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bell

전체기사

[김화진칼럼]지브롤터와 세우타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공개 2023-10-16 09:00:23

이 기사는 2023년 10월 16일 08:1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도로에 차단기가 내려지고 자동차들이 정지한다. 비행기가 지나가기 때문이다. 지브롤터에서 볼 수 있는 재미있는 광경이다. 나라가 너무 작아서 공항 활주로를 넉넉한 공간에 따로 둘 수 없어 그렇게 된 것이다. 지브롤터는 영국령이다. 스페인 영토 남서쪽 맨 끝단에 있다. 모로코와 함께 폭이 14.3km인 지중해의 출입구를 지킨다. 영국령이지만 자동차가 도로를 우측통행한다. 브렉시트 이후 1.2km 길이의 국경이 통제된다. 반환 내지 공동통치 요구를 해오던 스페인의 목소리도 높아졌다.

지브롤터는 원래는 스페인 영토였다. 스페인 왕위계승전쟁 때 영국-네덜란드연합에 뺏겼다. 1704년이다. 양국 연합의 함대는 목이 좋은 곳에 절묘하게 자리 잡은 지브롤터를 손쉽게 차지했고 스페인 군대는 되찾지 못했다. 그리고 1713년 유트레히트 조약에 따라 영국 에 영구 할양되었다. 후일 영국이 미국독립전쟁에 정신이 팔렸을 때 스페인은 다시 한번 수복을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지브롤터는 대영제국 시절 영국 해군에게는 금쪽같은 기지였다. 나폴레옹전쟁, 크림전쟁 모두에 지브롤터 해군기지의 역할이 지대했다. 수에즈운하가 건설되고 지브롤터해협이 바빠지자 그 가치는 더 높아졌다. 스페인 내전 때는 공군기지가 건설되었다. 1982년 포클랜드 전쟁 때 가장 먼저 현지로 달려간 함대도 여기서 출발했다. 영국의 위기도 있었다. 프랑코 총통은 2차 대전 발발 후 나치로부터 구축국에 합류하면 지브롤터를 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프랑코는 그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나치독일과 동맹이 되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라고 보아 거절했다.

스페인은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지브롤터를 되찾아오고 싶어 하지만 지금까지 1967년, 2002년 두 번의 주민투표에서 다 거부당했다. 첫번째 투표는 12,138 대 44였다. 두 번째는 공동통치 아이디어로 실시되었는데 역시 마찬가지로 주민의 99%가 영국을 선택했다. 브렉시트를 앞두고 주민의 96%가 EU 잔류를 선호한다는 것이 드러나자 스페인이 혹시하고 재차 주민들에게 호소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20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면서 주민들의 스페인 연고는 다 소멸되고 모두 영국인의 정체성을 가지게 되어서다. 한편, 지브롤 터는 영국의 시(市) 지위를 부여받기 위해 여러 번 정부에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그런데 연구자들이 조사해 보니 빅토리아 여왕이 1842년에 이미 그 지위를 부여했던 것이 드러났고 2022년 8월에 시로 승격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지브롤터가 지브롤터해협 건너 바로 마주 보고 있는 땅 세우타가 모로코 영토가 아닌 스페인 영토라는 사실이다. 지브롤터처럼 작은 지역이다. 1668년에 리스본조약에 따라 포르투갈이 스페인에 넘긴 땅이다. 1956년 모로코가 스페인에서 독립할 때 스페인 령으로 남겨졌다. 스페인 해안과 20km 거리다. 대서양 쪽에서 찍은 항공사진을 보면 지브롤터와 세우타는 거의 대칭형으로 생겼다. 높은 산봉우리가 있는 것도 같다.

스페인이 지브롤터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로 모로코는 스페인의 세우타 지배에 아직도 동의하지 않는다. 2007년에는 스페인 국왕이 스페인 통치자로서는 80년 만에 세우타를 방문해 스페인의 건재를 과시했고 모로코는 반발했다. 인구 약 85,000명의 세우 타는 스페인 하원에 한 명의 대표를 내보낸다. 물론 스페인군이 주둔 하고 6m 높이의 담장이 모로코와의 국경을 지킨다.

세우타와 모로코는 시설물을 통해 분리되어 있지만 해변은 사정이 좀 다르다. 모래사장이 끝나는 곳까지 쳐진 철책을 돌아 얕은 바다를 헤엄치거나 보트로 넘어오면 국경을 넘은 것이다. 모로코 사람들이 대거 난민으로 넘어온다. 어떤 날에는 아이들을 포함해 6,000명이 넘어왔다. 일단 넘어오면 EU에 들어온 것이 된다. 스페인과 불편한 사이인 모로코 측은 사태를 방관한다. 난민 대다수는 세우타 경제권에서 일하고 생계를 유지하다가 코로나로 국경이 봉쇄되어 2년간 곤란을 겪고 돌파구로 불법 이동을 택했다. 리오그란데를 건너 미국으로 들어오는 멕시코인들을 생각나게 한다.
< 저작권자 ⓒ 자본시장 미디어 'thebell',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의 다른 기사 보기

더벨 서비스 문의

02-724-4102

유료 서비스 안내
주)더벨 주소서울시 종로구 청계천로 41 영풍빌딩 5층, 6층대표/발행인성화용 편집인이진우 등록번호서울아00483
등록년월일2007.12.27 / 제호 : 더벨(thebell) 발행년월일2007.12.30청소년보호관리책임자김용관
문의TEL : 02-724-4100 / FAX : 02-724-4109서비스 문의 및 PC 초기화TEL : 02-724-4102기술 및 장애문의TEL : 02-724-4159

더벨의 모든 기사(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copyright ⓒ thebell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