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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자본의 '기업구조혁신' 실험

길진홍 벤처중기부 부장공개 2019-09-09 08:11:29

이 기사는 2019년 09월 04일 07:4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은 채권은행 주도의 워크아웃 근거가 되는 법이다. 2001년 한시법으로 제정된 뒤 작년 6월 일몰 폐지됐으나 같은 해 11월 국회 의결을 거쳐 다시 부활했다.약 20여년간 5차례 시효가 연장됐으며 그 사이 부실기업 지원과 채무유예 등 구조조정의 동력을 제공했다.

기촉법은 유동성이 마른 한계기업에 숨을 불어 넣는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부작용이 만만치 않았다. 강제적 자산매각, 인위적 구조조정 등으로 인한 후유증이 사회적 문제를 야기했다. 부실기업 익스포저에 노출된 각 시중은행들이 채권회수에 몰두하면서 '청산형 워크아웃'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워크아웃은 곧 청산의 시작이라는 공포가 부실기업을 떨게 했다.

일부는 채권단을 ‘패싱'하고 법정관리 문을 두드리기도 했다. 채권회수를 숙명으로 하는 은행 주도 아래 사후적 처방이 갖는 태생적이며 구조적인 한계였다. 국회가 지난해 5년간 기촉법을 한시적으로 부활시키면서 '채무자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통합도산법)'과 일원화를 주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채권은행 일변도의 기업구조조정 역사는 '구조혁신펀드'의 등장으로 일대 변화를 맞는다. 구조혁신펀드는 정부 정책자금에 민간 자금을 매칭해 자본시장에서 한계기업을 정상화하려는 취지에서 고안됐다. 작년에 한국성장금융을 운용사로 두고 '구조조정' 간판 대신 '구조혁신'을 달아 첫 등판했다.

혁신의 날개를 단 구조혁신펀드는 자못 파격적이다. 자본시장의 변방에 머물던 기업구조조정을 한국성장금융을 비롯한 모험자본이 참여하는 투자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이 무대는 서로가 살아야 하는 상생의 장이다. 민간은 투자금 회수를 위해, 한계기업은 죽음의 계곡을 건너기 위해 각각 정상화를 도모해야 하는 공동의 이해를 갖는다. 자본의 논리에 의해 일시적 자금난에 빠진 기업에 대해 "살려야 한다" 또는 "살릴 수 있다"는 전제가 펀드의 동력이 되는 셈이다.

시작은 성공적이다. 최초 모집된 5400억원의 종잣돈을 기반으로 일부 지원을 받은 서진산업은 보릿고개를 넘기고 전기차 시장 확대와 현대차 팰리세이드 판매 증대로 재무제표가 개선되는 효과를 봤다.

채권단 지원이 끊겨 살길이 막막하던 동부제철도 한국성장금융 결단으로 자금을 수혈받고 정상화 발판을 마련했다. 이밖에 다수 회생기업과 워크아웃기업들이 블라인드형태로 기업구조혁신펀드의 지원을 받고 있다. 통곡과 아우성. 아픔과 눈물이 수반되는 기업구조조정에 혁신을 가미한 모험자본의 실험은 그래서 더욱 의미가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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