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4년 04월 26일 15:23 THE CFO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부채만기 관리는 기업 최고재무책임자(CFO)의 기본적 책무 중 하나다. 차입금 만기가 특정시점에 몰리면 유동성 부담이 커지는 만큼 이를 장기화하고 만기를 다채롭게 하는 게 상식이다. 그래서 시장은 단기차입 비중이 큰 회사를 부정적으로 본다. 1년 내 갚아야 할 빚이 많으면 그만큼 상환부담도 크고 현금관리가 어려워진다.셀트리온은 그런 면에서 특이한 회사다. 셀트리온헬스케어와 합병 후 재무구조 변화를 살펴봤는데 단기차입금 비중이 유독 크다. 작년 말 총차입금 1조8904억원 가운데 85%(1조6076억원)가 만기 1년 미만인 단기차입금이다. 잔존만기가 1년 내인 유동성장기부채까지 합치면 94%에 이른다. 합병 전에도 단기차입(+유동성장기부채) 비중은 70~80% 수준이었다.
통합 셀트리온의 CFO가 된 신민철 사장은 왜 이런 식으로 부채관리를 하는 것일까. 물론 셀트리온 전체 사이즈와 현금창출력은 단기차입 리스크를 충분히 감내할 정도는 되지만 굳이 힘든 길을 갈 필요가 있나 싶다. 셀트리온 정도 되는 회사라면 삼성바이오로직스처럼 3~5년짜리 회사채 발행을 통해 차입구조를 장기화할 수 있지 않을까.
셀트리온은 그동안 공모회사채 발행 이력이 없다. 2013년 2월 3264억원 규모 해외전환사채를, 2015년 6월 1120억원어치 해외교환사채를 발행한 게 전부다. 단기신용등급과 기업어음 발행 이력만 있을 뿐이다.
한 크레딧 애널리스트의 답변은 의미심장했다. 셀트리온은 바이오제약사,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의약품 위탁생산(CMO) 업체에 가깝다고. 바이오제약사는 채권시장에서 '못 먹는 감' 느낌이 강한 모양이다. CMO는 수주산업과 비슷해 수주규모 및 잔고로 매출 안정성이 담보되지만 바이오제약사는 그렇지 못하다는 의미다.
셀트리온 같은 회사는 연구개발 투자의 선순환 고리가 끊어지는 게 가장 큰 위험이다. 기존 주력품목의 특허보호기간이 만료될 경우 매출과 이익의 급격한 감소가 발생하는데 이때 차기 R&D 성과와 지역다변화, 품목 다변화를 통해 효과적으로 방어, 연구개발 투자의 선순환 구조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느냐가 핵심이다. 단기차입 위주로 굴리는 신 사장의 부채관리 기조는 의도적이기보다 업의 특성 탓이 크다.
지난해 4분기 셀트리온헬스케어 합병을 마무리한 셀트리온은 내년 셀트리온제약과 통합을 추진, 새로운 지배구조 틀을 완성할 계획이다. 3사 합병이 완료되면 셀트리온은 바이오의약품 개발, 생산 및 판매를 모두 수행하는 종합제약사와 비슷한 구조를 갖는다.
그간 셀트리온의 구조적 운전자본 부담과 영업현금흐름 변동성은 신용평가에 불리한 요소로 작용했다. 시장에서 오래 전부터 셀트리온 그룹 3사(셀트리온, 셀트리온헬스케어, 셀트리온제약)의 합병에 관심을 갖는 데는 밸류업과 매출구조 변화도 있지만 종합제약사와 유사한 리스크 프로파일을 갖출 수 있으리란 기대도 있다.
셀트리온 합병은 기업가치와 수익성, 회계 투명성은 물론 크레딧 측면에서도 한층 업그레이드 될 수 있는 기회다. 어쩌면 공모채 시장에 화려하게 데뷔하는 셀트리온의 모습을 볼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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