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d & Blue]㈜두산의 숨은 밸류, 두산로보틱스 IPO가 끄집어내다피어그룹 정체 속 훌쩍 뛴 밸류…캐시카우 회복에 비상장 계열 재평가
양정우 기자공개 2023-09-01 13:20:16
[편집자주]
"10월은 주식에 투자하기 유난히 위험한 달이죠. 그밖에도 7월, 1월, 9월, 4월, 11월, 5월, 3월, 6월, 12월, 8월, 그리고 2월이 있겠군요." 마크 트웨인의 저서 '푸든헤드 윌슨(Puddnhead Wilson)'에 이런 농담이 나온다. 여기에는 예측하기 어렵고 변덕스러우며 때론 의심쩍은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주가의 특성이 그대로 담겨있다. 상승 또는 하락. 단편적으로만 바라보면 주식시장은 50%의 비교적 단순한 확률게임이다. 하지만 주가는 기업의 호재와 악재, 재무적 사정, 지배구조, 거시경제, 시장의 수급이 모두 반영된 데이터의 총합체다. 주식의 흐름에 담긴 배경, 그 암호를 더벨이 풀어본다.
이 기사는 2023년 08월 30일 15:2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How It Is Now국내 주식시장에서 지주사는 비인기 종목입니다. 글로벌 시장의 사이클에 따라 특정 시기 배당주로서 수요가 생길 뿐입니다. 하지만 최근 유독 투자자의 이목을 사로잡는 지주사가 있습니다. 바로 ㈜두산인데요. 1년 새 주가가 2배 가까이 치솟으면서 기존 지주사 그룹과 디커플링(탈동조화) 경향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지주사 밸류에이션에서 주로 활용되는 순자산비율(PBR)만 따져봐도 주가 상승세가 돋보입니다. 현재 ㈜두산의 PBR은 1.2배 수준이지요. 반면 삼성물산은 0.55배, ㈜SK는 0.37배에 불과합니다. ㈜LG와 ㈜CJ도 각각 0.5배, 0.44배이고요. 시련이 거듭되고 있는 롯데지주의 경우 0.25배에 불과하네요. 이들 비교기업보다 2~3배의 가치를 부여받고 있는 게 수년 전까지 부진의 골이 깊었던 두산그룹의 지주사인 셈입니다.
이런 두드러진 고공행진의 트리거는 두산로보틱스의 기업공개(IPO)라는 게 증권업계의 중론입니다. 주가의 상승세가 다소 꺾이려는 시점에 한국거래소에서 상장 예비심사를 승인(8월 17일)하자 다시 견조한 상승 흐름으로 추세가 뒤바뀌었습니다. 알짜 계열사의 IPO가 ㈜두산의 내재가치를 둘러싼 베일을 벗겨내고 있는 것일까요.
◇Industry & Event
㈜두산은 두산그룹의 지주사로서 두산에너빌리티, 두산퓨얼셀, 두산밥캣, 두산테스나 등 상장사를 핵심 계열로 보유하고 있습니다. 신재생에너지, 기계, 반도체 등을 그룹 내 비즈니스의 주축으로 분류할 수 있네요.
그룹 계열사에서 얻는 배당수익과 브랜드사용료가 국내 지주사의 현금흐름 원천입니다. ㈜두산 역시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밥캣 등 캐시카우의 펀더멘털이 현금 창출력의 기반이지요. 물론 크레딧(부채상환능력)과 달리 주가에서는 캐시플로우뿐 아니라 성장 잠재력과 상승 모멘텀도 중요합니다. 보수적 가치평가에서 밸류 산정의 근거는 단연 현금이고요.
두산그룹의 주축 계열은 대부분 사업과 실적이 호조세를 이어가고 있네요. 두산에너빌리티는 대형 원자력발전소의 사업 재개 기대감이 고조된 와중에 글로벌 시장의 '핫' 키워드인 소형모듈원전(SMR)의 수주가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두산밥캣도 북미 시장의 제조업 회복 흐름에서 큰 수혜를 입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지요. 지난 2분기 연결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4조9700억원, 5120억원 수준으로 증권사 컨센서스를 크게 웃돌았습니다.
여기에 ㈜두산은 자체 비즈니스(전자 BG)도 영위하고 있습니다. 전자 BG도 2분기 큰 폭의 실적 회복을 보였고요. 반도체 업황의 반등 지연되는 와중에도 삼성전자의 폴더블폰 소재 양산과 인공지능(AI) 가속기향 수요 증가로 매출 규모(2103억원)가 전분기보다 24% 가량 커졌습니다. 영업 마진율 역시 과거 정상치의 80% 수준을 회복했다는 평가가 나오네요.
이렇게 펀더멘털이 견고해진 여건에서 상승 랠리를 강하게 지지하고 있는 게 바로 두산로보틱스의 IPO 이벤트입니다. 올해 손꼽히는 조 단위 딜이지요. 국내 로봇 섹터는 글로벌 증시와 다르게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삼성전자가 레인보우로보틱스의 지분 인수를 발표하면서 드라마틱하게 상승하기 시작했습니다.
불과 1년여 전 주당 3만원 안팎이던 레인보우로보틱스의 주가는 한때 15만원 대를 돌파하기도 했습니다. 이달 들어 12만원 수준을 오르내리면서 껑충 뛴 몸값을 유지하고 있지요. 두산로보틱스가 IPO 밸류에이션 과정에서 레인보우로보틱스를 제외하는 결정을 내렸으나 이미 섹터 전반의 주가가 올라간 상황입니다. 최적기에 상장에 나서는 만큼 제값을 받는 건 물론 공모 흥행에 대한 기대감도 높습니다.
