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반도체 정책 대담]"미·중과 경쟁하는 메모리, 1등 위태롭다…지원 절실"③반도체특위 위원장 양향자 의원, 김용석 성균관대 교수, 안기현 반도체협회 전무
김혜란 기자공개 2022-12-16 12:12:52
[편집자주]
반도체를 사이에 두고 국가 대 국가의 총성 없는 전쟁이 펼쳐지고 있다. 반도체가 한 국가의 안보자산으로 관리되면서 미국과 중국, 유럽 등 주요국 정부들은 자국 반도체 산업에 엄청난 지원을 쏟고 있다. 한국도 '반도체 초강국 건설'을 목표로 정부와 국회, 산업계, 학계 할 것 없이 힘을 합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국회와 정부, 산학연을 대표할 인사들을 만나 지금 필요한 'K-반도체' 정책과 지원책을 살펴 본다.
이 기사는 2022년 12월 14일 10:0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반도체 산업 육성'은 올 한 해 내내 뜨거운 국가적 화두였다. 미국과 중국 간 패권 다툼이 격화되고 주요국 정부의 자국 반도체 산업 보호주의 기조가 강해지면서 반도체는 더 이상 기업이 혼자 고군분투해서는 경쟁력을 지킬 수 없는 영역이 됐다.지난 6월 여당 반도체산업경쟁력강화특별위원회가 출범한 것도 이런 문제의식에서다. 삼성전자 엔지니어 출신의 국회 유일 반도체 전문가 양향자 무소속 의원이 위원장을 맡고 김용석 성균관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와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안기현 전무 등이 특위위원으로 활약했다.
반도체특위 '시즌1' 활동을 마무리한 지난 7일 세 사람이 한자리에 모였다. 양 의원과 김 교수, 안 전무는 반도체특위에서 각각 정치권과 학계, 산업계를 대표한 인물들이다. 반도체특위는 한국 반도체 산업의 미래를 고민해 입법과 정책 대안을 제시하고 입법부와 산업계, 행정부를 잇는 소통 창구 역할을 톡톡히 했다.
세 사람은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만나 더벨과 대담을 진행하며 지난 특위 활동의 성과를 정리하고 국내 반도체 산업의 현주소와 앞으로 과제를 진단했다. 양 의원은 "글로벌 반도체 산업 주도권을 뺏기면 속국이 될 수밖에 없다"며 세액공제율 확대와 수도권 대학 반도체학과 증원 등 정부·국회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K칩스법' 등 특위 성과 돌아보니
반도체특위의 성과 중 하나는 이른바 'K칩스법'인 '국가첨단전략산업 경쟁력 강화 및 보호에 관한 특별조치법(첨단산업특별법)'과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만든 것이다.
첨단산업특별법은 중앙정부가 반도체 산단에 들어가는 전력과 용수 등 각종 인프라 구축 관련 인·허가 협의권을 가지도록 법적 근거를 담고 있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등이 국내에서 반도체 공장을 지을 때 민원 문제로 과도하게 착공이 지연되는 사례를 막자는 취지다.
안 전무는 "지금은 주민들이 민원을 기업 상대로 내고 기업이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며 "('K칩스법'이 통과하면) 물과 전기를 끌어오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민원을 중앙정부가 컨트롤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법이 통과되면 지금처럼 기업이 민원을 일일이 해결하느라 지체됐던 시간이 확 단축될 수 있을 것으로 특위는 보고 있다.
SK하이닉스가 짓고 있는 메모리반도체 생산단지 용인클러스터는 2019년부터 추진했으나 토지보상과 전력·용수 인·허가가 지연되면서 2026년에서야 완공 가능할 것으로 점쳐진다. 반면 삼성전자가 미국 텍사스에 짓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는 지난달 첫 삽을 떴는데 2년 뒤인 2024년 11월에는 완공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대해선 야당도 동의하고 있어 이번 회기 내 통과 가능성이 높다. 다만 정부와 여, 야의 의견 대립이 첨예한 지점은 시설투자 세액공제율이다. 특위가 발의한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에는 설비 투자 대기업에 제공하는 세액공제율을 현행 6%에서 20%로 높이는 내용이 담겼다. 중견기업은 25%, 중소기업에는 30% 세액공제 혜택을 준다.
하지만 대기업 특혜라는 지적, 세수가 너무 줄어든다는 기획재정부의 우려를 넘지 못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대기업 세액공제율을 10%까지만 높이자는 대안을 제시했다.
양 의원은 "중소기업에서 오히려 'K칩스법'을 빨리 통과시켜달라, 그게 생태계를 살리는 일'이라고 많이 요청한다"고 말했다. 한국 반도체 산업의 두 축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메모리든, 시스템반도체든 투자를 많이 해야 소재·부품·장비(소부장)를 비롯한 반도체 밸류체인 생태계 전체에 활기가 돌 수 있다는 것이다.
