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입는 SK지오센트릭, 석유화학 중심 사업 구조 탈피한다 울산 ARC 열분해·고순도 PP 추출·해중합 한 곳에…JV로 투자부담 완화
울산=김위수 기자공개 2023-09-18 14:09:52
이 기사는 2023년 09월 17일 14:0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공장설비와 파이프가 빽빽하게 들어찬 SK이노베이션의 세계 최대 정유·화학 단지 울산컴플렉스(울산CLX). 정문에서 7분여간 버스를 타고 들어가자 레미콘과 포크레인 여러 대가 바쁘게 움직이는 흙으로 된 부지가 나타났다. 원래 산이었던 부지를 공장 설립이 가능하도록 평탄하게 만들기 위한 작업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이다.국제규격 축구장 22개 넓이에 해당하는 21만5000㎡ 규모의 이 부지는 SK이노베이션의 석유화학 자회사 SK지오센트릭의 폐플라스틱 재활용 복합단지 울산ARC(Advanced Recycling Cluster)가 들어설 예정이다. 오는 10월 착공할 울산ARC는 석유화학 사업을 기반으로 하는 SK지오센트릭이 친환경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는 첫 발자국이 될 전망이다.
특히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울산 그린 사업에 8조원을 투자할 예정이라는 계획을 최근 밝혔다. 울산에서 다양한 투자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SK지오센트릭이 첫 결과물을 선보이게 된 상황이어서 주목된다.
◇1.8조원 투자, 폐플라스틱 연간 32만톤 재활용
지난 13일 방문한 SK지오센트릭의 울산ARC 부지는 현재 정지 작업을 진행 중이다. 오는 10월 착공할 예정으로 연말 본격적으로 공사에 착수한다는 계획이다. 총 투자금은 1조8000억원으로 2025년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화학적 플라스틱 재활용은 폐플라스틱을 화학적으로 분해해 열분해유나 다른 원료로 되돌리는 기술이다. 기술적 장벽이 있기는 하나 물리적 재활용의 단점을 극복한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폐플라스틱을 파쇄·압축해 재활용하는 물리적 재활용은 투명 페트(PET)병 등 제한된 쓰레기만 잘게 쪼개는 방법으로만 재활용할 수 있고 재활용 가능한 횟수도 1~2회로 제한돼 있다. 하지만 화학적 재활용은 플라스틱의 오염도·성상·색상과 상관없이 폐플라스틱 대부분을 재활용할 수 있으며 반복적인 재활용에도 플라스틱의 물성이 그대로 유지된다.
SK지오센트릭은 울산ARC를 통해 열분해, 고순도 폴리프로필렌(PP) 추출, 해중합을 한 곳에서 구현한다. 각각의 기술을 구현하기 위해 SK지오센트릭은 해외 기업들과 협력해 기술을 확보했다.
열분해 공정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영국 플라스틱 열분해 전문 기업 플라스틱에너지와 협력한다. 열분해 기술은 폐비닐 등을 300도 이상의 고온으로 분해해 재활용 원유인 열분해유를 제조하는 기술이다. 울산ARC에 확보한 공정을 통해서는 연산 6만6000톤의 폐플라스틱을 처리할 수 있다.
PET의 분자를 해중합 후 재중합해 순도높은 재활용 PET 제품을 생산하는 해중합 기술이 적용된 공장은 캐나다 루프인더스트리와 함께 설립한다. 연간 9만8000톤의 유색 PET병과 폴리에스터 섬유를 재활용할 수 있다. 고순도 PP 추출은 말 그대로 플라스틱을 용매에 녹여 순수한 폴리프로필렌(PP)을 추출하는 기술이다. 미국 퓨어사이크테크놀로지와의 협력을 통해 확보한 이 기술을 적용하면 생활용품·차량 내/외장재·가전제품·포장재 등 오염된 PP 제품에서 고순도 PP를 확보할 수 있다. 연간 7만6000톤의 폐플라스틱 처리가 가능하다.
