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은 조선업 구조조정 리뷰]'아픈 손가락' SPP조선, 1.4조대 손실의 기억②국책은행 역할 미흡 사례, 적자폭 줄이려 성동조선 선택 해석도
김규희 기자공개 2021-04-14 15:35:24
[편집자주]
한국수출입은행이 대선조선을 매각하며 10년여에 걸친 중소형 조선사 구조조정의 대여정을 마무리했다. 돌이켜보면 조선업 구조조정 탓에 40년만에 첫 적자를 내는 아픔도 겪었고 청산이 유력했던 곳들의 구조조정에 성공하며 역할을 입증하는 성과도 냈다. 성공과 실패로 엇갈려 있는 조선사 구조조정 사례를 돌아보고 그동안의 성과와 남은 과제는 무엇일지 짚어본다.
이 기사는 2021년 04월 07일 10:5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SPP조선은 한국수출입은행의 중소 조선사 구조조정 역사에서 가장 ‘아픈 손가락’으로 꼽힌다. 2002년 동양조선에서 시작한 SPP조선은 2000년대 중반 조선업 호황기 흐름을 타고 SPP강관(자원), SPP건설, SPP중공업, SPP해양조선 등 9개의 계열사를 거느리는 그룹사로 성장했다.하지만 2009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몰락의 길을 걸었다. 2005년부터 본격적으로 사세를 확장하며 외부에서 투자금을 끌어모았으나 조선업황이 얼어붙자 순식간에 무너졌다. 수출입은행 등 채권단은 1조4000억원에 달하는 대규모 자금을 쏟아부으며 심폐소생을 시도했지만 SPP조선을 살리는 데 결국 실패했다.
◇ 무리한 계열사 확장, 업황 부진해지자 줄도산
2002년 동양기공으로 시작한 SPP조선은 7년 만에 9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SPP그룹으로 성장했다. 다른 조선사로부터 선박용 블록 구조물을 수주해 생산하는 하청기업이었으나 2004년 동양조선으로 사명을 바꾸고 조선산업에 뛰어들었다.
2006년 사명을 SPP조선으로 바꾸고 본격적인 사업체 확장에 나섰다. 당시 조선산업은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던 시기였다. 2005년 300억원에 불과했던 매출액은 1년 새 2500억원으로 급증했다. 같은 기간 15억원이었던 영업이익은 183억원으로 올랐다. 당기순이익 역시 11억원에서 102억원으로 뛰었다.
자신감을 얻은 SPP조선은 계열사를 급속도로 늘렸다. 2005년 SPP해양조선, 2006년 SPP강관(자원)과 SPP건설, 2007년 SPP해운과 SPP로직스, 2008년 SPP율촌에너지, 2009년 SPP중공업 등을 설립했다.
SPP조선은 계열사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했다. 2008~2009년 사이 5개 신규 계열사에만 4000억원대 자금이 집행됐다. 투자금은 대부분 외부에서 끌어왔다.
이런 가운데 파생상품 손실이 터졌다. 손실액만 8000억원에 달했다. 안타깝게도 조선업황까지 급속도로 얼어붙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자 전 세계 조선산업에 찬바람이 불어 닥쳤다.
그동안 신규 수주물량 확보를 위해 저가 수주를 지속한 영향으로 수익성 악화를 면치 못했다. 2008년 1조2000억원대 영업외손실을 기록한 SPP조선은 유동성 위기를 넘기지 못했고 2010년 5월 채권단과 경영정상화를 위한 자율협약을 맺었다.
◇ 숱한 매각 시도에도 결국 파산, 수은 손실만 1조원
자율협약에 돌입한 SPP조선은 인력감축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감자를 통해 이낙영 회장 등 오너 일가 지분을 소각하고 SPP조선을 제외한 모든 계열사에 대한 매각 역시 추진됐다.
