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기업구조조정 점검]대우조선 딜은 무엇이 달랐나…강석훈 호의 고민②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유연성으로 신속 매각…항공·해운 딜은 난항 속 '강행' 고수
이재용 기자공개 2023-11-08 08:11:39
[편집자주]
KDB산업은행의 기업구조조정이 난항을 겪고 있다. 수년간 끌어온 굵직한 빅딜들이 실익 없이 공전하고 있다. 원매자와의 눈높이 차이, 시장의 상황 등 다양한 변수가 원인으로 언급된다. 근본적으론 산업의 구조조정 방식이 시대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더벨은 산은이 발간한 '기업구조조정 백서'를 토대로 난맥에 빠진 산은 구조조정의 원인을 점검하고 미래 발전 방향을 모색해 본다.
이 기사는 2023년 11월 06일 07:2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강석훈 KDB산업은행 회장(사진)은 취임 때부터 구조조정 기업에 대한 '신속 매각'을 강조해 왔다. 단순히 엑시트를 위한 빠른 처리가 아닌, 방식과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유연성이 가미된 거래가 강석훈식 신속 매각의 핵심이었다.강 회장은 취임 후 4개월 만에 한화그룹과의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매각 계획을 발표하면서 신속 매각의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아시아나항공, HMM 등 항공 해운 빅딜은 지지부진한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강석훈 회장 취임 이전부터 진행된 딜은 엑시트에 초점을 두고 강행이 이뤄지고 있다.
산업은행은 아시아나항공 매각의 경우 경쟁당국의 인허가를 기다린다는 원론적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경쟁당국의 요구에 항공산업의 경쟁력까지 훼손하는 결정도 이어가고 있다. HMM의 경우 원매자들의 자금 조달 능력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되지만 매각 강행을 강조하는 상황이다.
일각에선 매각만 강행하는 과거의 빅딜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원매자를 찾고 매각 무산 시 선택할 수 있는 플랜B도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낡은 시스템과 부산 이전 문제 맞물린 새 전략 부재
강 회장이 4개월 만에 해묵은 대우조선 매각을 성사할 때만 해도 아시아나항공, HMM M&A에 속도가 붙을 것이란 기대감이 있었다. 강 회장도 연내 결론을 목표로 두 계약의 빠른 성사를 밀어붙였다.
하지만 최근 해운·항공 빅딜은 9부 능선을 넘지 못하고 있다. 강 회장도 뾰족한 출구전략 없이 강행 입장만을 고수하고 있다. 공전하는 딜 앞에서 취임 초기에 보여준 유연성과 속도감은 찾아볼 수 없다.
공식적으로는 어떤 플랜B도 없다는 현재 산은의 모습은 대우조선 계약이 무산되기까지 플랜B가 없다고 말한 전임 회장 때의 모습과 유사하다. 특히 아시아나항공 딜 전략은 이 전 회장 때인 2020년부터 이어져 온 유산에 가깝다.
이 전 회장은 국민의 정부(1998~2003년) 시절부터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거치며 기업구조조정을 다뤄왔다. 국내 기업구조조정 1세대이자 대표적인 전문가다. 하지만 이 전 회장이 산은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산은의 구조조정 방식이 과거로 회귀했다는 평가가 따랐다.
20세기 말 산은의 9대 빅딜과 현재의 아시아나항공 빅딜 전략이 유사한 것도 이 때문이다. 올드 스타일의 구조조정 방식을 이 전 회장이 2020년에 착수한 항공 빅딜에도 적용했고, 현재 강 회장은 그 방식을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강 회장이 새 전략을 보여주지 못하고 과거 방식을 답습하는 이유는 뭘까. 우선 전임 회장의 딜 유산을 물려받는 것과 같이 기업 및 경제의 상황과 규모가 계산되지 않은 채 과거에 머물러 있는 산은 기업구조조정 시스템의 문제가 가장 크다. 실제로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에 만들어진 구조조정 방법론은 여전히 산은 내부에서 통용된다.
일각에선 산은 부산 이전 이슈에 매몰돼 핵심 업무인 기업구조조정 정책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노조가 기업금융 및 구조조정의 경쟁력 약화를 부산 이전 반대의 명분으로 삼고 있다 보니 강 회장이 구조조정 강화와 정책 변화를 주문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유연·신속했던 초기 대우조선해양 딜
강 회장은 취임 이후 기존 산은의 기업구조조정 3대 원칙(△대주주의 책임 있는 역할 △이해 관계자의 고통 분담 △지속 가능한 정상화 방안 마련)에 '빠른 매각'이라는 원칙을 추가했다.
강 회장은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도 "분할매각은 안 되고, 통매각은 된다는 식의 사전 조건을 다는 것이 바른 접근 방식은 아니다"라면서 "매각 가격을 더 받는 것보다 어떤 방식이든 빠른 매각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강 회장이 언급한 대로 빠른 매각이 가능해지려면 가격과 방식에 얽매여 있지 않아야 한다. 빠른 매각 핵심은 바로 계약 접근의 유연성에 있다. 대우조선 매각이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다.
대우조선은 20여 년 간 산은이 품어온 구조조정 기업이다. 2008년부터 2018년까지 10년간 4차례 매각 시도가 무산되고 2019년 5수 끝에 현대중공업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하면서 종지부를 찍는 듯했다.
하지만 현대중공업과의 M&A가 EU의 기업결합심사를 통과하지 못하면서 대우조선 매각은 원점으로 돌아왔다. 지지부진하던 대우조선 매각은 강 회장이 취임한 지 4개월 만에 해결됐다. 구조조정 딜에서 신속성을 강조한 강 회장이 국내 대기업집단과 물밑 접촉에 나서며 인수 의사를 타진한 것으로 전해진다.
산은은 결국 한화그룹에 대우조선을 넘기기로 하며 매각 작업을 마쳤는데, 의외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2008년부터 10년간 대우조선 인수보증금 반환 여부를 둘러싸고 긴 소송전을 벌인 악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우조선의 빠른 매각을 위해 악연이 있는 한화그룹과도 손을 잡는 유연성을 발휘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산은이 단지 엑시트가 쉬운 분리 매각이 아니라 통매각으로 사업 경쟁력을 유지하고 턴어라운드할 수 있는 구조조정을 했다는 성과도 거둘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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