안 전무는 "우리는 선발국(미국)과 싸우고 있다"며 "(반도체 산업은) 정부가 지원해주는 만큼 기업의 경쟁력이 달라진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미국 정부는 마이크론(D램 시장점유율 3위)에 엄청난 지원을 하는데 SK하이닉스(2위)에 대한 한국 정부의 지원이 상대적으로 덜 하면 한국 기업의 경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미국 정부가 지난 8월 공포한 '반도체 칩과 과학법'에 따르면 반도체 투자액에 25%의 세액공제를 적용한다. 미국 내 반도체 시설을 지으면 390억달러를 재정으로 지원해주기도 한다.
김 교수는 "(삼성전자가) 사내유보금이 많아도 기업이 시설 투자에 그 돈을 다 쓸 수는 없고 어느 정도는 사업자금으로 갖고 있어야 한다"며 "기업은 세액공제를 해줄수록 투자 여력이 더 생긴다"고 말했다.
이어 "예를 들어 삼성전자가 (대만 파운드리 TSMC와 경쟁하기 위해) 최우선으로 급한 3나노미터(nm, 10억분의 1m) 등 초미세공정에 투자금을 쏟아붓고 있는데, 파운드리 사업을 키우기 위해 지금 필요한 건 레거시(구형) 라인에 대한 투자"라며 "세액공제로 생긴 잉여자금으로 당장 급한 투자뿐 아니라 미래를 위한 투자를 할 수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과 중국의 추격…메모리·파운드리 선두권 장담할 수 없다
미국과 중국 등 주요국 모두 반도체 기술 패권에 사활을 걸고 있다. 특히 마이크론이 메모리 반도체 기술 개발에 사활을 거는 데다 정부의 든든한 지원에 힘입어 생산능력을 확대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2,3등으로 밀려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양 의원은 "'치킨게임(출혈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결국 규모로 시장을 장악하고 있어야 하는데 마이크론은 (정부지원금을 받아) 뉴욕에 142조원을 투자해 대규모 반도체 공장을 짓는다"며 "우리도 투자 세액공제를 늘리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교수는 파운드리 부문에서도 삼성전자가 중국 SMIC의 추격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SMIC가 지금은 시장점유율 5위지만 매년 성장하고 있어 언젠가는 삼성 파운드리도 추월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세 사람은 메모리와 파운드리 산업 모두 위기에 직면했다는 진단을 내놨다. 후발주자인 중국의 추격을 따돌리고 앞서나가는 것만 아니라 '반도체 선발국'인 미국과 유럽, 일본과도 경쟁 강도가 점점 더 치열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안 전무는 "한국은 반도체 원천기술도, 사람도, 정부 지원도 부족한데 규제는 많아 (미국과 중국, 유럽, 일본 등과 비교해) 조건이 가장 열악하다"며 "이런 상황에서 계속 싸우다 보면 산업은 위축되고 경쟁에서 밀려나 결국 외교까지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 세액공제를 많이 줘서 세수가 줄어드는 것을 걱정할 때가 아니다"라며 "이래로가면 나중엔 아예 세금을 낼 기업이 없어질 수가 있다"고 우려했다. 한국 반도체 기업들은 경쟁국 기업에 비해 큰 세 부담을 지고 있는데 이 효과가 누적되면 뒤처질 수밖에 없다는 진단이다.
◇'첨단전략산업특위'의 출범, 남은 과제는
양 의원이 국민의힘 반도체특위위원장을 처음 맡을 때부터 일관되게 주장했던 건 여야가 모두 모인 국회 차원의 기구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반도체 산업 지원 문제가 정쟁 대상이 되지 않도록 하자는 호소였다. 최근 여야는 국회 첨단전략산업특별위원회 구성에 합의했다.
세 사람은 새 특위에서 앞으로 논의해야 할 과제로 '인재 양성 대책'을 꼽았다. K칩스법에는 '수도권 대학 반도체 학과 정원 확대' 조항이 포함됐었으나 야당안과의 병합심사 과정에서 빠졌다. 김 교수는 "(반도체를 가르칠) 교원확보 문제도 시급하다"며 이 부분에 대한 국가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세 사람은 또 국회 내 반도체특위가 산업계와 입법·행정부를 잇는 소통 창구로서 큰 의미가 있단 점에 공감했다. 첨단산업특위든, 이런 형태의 기구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양 의원은 "(특위가 없으면) 산업계가 여, 야, 정부 각각 다녀야 하고 논의에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며 "특위에는 반도체 산업을 잘 아는 산학연(산업계와 학계와 연구 분야) 대표자가 모인다. 특위 안에서 이슈화된 문제는 입법화하고 규제 완화가 필요하면 행정부와 바로 소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다른 산업 분야는 의원 개개인이 (입법을) 해도 되는데 반도체는 종류가 엄청나게 많고 제가 아는 것도 극히 일부"라며 "각계 전문가가 모이는 특위가 국회에 꼭 필요한 이유"라고 강조했다. 양 의원은 삼성전자 메모리 분야에서 30년간 일한 전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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