당시 채권단은 국민, SC, 농협, 외환은행 등 시중은행과 우리은행, 수출입은행, 무역보험공사, 서울보증보험 등으로 구성됐다. 주채권단은 우리은행이 맡았지만 채권의 절반가량을 보유한 수출입은행이 구조조정 키를 잡았다. 주요 의사결정은 최대채권자 수출입은행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채권단은 2011년 1월 SPP강관을 세아제강에 매각하는데 성공했다. 이듬해 3월에는 SPP중공업과 SPP율촌에너지를 한꺼번에 매각하고자 했으나 매수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에 ‘알짜 계열사’인 SPP율촌에너지만 분리해 매각을 추진했다. SPP율촌에너지는 풍력발전 시스템과 단조제품을 제조·판매하는 기업으로 SPP조선의 신성장동력으로 꼽히는 계열사였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SPP조선 구조조정은 가시밭길의 연속이었다. 계열사 매각은 계속해서 실패했고 SPP조선 실적 역시 연일 곤두박질쳤다. SPP조선의 당기순손실은 2010년 2771억원에서 2011년 3090억원까지 확대됐다. 2012년 1844억원으로 손실이 줄었으나 2013년에는 다시 3202억원으로 늘었다.
이런 상황에서 수출입은행 등 채권단은 SPP조선을 살리기 위해 계속해서 신규자금을 지원했다. 자율협약 이후부터 2014년 말까지 투입된 신규자금만 6000억원에 달한다. 그럼에도 경영난에 허덕이다 법정관리 처지에 처하자 2015년 4월 추가적으로 4850억원 규모의 자금을 지원했다.
SPP조선은 그 해 8척의 유조선 수주에 성공하고 채권단에 선수금환급보증(RG)을 요구했다. RG는 조선사가 약속한 기한까지 선박을 건조하지 못하거나 파산하는 경우 선주로부터 받은 선수금을 은행이 대신 물어주는 지급보증이다. 우리은행은 적극적으로 나섰지만 수출입은행은 반대 의사를 표했다. 저가 수주 우려가 있어 상황이 더 악화될 수 있다는 이유였다.
유조선 수주는 최종적으로 무산됐지만 2015년말 158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하며 흑자전환에 성공해 부활 기대감을 키웠다. ‘조선 구조조정 모범답안’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이에 삼라마이다스(SM)그룹이 SPP조선을 인수하겠다고 나섰고 인수 양해각서(MOU)까지 체결했다.
하지만 SM그룹은 정밀실사 결과 추가 위험 요인이 발견됐다며 인수의사를 철회했다. 이후 인수 의향을 밝힌 매수자가 나타나지 않으면서 SPP조선은 유휴자산 매각 후 2019년 파산에 이르렀다. 당시 수출입은행이 가진 채권액은 1조원에 육박한 9872억원이다.
◇ SPP조선 파산, 여신·RG 규모 더 큰 성동조선 선택
일각에선 수출입은행이 SPP조선를 버리고 성동조선을 택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아울러 STX조선이 아니었다면 SPP조선을 살릴 수 있었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당시 수출입은행은 STX조선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STX조선으로 6000억원 가량의 손실이 발생한 상황에서 성동조선과 SPP조선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다.
성동조선이 파산할 경우 지급보증한 여신과 RG 등 2조3000억원의 대규모 손실이 불가피했다. 게다가 수출입은행은 성동조선을 요주의로 분류하고 충당금을 적게 설정한 상황이었다. 반면 SPP조선에 대해서는 9872억원의 채권액을 ‘회수 의문’으로 분류해놨다. 대규모 손실을 피하기 위해 성동조선에 투자 여력을 집중했고 SPP조선은 파산을 피할 수 없게 됐다.
SPP조선 구조조정 과정을 지켜본 금융권 관계자는 “2000년대 초중반 수주량을 늘리기 위해 중소 조선사들이 무리하게 저가 수주 경쟁에 나섰고 이는 곧 동반 몰락을 가져왔다”며 “구조조정 역할을 맡은 수출입은행이 고군분투 건 사실이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하면서 막대한 국민 혈세를 허투루 썼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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