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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상 달라진 한국물, 시대착오적 규제에 성장 정체 [한국물시장 관치 논란]③기업 차입구조 다변화 노력 '찬물'…조달리스크 관점에서도 마이너스

피혜림 기자공개 2020-06-16 14:01:43

[편집자주]

대한민국 자본시장에서 정부의 입김이 가장 강하게 작용하는 곳이 바로 한국물 시장이다. 외채 부채 관리를 전담하는 기획재정부는 기업 조달을 좌지우지하는 그야말로 막강한 권력자다. 한국물 발행을 위해서는 기재부를 향한 간곡한 읍소가 필수라는 우스갯소리마저 나온다. 자금 사용처와 프라이싱 일정 등도 일일이 허락을 받아야 한다. 외화 건전성을 위해 일종의 교통정리가 필요하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달라진 시대 상황을 고려할 때 지나친 '관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율성 확보를 통한 한국물 시장의 성장 전략 등을 모색해본다.

이 기사는 2020년 06월 05일 06:3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정부의 한국물(Korean Paper) 시장 개입은 다분히 시대착오적 접근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꾸준한 펀더멘탈 강화로 글로벌 채권시장 내 한국물의 입지는 굳건해지고 있지만 정부의 규제는 과거에 머물러 있는 모습이다.

한국물은 'AA'급 정부 크레딧을 기반으로 아시아물 중에서도 안전자산으로 인정받고 있다. 대외신용도를 가늠하는 지표인 신용부도스와프(CDS)가 나날이 최저점을 경신했던 배경이다.

반면 한국물 조달에 대한 정부 규제는 외환위기 수준에 그쳐있다. 물론 기축통화가 아니라는 원화 특성상 정부가 통화정책에 민감할 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외화채 발행 자체를 제약하는 현재의 규제는 달라진 시장 환경에 대응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이슈어들의 외화채 발행 역량이 과거 대비 높아졌다는 점에 대한 인지 역시 부족해 보인다.

◇'AA'급 우량국가 거듭, 한국물 인기 꾸준

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대한민국 정부에 'Aa2' 등급을 부여하고 있다. Aa2 등급은 'Aaa'(12개국)와 'Aa1'(2개국)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단계다. 아시아 국가 중 Aa2 이상 크레딧을 보유한 곳은 대한민국 외에 싱가포르(Aaa)와 홍콩(Aa2) 뿐이다. S&P와 피치는 대한민국 정부 신용등급으로 각각 AA0, AA- 등급을 부여하고 있다.

무디스 기준 대한민국 정부 신용등급 변동 추이(출처 : 무디스)
대한민국 정부 크레딧은 1997년 이후 꾸준히 상승했다. 무디스 기준 외환위기 여파로 1997년 'A3'로 떨어졌던 정부 신용등급은 2015년 'Aa2'까지 올라섰다. 무디스는 고령화와 북한 변수 등을 위협 요인으로 평가하면서도, 강한 충격에 대한 효과적인 거시경제·재정·통화관리 역량 등을 이유로 해당 등급을 유지하고 있다.

정부에 대한 우량 크레딧에 힘입어 글로벌 채권시장 내 한국물 입지도 달라지고 있다. 한국의 경우 이머징마켓으로 분류되지만 해당 국가 중 압도적인 크레딧을 유지하고 있어 높은 안정성을 인정받는다. 글로벌 기관들로부터 상대적 안전자산으로 인식된 결과 지난해 한국물 발행 가산금리(스프레드)는 꾸준히 최저점을 경신했다. 한국 5년물 CDS 프리미엄은 코로나19 사태 전 20bp대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한국 5년물 CDS 프리미엄 추이(출처 : NICE C&I)

