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3년 05월 31일 15:49 THE CFO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오 캡틴, 마이 캡틴, 제임스(O Captain, My Captain, James).'

SK텔레콤 사장실에는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온 명대사를 인용한 트로피가 있다. 유영상 대표이사(사진)가 과거 최고재무책임자(CFO) 임기를 마쳤을 때 구성원들이 선물한 것이다. '전략통'으로서 굵직한 딜을 이끌며 능력을 입증한 그가 후배들에게 인간적으로도 깊은 신임을 받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유 대표에게 또 다른 타이틀을 붙이자면 AI 시대 선구자 내지는 개척자가 어울릴 것으로 보인다. 그는 앞서 2021년 SK텔레콤을 AI 컴퍼니로 만들겠다는 'SKT 2.0' 비전 청사진을 제시했다. 챗GPT 등장 이후 AI 중심으로 모든 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현 상황을 고려하면 통찰력이 돋보인다는 평가다.

◇유영상 대표, 하이닉스·ADT캡스 등 딜 주도한 투자 전문가

유영상 SK텔레콤 대표는 1970년생으로 서울대 산업공학과 학사·석사를 지내고 미국 워싱턴대 MBA 과정까지 마친 인물이다. SK텔레콤에 입사한 건 2000년 들어서다.

이맘때 SK텔레콤은 세계 최초로 코드분할다중접속방식(CDMA)의 이동전화 서비스를 선보여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패러다임을 전환해 독보적인 경쟁력을 쌓고 있었다. 이동통신 업계 1위의 초석을 다지는 시기였던 셈이다.

그는 SK텔레콤에서 인수·합병(M&A) 전문가로 성장했다. 2009년 사업개발팀장에 이어 2014년에는 사업개발본부장으로 승진해 조직을 이끌었다.

특히 사업개발팀장을 맡던 2012년에는 박정호 당시 부사장(현 SK스퀘어 부회장)이 주도하는 하이닉스 인수팀의 실무 책임자였다. 하이닉스는 2001년부터 법정관리를 받고 있었고 2008년 매각을 선언했지만 3년간 새 주인을 찾지 못해 곤혹스러운 상황이었다. 반도체 업황 자체가 부침이 심한 데다 매년 조 단위 투자를 이어가야 하는 부담도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SK텔레콤은 수년간 반도체 사업을 분석한 끝에 하이닉스 지분 20.1%를 약 3조4000억원에 인수했다. 현재 반도체는 바이오, 배터리 등과 함께 그룹의 대표적인 차세대 성장 사업으로 자리매김하고 SK그룹을 재계 2위로 끌어올린 원동력이 됐다. 유 대표는 하이닉스 딜을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M&A 역량을 입증했다.

2015년에는 SK C&C 사업개발부문장으로 발령받았다. 당시 SK C&C 대표로 부임한 박정호 사장의 부름을 받아 다시금 합을 맞춘 것이다. 이후 SK주식회사와 SK C&C 합병, 홍하이그룹과 세운 합작법인(JV) FSK L&S를 설립하는 등 굵직한 딜을 도맡았다.

2016년 말에는 박 사장을 따라 다시 SK텔레콤으로 돌아와 전략기획부문장을 맡았다. 2018년 SK텔레콤 코퍼레이트센터장 겸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역임했다. 이때 ADT캡스(현 SK쉴더스), 도시바메모리(현 키옥시아) 인수 등 미션을 수행했다. 지상파 3사와 합작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웨이브(wavve)' 출범 역시 그가 주도했다.

2019년에는 이동통신(MNO)사업 대표를 맡았다. 세계 최초 5G 상용화 미션을 이룬 원년인 2019년 SK텔레콤의 MNO 매출은 11조4213억원을 기록했다. 이듬해에는 MNO 매출이 2.8% 늘어 11조7466억원에 달했다. 5G 가입자 수는 2020년 548만명을 확보하며 MNO 리더십을 유지했다.

MNO사업 대표이기는 하지만 2019~2020년에 걸쳐 이뤄진 SK브로드밴드와 티브로드 합병 과정에서도 윤풍영 당시 SK텔레콤 코퍼레이트1센터장(현 SK㈜ C&C 대표이사 사장)과 함께 태스크포스(TF)를 이끌었다.

◇홀로서기 나선 SK텔레콤, 'AI 컴퍼니' 진화 비전 제시…'T-B' 시너지 제고

그는 2021년 들어 더욱 막중한 임무를 안게 됐다. SK스퀘어와 인적분할한 이후 SK텔레콤의 CEO를 맡았다.

신설회사 SK스퀘어는 반도체와 ICT 투자전문회사로 탄생하며 SK하이닉스, 11번가, 콘텐츠웨이브, 티맵모빌리티, SK쉴더스 등을 산하에 편입했다. 존속회사 SK텔레콤은 주요 계열사를 떼주고 홀로서기에 나서게 됐다. 이에 유무선 통신 인프라를 기반으로 하는 초연결 기술에 AI를 더해 고객을 이롭게 하는 'AI 컴퍼니'로 거듭나기로 했다.

유 대표는 2021년 11월 취임 이후 타운홀 미팅을 통해 'SKT 2.0' 시대 청사진을 공개했다. 고객·기술·서비스 중심의 'AI&디지털 인프라(Digital Infra) 서비스 컴퍼니' 비전과 함께 ICT 기술과 서비스를 통해 새로운 고객 가치를 창출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게 골자였다.

이듬해에는 이를 더욱 정교하게 가다듬었다. △유무선통신 △미디어 △엔터프라이즈(Enterprise) △아이버스(AIVERSE) △커넥티드 인텔리전스(Connected Intelligence) 등 5대 사업군을 중심으로 업을 재정의했다. 사업군별 성장과 AI 전환을 통해 2026년 기업가치를 40조원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게 목표다.


여기 힘을 더하기 위해 그는 작년 말부터 SK브로드밴드 대표도 함께 맡아 리더십을 일원화했다. △유선통신 △미디어 △엔터프라이즈(Enterprise) 등 사업은 SK브로드밴드가 영위하는 사업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AI 컴퍼니로 도약을 상징하는 차원에서 T(SKT)와 B(SKB)의 리뉴얼 브랜드를 공개하면서 양사 시너지를 강화하고 있다.

올 들어서는 챗GPT가 촉발한 AI 패러다임 전환을 놓고 유 대표의 선구안이 돋보인다는 평가가 나온다. SK텔레콤은 이미 작년 5월 세계 최초 한국어 GPT-3 상용화 서비스 '에이닷(A.)'을 선보여 100만명 이상 가입자를 확보했다. AI 음성인식 디바이스 '누구(NUGU)'를 시작으로 꾸준히 쌓아온 AI 역량은 유 대표 체제 들어 빛을 발하고 있다.

그는 업무 역량뿐 아니라 동료와 후배들에게도 신임이 두텁다는 후문이다. 유 대표는 지난해 SK텔레콤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후배들에게 좋은 회사를 물려주고 싶다는 개인적인 목표가 있다"며 "고객으로부터 사랑받고 세상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을 하며 구성원들 간에는 말랑말랑한 소통이 흐르는 회사를 만든 유능하고 유쾌한 선배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