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비메모리 경쟁력 점검]메모리 신화, '2030 시스템'에도 통할까①"기술로 판 뒤집겠다" vs "정석대로 바닥부터 다져야"
김혜란 기자공개 2022-03-15 14:34:44
[편집자주]
삼성전자는 1974년 '한국반도체를 인수하며 반도체 불모지에 씨앗을 심었다. 그 싹이 자라 '세계 1위 메모리 강국'으로 꽃피우기까진 18년이 걸렸다. 2005년에는 파운드리(위탁 생산)에 도전했다. 반도체에 세트(완성품)까지 다 하는 기업은 삼성이 유일하다. 삼성은 2030년 비메모리에서도 1위가 되겠다는 새 비전을 제시하며 반도체 신화 제2막의 장을 열었다. 삼성 반도체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이를 뛰어넘을 미래를 조망해 본다.
이 기사는 2022년 03월 11일 10:2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2019년 1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비메모리(시스템 반도체·파운드리) 분야에서 전 세계 1위에 오르겠단 야심 찬 계획을 발표했다. 30여 년 전 메모리 반도체(디램·낸드) 신화를 일군 자신감을 바탕으로 새로운 목표를 향해 나가겠단 것이었다.이는 메모리·시스템 반도체 설계와 제조까지 소화하는 종합반도체회사(IDM)이면서 파운드리(위탁 생산)까지 다 잡겠다는 선언이자, 누구에게나 버거운 도전이다. 파운드리 고객사인 팹리스(시스템 반도체 설계 전문기업) 입장에서 삼성은 경쟁사이기도 하다. 삼성에 생산을 맡기면 설계 기술이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를 안 할 수 없다.
'2030 선언' 이후 3년이 흐른 지금, 삼성은 어디까지 왔을까. 또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삼성전자가 앞으로 어떤 궤적을 그리느냐에 한국 비메모리 반도체 생태계의 미래가 달렸다.
◇어떻게 1등 됐나…"메모리는 '시간·돈과의 싸움'"
삼성전자는 1992년 디램, 10년 뒤 낸드까지 세계 최정상에 올라 지금까지 한 번도 왕좌를 뺏긴 적이 없다.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작년 4분기 삼성은 디램 시장점유율 43.3%, 낸드 33.1%로 경쟁자들을 따돌렸다. 반도체 불모지였던 한국에서 삼성은 어떻게 세계 1위 메모리 기업으로 일어섰을까.
삼성이 자체 디램 개발에 성공한 건 1983년이다. 글로벌 메모리 시장을 일본·미국 업체가 휘어잡고 있던 때다. 메모리 반도체는 세계에서 통용되는 제품이 거의 공통 규격이라 대량 생산이 용이했고, 당시만 해도 진입 장벽이 그리 높지 않았다.
문제는 20여 개 업체가 각축전을 벌일 정도로 경쟁이 치열한 시장이었단 점이다. 삼성은 운명을 걸고 과감한 투자 의사결정을 내린다.
불황으로 해외 기업들이 설비투자를 줄일 때도 삼성은 생산능력 확대, 연구·개발 투자를 멈추지 않았다. 공정 기술을 발전 시켜 고성능·고용량에다 전력소비가 낮은 신제품을 시장에 계속 내놨다. 경쟁사와의 기술 격차는 점점 더 벌어졌고, 가격경쟁력에서도 확고한 우위를 가지게 됐다.
반면 2000년대 들어 출혈경쟁을 버티지 못한 독일 키몬다, 일본 엘피다(마이크론이 인수) 등은 무대에서 퇴장했다. 이로써 디램 시장은 삼성과 SK하이닉스, 마이크론 3사의 과점체제로 정리됐다. 낸드는 이들 3사에 키옥시아, 웨스턴디지털까지 5곳이 시장을 분할하는 구도로 재편됐다.
◇"파운드리는 서비스업…메모리 성공공식과 달라"
매모리 성공 경험은 더 큰 비메모리(전 세계 반도체 시장의 70%) 시장에서도 제2의 신화를 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줬다.
