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0년 11월 18일 08:1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주식 스왑은 혈맹에 비유된다. 기업에서 지분을 넘기는 건 피를 나누는 것만큼 과감한 결단이 필요해서다. 어려운 결정이지만 최근 이 사례가 늘고 있다. 1년여 사이 네이버와 CJ, SK텔레콤과 카카오가 수천억원대 주식 교환으로 혈맹을 맺었다. 기술 고도화가 빨라진 상황에서 새 먹거리를 찾아 나서려면 협업도 소극적 수준만으론 부족하다는 판단 때문이다.대기업 사례에서만큼 시장의 이목을 끌진 못했지만 중소기업계에서도 혈맹을 구축해 경영권 방어와 신사업 추진의 윈윈을 꾀한 업체들이 있다. 음향 부품사 '이엠텍'과 줄기세포 치료제 개발사 '안트로젠'이다. 양사는 2017년 처음으로 주식을 스왑한 이후 최근까지 이 관계를 강화해 왔다. 이엠텍이 안트로젠 지분 8.1%, 안트로젠이 이엠텍 지분 7.8%를 나눠 갖고 있다.
여기엔 이엠텍 창업주 정승규 대표의 역할이 지대했다. 정 대표는 공동 창업주 황상문 전 대표가 2011년 엑시트에 나서면서 새로운 우군이 필요해졌다. 한동안은 개인 자격으로 이엠텍에 투자한 삼호산업 박연구 회장 지분이 안전판이 돼줬지만 2015년들어 박 회장마저 투자금 회수에 나서면서 백기사 확보가 절실해졌다.
2015년 말 정 대표의 이엠텍 지분율은 특수관계자를 통틀어도 14%대에 불과했다. 단독으로 특수 결의 안건을 통과시킬 수 없는데다 적대적 M&A 세력이 작심하고 파고들 경우 경영권을 위협받을 수 있는 처지였다.
정 대표는 이무렵 신사업 구상에 나서면서 혈맹 구축까지 가능한 업체를 우선 순위에 놓고 파트너사를 찾아 나섰다. 부광약품을 떠나 홀로서기에 나서고 있던 안트로젠 이성구 대표가 레이더 망에 잡히자 윈윈을 도모했다. 이 대표 역시 지분율이 낮았던 상황에서 치료제 개발을 이어나가기 위해 자금 수요가 컸던 터라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정 대표는 스왑을 통해 혈맹을 구축한 안트로젠이 경쟁력을 지닌 분야를 추가해 '사운드·헬스케어'로 이엠텍 성장 방향성을 구체화했다. 이어 자사주를 안트로젠에 넘기고 반대로 안트로젠 신주를 배정·발행받았다.
이후 이엠텍이 선보인 첫 융합 신사업 시도는 2017년 말 보청기 벤처 비에스엘 인수다. 음향 기술력을 보강한 동시에 헬스케어 시장 진출을 예고했다는 점에서 상징적 의미가 컸다. 이어 헬스케어 분야에서 독자적으로 전자담배와 뷰티기기 사업에 뛰어들었고 전자담배에선 유의미한 매출 성장 효과도 거뒀다.
작년 양사는 전환사채 전환권 행사 등으로 관계를 보강했다. 하지만 새로운 협업 사례는 아직이다. 비에스엘 인수를 시작으로 다양한 시도가 기대됐던 터라 아쉬움이 남는다. 양사 간 혈맹이 창업주들의 지배력 방어를 위한 단순 실리 도모에 그쳤다는 평가를 피하려면 보다 적극적인 행보가 필요해 보인다. 정 대표의 주식 스왑 노림수가 무엇이었는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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