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백화점그룹 비상경영]"이미 수년전 매각 원칙" HCN 현금화, 때가 왔다⑤합산규제 공백 몸값 올릴 기회, 수천억 재원 마련 기대
최은진 기자공개 2020-04-01 09:00:51
[편집자주]
현대백화점그룹이 유통업계 침체에 더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사태까지 닥친 데 따라 전례 없는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했다. 보수적이고 변화에 둔감하기로 유명한 현대백화점그룹이 이례적으로 각 계열사별로 기민하게 움직이는 분위기다. 이 과정에서 성장전략의 재조정이나 자산매각 등이 이뤄질 것으로 관측된다. 향후 10년을 준비하는 현대백화점그룹의 성장전략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 기사는 2020년 03월 30일 08:3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현대백화점그룹에 있어 현대HCN은 수년 전부터 언제든 현금화 할 수 있는 자산으로 여겨졌다. 매각 가능성이 높다는 몇번의 소문에도 손사래 쳤던 건 직원들의 사기 문제와 함께 '때'를 기다렸기 때문이다. 경쟁자들이 안달나 몸값을 올릴 절호의 기회를 노렸을 뿐 수년 전부터 '판다'는 원칙에는 변함이 없었다.기다리던 '때'가 왔다. 현대백화점그룹은 현대HCN을 다시 협상 테이블 위에 올렸다. 한 사업자가 유료방송시장 점유율 1/3을 넘지 못하도록 한 '합산규제' 공백기인 지금이 적기라고 판단했다. 더욱이 경쟁매물인 딜라이브의 매각이 연기되고 있는 상황인 만큼 IPTV(Internet Protocol Television, 인터넷 프로토콜 텔레비전) 사업자들은 현대HCN만 잡으면 확고한 1위 자리를 쟁취할 수 있는 상황이다.
현대백화점그룹은 현대HCN의 몸값을 시장에서 파악하는 수준 이상을 기대하며 수천억원의 재원마련 기회로 보고 있다. 현재 비상경영 체제에 접어든 상황에서 대규모 현금을 거머쥐며 신규 투자재원을 마련하겠다는 의지다.
◇4년 전 매각키로 결정, 수익성 경영 집중
현대백화점그룹은 현대홈쇼핑을 통해 2002년 8월 현대HCN을 인수했다. 서초·관악·청주·금호·부산 등 7개의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를 인수해 브랜드명을 HCN(Hyundai Communications & Network)으로 변경했다. 2005년 관악유선방송, 대구중앙케이블TV 등을 잇따라 인수합병(M&A)하면서 여러 지역의 채널권을 보유한 MSO(Multiple System Operator)로서의 입지를 구축했다.
신성장 사업으로 밀고 있던 현대홈쇼핑에 힘을 싣기 위해 SO(System Operator) 사업에 진출했다. 현대홈쇼핑은 PP(Program Provider)사업자로서 채널권 및 지역 독과점 지위를 확보하고 있는 SO의 존재가 절실했다. 얼마나 좋은 채널을 받을 수 있느냐가 곧 매출로 이어지는 구조인 만큼 SO와의 협업이 무엇보다 중요했기 때문이다. 현대백화점그룹에게 현대HCN은 현대홈쇼핑을 지원하는 투자이자 새로운 수익원이었다.
하지만 2009년 IPTV가 도입되면서 방송시장이 유선방송사업자에서 통신사업자 중심으로 개편됐다. 도입 5년만인 2014년 가입자 1000만명 시대를 열며 유선방송사업자와 어깨를 나란히 하더니 2018년에는 가입자 1500만명까지 확대하며 압도적인 경쟁 우위를 점했다.
유선방송사업자가 설 땅이 좁아진 데 따라 속속 매물로 등장하면서 유선방송시장은 M&A 장터로 바뀌었다. 가입자 기준 선두주자인 KT를 맹추격 하고자 LG유플러스가 CJ헬로비젼을, SKT가 티브로드를 인수하는 등 유선방송사업자를 통한 가입자 확보 경쟁에 돌입했다.
이러한 방송시장의 변화 속에서 현대백화점그룹도 이미 4~5년 전부터 현대HCN '매각' 원칙을 정했다. 시대의 흐름 속에서 유선방송사업은 매물로서의 가치만 있을 뿐 사업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매각 때까지 수익성 중심의 경영전략을 펼치기로 했다.