◇규제 정책은 그대로, 보호무역주의 특성 여전

하지만 한국물 발행을 관리하는 기획재정부의 규제는 A급 크레딧을 유지했던 10여년 전 수준에 머물러 있다. 기획재정부는 외화채 자금 사용처는 물론 스왑 여부에 대한 소명서 등을 받아 윈도우를 부여한다. 사실상 정부가 외화채 발행 여부를 승인한다는 점에서 발행시장 성장의 제약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프라이싱 일정 등을 지정하는 점 역시 논란이 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이슈어에 1~2일 가량의 날짜를 줘 해당 기일 내 프라이싱을 진행토록 하고 있다. 한국물 발행이 겹치지 않도록 해 투심이 분산되는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이는 글로벌 금융시장 내 변동성 고조로 해당 일자에 투심이 위축되는 경우 기업 조달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국물에 대한 수요가 상당한 데다, 이슈어가 자체적으로 조달 시기 등을 결정할 역량이 충분하다는 점이 간과된 결과 기업 자금줄 자체를 가로막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국가의 개입 정도가 상당한 중국조차도 외화채 조달시 프라이싱 날짜를 분기 내로 제시한다.

업계 관계자는 "기재부의 외화채 규제는 개발도상국 시절 보호무역주의적 성향이 강해 보인다"며 "한국물 조달 역량 강화로 기업 자체적으로 발행 시기 등을 판단할 수 있는 수준까지 올라섰다"고 말했다. 또 "이런 상황에서도 정부는 개입을 통해서만 시장이 지속될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을 고수하는 모습"이라고 덧붙였다.

◇한국물, 조달 다변화 기여 미미…시장 성장 제한

최근 한국물 시장 내 화두는 이종통화와 환경·사회·지속가능채권(ESG)이었다. 한국물 발행을 이어왔던 이슈어들은 이미 달러채 발행을 넘어 유로화와 엔화, 스위스프랑, 호주달러 등으로 투자처를 넓히고 있다. 글로벌 채권시장 내 새 트렌드로 부상한 ESG채권에 대한 관심 역시 뜨겁다.

이처럼 국내 이슈어들의 조달 역량은 이미 글로벌 주요 이슈어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성장하고 있다. 단순히 달러채 조달만을 이어가는 것을 뛰어넘어, 다양한 역내 시장과 스왑 여건 등을 주시한 발행에 나서고 있다. ESG채권 등 글로벌 트렌드에 대한 파악을 통해 시장 변화에 발빠르게 대응하기도 했다.

시장 역량은 상당한 수준까지 성장했지만 정부 규제 등으로 발행사와 조달 규모 등이 제한된다는 한계는 여전하다. 수수료 인하 압박 등에 대응해 국내 카드사들이 해외 ABS 신규발행 심사 요건 등을 완화해 달라는 요구를 지속하는 등 외화채 발행에 대한 수요는 꾸준했다.

최근 원화채 시장 내 투심 위축으로 조달이 어려워진 기업들이 늘고 있다는 점에서 기재부 규제에 대한 우려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글로벌 채권시장의 경우 하이일드본드 시장이 활성화 돼 있어 크레딧이 낮더라도 금리조건 등을 높이는 방식의 조달이 가능하다. 우량채로 투심이 몰리는 성향상 크레딧이 낮은 기업은 자금 마련이 쉽지 않은 국내 시장과 차이를 보인다.

지난달 두산밥캣이 신용보강을 제공한 자회사 담보부보증채 딜은 이를 잘 보여준다. 'Clark Equipment Company'는 모회사인 두산밥캣의 크레딧을 활용해 3억달러 규모의 담보부채권 발행에 성공했다. 국제 크레딧 기준 BB급 채권이었지만 하이일드채 투심 등에 힘입어 BBB급 GM이 발행한 동일만기 채권보다도 낮은 금리를 달성했다. 관련 업계에서 두산밥캣의 원화채 발행이 사실상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는 점과 대비된 모습이다.

시장 관계자는 "기업들은 조달 시장을 넓혀 시장 변동성에 대응 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반면, 이를 위해 가장 적극적으로 이용될 수밖에 없는 한국물 시장은 기재부의 각종 규제에 가로막혀 활용도가 낮은 상황"이라며 "달라진 국가와 기업 펀더멘탈 등을 받아들이고 자율성을 부여해도 시장이 완성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한 정부의 믿음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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