삼성은 먼저 1998년 비메모리 사업을 독립 시켜 시스템LSI 사업부를 만들었다. 2012년엔 메모리 생산기지였던 미국 오스틴 사업장을 파운드리로 바꾸는 대대적인 투자를 단행한다. 2017년에는 시스템LSI 사업부를 팹리스와 파운드리로 분리했다. 미국 텍사스 파운드리 2공장 건립도 작년에 확정했다.
하지만 비메모리와 메모리 산업은 특성이 완전히 달랐다. 메모리는 정보를 더 빨리, 더 많이 저장하는 핵심 기능을 충족하면 됐지만, 시스템 반도체는 여러 가지 정보 처리 능력을 갖춰야 해 고도의 정밀 설계 기술이 필요했다. 또 다른 팹리스에서 설계도를 받아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칩을 만들어주는 일(파운드리)은 막대한 돈을 쏟아붓고 가격을 낮춘다고 해서 뚫을 수 있는 시장이 아니었다.
파운드리 부문에선 2위(약 17%)까지 올라서긴 했으나 대만 TSMC(53%)와의 격차가 상당하다. 이 와중에 최근 불거진 '갤럭시S22' 사태는 시스템LSI 사업부의 설계능력, 파운드리의 공정역량 둘 다에 대한 시장의 불신을 키웠다.
무엇이 패착이었을까. 업계 일각에선 삼성이 '파운드리 체질'을 갖추지 못하고 메모리 시장 접근 방식으로 사업을 해온 탓이라고 지적한다. 파운드리는 일반적인 제조업이 아닌 서비스 산업에 가깝다. 기술력은 기본, '파트너십'이 중요하다.
파운드리 업계 한 관계자는 "메모리 시장은 먼저 막대한 투자를 통해 확보한 가격우위를 내세워 장악할 수 있다면, 파운드리는 고객과의 관계가 먼저고 그다음이 투자"라며 "고객 하나를 잡는데 수년, 수십 년 공을 들여야 하는데, 삼성이 방향을 잘 못 잡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대규모 투자에 집착할 게 아니라 과거 TSMC가 해왔던 것처럼 작은 고객부터 정말 성심성의껏, 하나하나 맞춰주면서 업계 신뢰를 확보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팹리스 역량을 키우는 건 별개의 문제지만 파운드리 사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최신 엑시노스 2200이 갤럭시S22에 거의 탑재되지 못했는데 이는 자체 설계한 AP를 자신들의 첨당공정에서조차 제대로 만들지 못했다는 걸 의미한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고객사가 삼성 파운드리를 믿고 거래관계를 시작하기 더 어려울 수 있다.
◇"기술 초격차가 비장의 무기" vs "'IP와 고객기반'"
삼성의 파운드리 전략은 초격차 기술로 게임체인저가 되겠단 것이다. 올 상반기 획기적으로 반도체 성능을 끌어 올릴 수 있는 신기술(GAA, 게이트올어라운드)을 적용한 3나노 공정을 도입해 TSMC의 아성을 무너뜨리겠단 그림이다.
반면 공정기술력만으로는 수많은 고객사와 깊고 오래된 거래관계를 가진 데다 제조 경험과 규모에서도 삼성을 압도하는 TSMC를 뛰어넘긴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삼성 전 반도체 고위임원은 "지금처럼 이렇게 가면 1등은커녕 점점 TSMC보다 더 떨어지게 돼 있다"며 "대형고객사가 삼성에 조금씩은 물량을 주긴 하나 잘 찾지 않는다"고 말했다.
파운드리 핵심은 설계 자산(IP)과 고객 기반인데, 삼성은 IP가 충분하지 못해 다양한 설계도를 고객사에 제시하지 못한다. 이러면 TSMC로부터 최첨단 공정을 써줄 고객사(퀄컴과 애플, 엔비디아 등)를 뺏어오기가 어렵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메모리 시장은 진화한 공정기술로 싸게 만들어 팔면 승자독식이 가능했고 삼성은 그렇게 성공했다"며 "그러나 파운드리는 그것만으론 안 되는데 너무 기술 부문에만 집중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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