근 분위기가 바뀌었다.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기업을 상대로 한 영업에 치중하다 보니 국내와 다를 바 없이 치열한 상황에 처했다. 한국 은행들의 시장점유율이 2~3% 수준에 멈춰 있는 것도 이 같은 영업 전략 때문이란 평가다. 특히 신한베트남은행의 시장점유율이 0.9% 가량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 은행간 경쟁은 더욱 치열한 셈이다.
실제로 신한베트남은행을 제외한 대부분 은행은 한국기업을 상대로 한 영업이 90% 이상을 차지한다. 게다가 베트남 현지은행들이 한국기업을 잡기 위해 영업에 나서고 있다. 현지시장 공략을 커녕 집토끼마저 잃을 상황이다.
비단 베트남만이 아니다. 인도네시아, 인도 등 다른 동남아시아 지역도 마찬가지다. 현지에 진출한 한국 은행의 수에 따라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이 같은 분위기는 비슷하다.
문제는 한국기업에 의존한 영업방식은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점이다. 중국이 대표적이다. 중국에 진출한 국내 은행들은 대부분 한국기업을 대상으로 영업을 해왔다. 그러나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로 인해 한국기업의 영업이 어려워지면서 은행들도 피해를 봤다. 중국에 진출한 일부 은행의 경우 적자까지 냈다.
분명 해외진출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선진 금융시장보다 금융 환경이 열악한 동남아시아 지역은 기회의 땅이다. 지금처럼 한국기업만을 대상으로 2~3% 시장에 만족한다면 은행들에게 기회가 될 수 없다.
얼마전 동남아시아 지역에 한국기업을 대상으로 은행간 경쟁이 치열해지자 금융당국 등에서 국가별로 진출할 수 있는 은행을 제한하는 쿼터제를 운영하자는 얘기가 나왔다고 한다. 또 다른 규제가 될 수도 있고 특혜시비 등의 논란이 생길 수 있다는 이유로 유야무야 됐지만 해외진출한 한국 은행이 처한 현실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정부는 21일 주요 은행장 등을 불러 신남방정책특별위원회 주관으로 간담회를 개최하고 해외진출 방안과 전략 등을 논의한다고 한다. 하지만 해외진출 준비하면서 현지기업 보다 영업이 손쉬운 한국기업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전략을 아직까지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지금과 같은 방식을 고수한다면 결국 제 살 깎기식 경쟁에 그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해외진출을 준비하면서 '현지화'만을 외칠 것이 아니라 현지기업을 대상으로 어떻게 영업에 나서 안착할지 고민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울 필요가 있다. 2% 시장이 아닌 98% 시장 공략에 나서야 할 시점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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