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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규의 '기다림' [thebell note]

유수진 기자공개 2020-06-11 08:15:03

이 기사는 2020년 06월 10일 07:3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모니시 파브라이가 세계적인 가치투자의 명인이 된 이유는 남들보다 뛰어난 실천력에 있다. 투자에 있어 우선순위를 정해 철저히 실천하는 태도는 그의 가장 큰 장점이다."

정몽규 HDC그룹 회장은 '투자를 어떻게 할 것인가'의 저자 모니시 파브라이를 이 같이 평가했다. 그가 '단도투자'라는 자신의 투자철학을 행동으로 옮겨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줬다는 점을 높이 샀다. 정 회장 본인도 기업경영에 '단도투자의 원칙'을 적용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두 사람은 매년 한두차례씩 포럼에서 만나 깊은 토론을 하는 사이다.

단도투자는 리스크를 낮추면서 고수익을 창출하는 걸 목표로 한다. 기존 사업과 단순한 사업, 침체된 사업 등에 투자하는 게 핵심이다. 특히 '기다림'을 강조한다. 시장이 공포에 빠질 때 자산가격이 실제가치 이하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다. 단도투자의 원칙에 따르면 모두가 두려워하는 순간이 바로 욕심을 내야하는 때다.

정 회장은 과거 건설사업을 확장할 때 종종 기다림을 실천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경기가 침체된 상황에서는 무리하게 분양을 밀어붙이기 보단 금융비용을 부담하더라도 분양시기를 늦추는 방식을 택했다. 차분히 기다리다가 '때'가 됐다는 판단이 서면 파격적으로 물량을 풀었다. 철저한 수요조사 등을 거쳤기에 배짱있게 추진할 수 있었다.

최근 아시아나항공 인수에도 이 같은 전략을 활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나항공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기업가치가 대폭 평가절하된 상태다. 작년 상반기까지만 해도 영업활동으로 매년 6000억~7000억원 규모의 현금을 창출하던 기업이 불과 1년만에 자본잠식에 빠졌다. 서로가 사겠다며 눈치싸움을 벌였었는데 어느순간 아무도 인수를 원치 않는 처지가 됐다.

그간 정 회장은 오랫동안 침묵을 지켰다. 거래종결 시한이 코 앞으로 다가왔지만 시장에 어떠한 의미있는 시그널도 주지 않았다. 산업은행으로부터 '최후통첩'이 날아와도, 자신이 발을 빼려 한다는 소문이 떠돌아도 눈 하나 깜짝 하지 않았다. 그저 본인이 믿는 '때'를 묵묵히 기다렸다.

초조해하며 애를 태운 건 산은이다. 결국 먼저 티를 내기에 이르렀다. 산은은 HDC 측에 공문을 보내며 기한 내 인수의지 표명시 적극 지원해주는 쪽으로 내부의견을 모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 딜에 그룹 생사가 달린 금호 측도 노심초사하는 나날을 보냈다. 어떻게든 아시아나항공을 팔기 위해 전향적인 자세를 취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긴 침묵은 정 회장에게 유리한 쪽으로 판을 바꿔놓았다.

그러자 마침내 정 회장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산은에 인수조건 변경을 공식 요구하고 나섰다. 기존 조건으로는 절대 진도를 뺄 수 없다고 배수진을 쳤다. 지금이 기다림을 끝내고 승부수를 띄울 '때'라는 판단을 내린 듯 하다. 파브라이의 장점이라던 '뛰어난 실천력'이 정 회장의 모습에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그의 전략이 이번에도 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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