두산로보틱스 IPO의 열기가 감지되자 투자자의 눈길은 이미 상장돼있는 모회사 ㈜두산으로 쏠리기 시작했습니다. 상장 밸류로 1조5000억원 정도가 거론되고 있는 데 기대 이상의 잭팟이 터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희망 공모가 밴드의 상단으로 가격이 확정된다면 기업가치는 약 1조7000억원입니다. 현재 지분율(91%)로 어림잡은 지분가치만 1조원 대에 달하는 셈입니다.
㈜두산의 현재 시가총액은 1조9000억원 수준입니다. 두산로보틱스 지분 가격에 자체 사업의 미래 현금흐름에 따른 순자산가치(NAV)만 따져봐도 지금 시총 규모에 근접합니다. 여기에 두산에너빌리티의 지분 가치와 또 다른 비상장 계열인 두산로지스틱스솔루션(DLS), 두산모빌리티이노베이션(연료전지드론, 파워팩) 등의 몸값까지 감안해야 하지요. 기관 투자자를 중심으로 빠른 속도로 재평가에 나서고 있는 배경입니다.
◇Market View
증권가에서도 ㈜두산의 추가적 상승 여력에 무게를 싣고 있습니다. 이미 크게 올랐지만 더 오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죠. 가장 최근 리포트를 작성한 DS투자증권에서는 투자의견을 '매수'로 제시하면서 목표가로 15만원을 책정했습니다. 현재 주가보다 무려 40% 가까이 높은 수치입니다.
DS증권만의 이례적 호평은 아닙니다. NH투자증권과 교보증권도 나란히 매수 의견을 냈고 목표 주가도 동일하게 13만7000원을 제시했네요. 15만원보다는 낮은 금액이지만 역시 현재 주가보다 높은 수치입니다. 유안타증권의 경우 업계 최고치인 16만원을 목표가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두산에 대한 리포트를 작성하는 증권사 가운데 목표가를 가장 낮게 책정한 건 하이투자증권으로 나타났습니다. 두산로보틱스의 협동 로봇 비즈니스에 후한 평가를 내리면서도 목표 금액은 12만원으로 책정했습니다. 증권사마다 목표가의 온도차는 있었으나 모두 지주사로서 보유한 계열의 지분 가치(NAV)를 토대로 주가보다 밸류를 높게 산정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DS증권 리포트에서는 "미국 금리 인상 여파와 유럽 전쟁 영향이 지속되면서 글로벌 1위 업체인 유니버셜 로봇(Universal Robots)이 올해 1~2분기 역성장을 보였다"며 "하지만 두산로보틱스는 경쟁 업체가 고전을 면치 못하는 가운데 매분기 두자릿수 성장을 거둔 것으로 추정된다"고 분석했습니다. 이어 "글로벌 협동 로봇 내 시장 점유율을 기존 5위에서 꾸준히 상승시키고 있다"고 강조했고요.
◇Keyman & Comments
두산그룹이 험난했던 고비를 넘어 다시 성장 궤도에 안착한 건 분명합니다. 이런 내실을 다진 데 한몫을 한 인사로 최고재무책임자(CFO)인 김민철 사장을 꼽을 수 있고요. 무엇보다 팔 것과 팔면 안되는 것을 명확하게 분별해 재무 안정성을 확보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이 제대로 가동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역할이 중요했지요.
김 사장은 ㈜두산의 CFO 겸 대표이사입니다. 1964년생으로 서강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고요. 두산그룹에 입사한 뒤 주로 재무 파트에서 근무했습니다. 그는 1989년 ㈜두산에 입사한 뒤로 줄곧 두산그룹에 몸 담았네요. 오랜 기간 재무 파트의 업무만 전담하면서 CFO로서 초석을 다졌습니다. 2018년부터 CFO이자 대표이사로서 이사회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CFO인 김 사장이 ㈜두산 대표이사로 선임된 이유는 두산그룹이 CEO·CFO 공동 대표이사 체제를 도입했기 때문입니다. 2018년 재무 건전성을 강화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었고요. 당시 구조조정을 마친 두산그룹의 재무 건전성은 눈에 띄게 달라졌습니다. 2019년 327.74%까지 치솟았던 부채비율은 2021년 말 206.10%까지 낮아졌지요.
향후 나머지 비상장 계열의 IPO에서도 김 사장이 가진 시각이 영향을 줄 것으로 관측됩니다. 통상적으로 회사채 등 부채자본시장(DCM) 조달은 재무 라인, IPO 등 주식자본시장(ECM) 액션은 전략 기획 파트에서 담당합니다. 하지만 그는 이사회 일원이자 자금 수지 전반의 큰 그림을 그리는 입장에서 목소리를 낼 것으로 보입니다.
더벨은 ㈜두산의 중장기 성장 플랜과 구체적 주가 부양 전략 등을 듣고자 김 사장에게 직접 연락을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현재 해외 방문 일정을 소화하고 있어 통화가 쉽지 않았습니다. 다만 업계 관계자는 "㈜두산 경영진은 기존 비즈니스의 안정적 성장세와 로봇 등 신규 사업의 가시적 성과로 주가의 우향상 곡선을 유지하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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