◇'순환자원' 완성할 후처리 기술 개발, 법적 근거는 아직 '미비'
SK지오센트릭은 열분해유 활용 확대를 위해 후처리 기술을 개발 중이다. 지금까지는 열분해유에 부산물이 많아 품질이 다소 낮은 경유나 보일러 연료로만 활용할 수 있었다. 열분해유를 석유화학 공정에 투입하기 위해서는 황화합물, 탄소 등의 부산물을 빼 순도를 높이는 후처리를 거쳐야 한다.
SK지오센트릭은 이를 위해 열분해유 후처리 기술을 독자 개발하고 대전 유성구 SK이노베이션 환경과학기술원에 실증설비(Scale-up pilot Plant)를 갖췄다. 선행연구를 거친 실증설비는 추후 울산ARC 열분해 공장과 함께 지어질 예정이다.
울산ARC에서는 이 열분해 후처리유 중 일부를 울산CLX 나프타분해설비에 투입할 계획이다. 쓰레기가 화학제품 원료로 쓰이는 '순환경제' 사이클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하지만 아직 열분해유 활용의 법적 근거가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다. 현행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에서는 폐플라스틱을 화학적으로 재활용해 만든 열분해유를 석유 정제 공정에 원료로 투입할 수 없게 돼있다. 석유대체연료에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한 열분해유는 포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를 해결하고자 2021년 SK지오센트릭의 열분해유 투입에 대한 규제샌드박스 실증특례를 승인하는 등 규제 정비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국회에서도 규제 개선을 위한 노력이 진행 중이다. 현재 석유사업법 개정안이 발의되어 상임위 심사를 앞두고 있다. '석유에서 유래한 것을 재활용'했다면 석유 이외의 원료로 인정하고, 석유정제업자가 이 원료를 투입해 제품을 생산하도록 허가하는 내용이 골자다.
◇SK지오센트릭 파이낸셜 스토리 실현 첨병
SK지오센트릭의 매출은 기초유화 사업 70%, 화학소재 사업 30% 수준으로 구성돼있다. 아직까지 전통적인 석유화학사의 형태를 따르고 있는 상황이다. 울산ARC 가동이 SK지오센트릭에 있어 터닝포인트가 될 것으로 관측된다. 원유에 의존해 왔던 SK지오센트릭의 사업구조를 친환경 중심으로 전환하는 시작점이 될 수 있다.
플라스틱 재활용 산업에 대한 성장 잠재력은 높다고 평가받는다. 유럽연합(EU)은 플라스틱 포장재에 재활용 소재를 30% 이상 반드시 쓰도록 법제화했고 미국에서는 캘리포니아 등 일부 주에서 재생 원료를 2030년까지 50% 이상 사용하도록 하는 규정을 도입하고 있다. 유엔환경계획(UNEP)에 따르면 2040년 세계적으로 발생하는 폐플라스틱 양은 약 1억톤에 이를 전망이다. 컨설팅 기업 맥킨지는 이를 처리하는 재활용 플라스틱 시장 규모가 2050년 600조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따라 관건은 투자를 무리 없이 마무리하는 일이 될 전망이다. 우선 SK지오센트릭은 합작법인(JV) 형태로 공장 설립에 나서며 투자 부담을 낮췄다. PET 해중합 공장과 고순도 PP 추출 공장 설립을 위해 각각 루프인더스트리, 퓨어사이크테크놀로지(PCT)와 합작할 예정이다.
2020년여부터 이어진 사업 부진으로 SK지오센트릭의 현금창출력은 크게 저하된 상태다. 2016~2017년 2년간 1조원을 넘겼던 SK지오센트릭의 상각전영업이익(EBITDA)는 지난해 3331억원으로 급격히 줄어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실탄을 마련하기 위해 SK지오센트릭은 2020년부터 SK이노베이션에 대한 배당을 집행하지 않았다.
레버리지 지표의 상승이 있기는 했으나 현재 지표를 살펴보면 투자금 마련이 어렵다고 볼 수준은 아니다. 올 상반기 기준 SK지오센트릭이 보유한 현금성자산은 8913억원으로 나타났다. 부채비율은 111.8%, 차입금의존도는 35.3%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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