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4년 11월 21일 06:5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오너(owner). 주인, 소유주. 기업을 거론할 때 흔하게 쓰는 말. 특정 가문을 중심으로 기업이 탄생하고 대를 잇는 경영으로 성장을 이룬 그룹들. 대한민국 경제성장의 역사에서 이들 오너들의 활약을 빼놓을 수 없다는 점에 이견이 없다.하지만 그렇다고 가문의 혈통이 반드시, 또 마땅히 지켜져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지배구조 선진화라는 재계 트렌드에서 오너니 가문이니 하는 말이 횡행하는 게 불편해지는게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소수의 지분으로 '오너일가'라는 명분을 내세워 전체를 장악할 수 있다는 사고는 전체주의와도 같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과 지분의 논리'를 이길 명분이 있을까. 더욱이 이제 '주주행동주의'라는 이름으로 개인들이 뭉치기 시작했고 더이상 불합리한 경영을 참으려고도 하지 않는다면.
이사회, 지배구조, 전문경영인 등 기업의 경영시스템을 집요하고도 치열하게 묻고 따지는 언론, 사법기관, 정치권은 그래서 정당성을 얻는다. 투명하게 경영활동을 하고 있느냐가 '혈통이나 가문'보다도 더 중요한 잣대가 되는 시대가 오늘날이다.
한미약품그룹의 경영권 사태를 논하는데 기업의 시대정신을 꺼내는 이유는 오너일가 및 대주주들이 갈등의 정당성을 창업주인 '임성기 정신'에서 찾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를 빼앗긴다'는 논리, 을사늑약이라는 얘기가 난무하는 감정적 반응들. 천륜까지 져버린 고소고발 비방전.
더벨은 분쟁 전면에 선 모든 대주주를 만나 소통했다. 그들은 각자가 가진 임성기 정신에 대한 정통성, 한미를 위하는 진정성을 호소하며 갈등을 정당화했다.
신념은 이성을 흐린다. 그래서 정말 한미를 위하는 길이 무엇이냐에 대한 답이 개인의 패권, 상대의 몰락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타협할 여지도, 물러날 이유도 부정한다. 이사회는 세력에 따라 쪼개지고 정당하게 이뤄져야 할 의사결정도 정치적 이슈로 지연된다.
정기주총서 선출된 임원은 지배력이 없고 이해관계에 따라 임시주총은 숱하게 열린다. 주요주주를 외부세력으로 폄하하는 부조리 그리고 경영진·직원들이 서로가 서로를 불신하는 분위기까지. 대주주라는 이름으로 경영시스템을 교묘하게 이용하고 또 무력화한다.
그들에게 물었다. 정말 '임성기 정신'을 지키는 일이 이렇게 한치의 양보도 없이 충돌하는 것 뿐인지. 그건 상대에게나 가서 물을 일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 정도 되니 이젠 '임성기 정신이 도대체 뭐길래'라는 생각도 든다.
누가 맞고 틀리고를 논할 수 없을 정도로 각자의 의견엔 정의도 불의도 없다. 그러나 지금 이렇게 갈등만 하고 있는 현실은 분명하게 불의다. 이제 오너니 창업주 정신이니 하는 낭만적인 말들은 거뒀으면 한다. 자본시장 논리, 경영시스템의 합리성에 맡겨야 한다.
본질적으로 한미약품그룹에 오너란 없다. 대주주도 주인이 아니다. 주주들의 선택, 엄중한 절차로 뽑힌 이사회. 이 것만이 기업의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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