실제로 2015년부터 현대백화점그룹은 현대HCN에 배정하는 투자금액을 줄이고 자회사를 흡수합병 시키는 방식으로 비용 효율화를 꾀했다. 실적도 매출 3000억원, 영업이익 400억원대로 일정하게 유지하는 데 집중했다.
현대백화점그룹이 현대HCN을 매각하기로 원칙을 세웠음에도 곧바로 나서지 않았던 이유는 '느린 DNA' 때문이기도 하지만 '때를 기다렸다'고 보는 게 더 바람직하다. 유선방송사업자들이 합종연횡을 하며 세(勢)를 합치고 통신사업자들과 손을 잡는 등의 변화를 맞이하는 상황에서 일단 관망을 택했다. 통신사업자의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유선방송사업자의 수가 더 줄어들수록 현대HCN의 몸값이 더 높아진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현대백화점그룹 고위 관계자는 "현대HCN은 방송환경의 변화에 맞물려 더이상 사업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판단했다"며 "정지선 회장이 이미 4~5년 전부터 매각을 원칙으로 내세웠고 그동안 수익성 중심의 경영에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매도자 우위 시장 관측, "살 사람 줄 섰다"
현재 현대백화점그룹은 현대HCN을 매각할 그 '때'가 왔다고 판단하고 있다. 내부적으로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하면서 전반적인 전략을 재조정하고 나선 데 더해 현금성 자산 확보도 중요해졌다. 적자가 지속되는 현대백화점면세점에 수천억원에 달하는 투자를 단행하고 있고 오프라인 점포 출점 전략도 지속하고 있어 재원마련이 시급하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실적저하 및 재무구조 악화에 대한 불안감이 생겼다. 보수적인 재무전략 하에서 무엇보다 현금성 자산 확보가 절실해졌다.
이런 가운데 현대HCN을 가장 먼저 매각 테이블에 올렸다. 매물로서의 매력도가 어느정도인지 내부적으로 검토한 결과 '적기'라고 판단했다. 법규정이나 통신사업자의 움직임 그리고 경쟁사의 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했을 때 가장 높은 몸값을 받을 절호의 기회라고 분석했다.
우선 '유료방송 시장 합산규제'의 일몰로 인해 통신사업자들이 법적인 과점 눈치를 보지 않고 경쟁을 펼칠 여건이 조성됐다. 이 법은 한 회사가 점유율 1/3을 넘어서는 안 된다는 규제로 2018년 6월 일몰됐다. 물론 현재 국회에서 재도입 논의가 일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합산규제가 아닌 다른 방식의 규제를 도입하자는 움직임도 있다.
따라서 LG유플러스나 SK텔레콤 뿐 아니라 1위 사업자인 KT까지도 유선방송사업자 M&A 경쟁에 가세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더욱이 MSO 사업자로는 현대HCN과 딜라이브 외에는 대형매물이 없다는 점도 현대HCN에 우호적인 환경이라고 볼 수 있다. 그야말로 '매도우위' 시장이 된 셈이다.
시장에 알려진 바에 따르면 현대HCN의 몸값은 대략 5000억~7000억원 정도다. 그러나 현대백화점그룹은 이보다 더 높은 가격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대HCN을 확보하는 통신사업자는 압도적 1위 입지를 구축할 수 있는 만큼 프리미엄이 얹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경쟁상대인 딜라이브 매각이 지연되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현대백화점그룹은 현대HCN 매각으로 확보한 수천억원의 자금을 통해 신성장 사업에 투자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전해진다. 현재로선 면세점과 신선식품 사업, 온라인 그리고 아웃렛 등의 출점전략이 고려된다. 특히 온라인 사업의 경우 통합몰 구축에만 조단위 자금이 투입된다는 부담에 적극적이지 못하고 있는 데 따라 이를 강화하는 데 상당부분이 활용될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앞선 관계자는 "방송법 일몰로 인해 현재 현대HCN의 값어치가 가장 높을 때라고 판단했고 실제로 원매자가 줄을 서고 있다"며 "이를 통해 대규모 재원을 마련해 성장전략에 활용할 것으로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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