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d & Blue]은둔의 풍산, 이제는 스포트라이트 중심으로구리 가격 급등 사상 최고가 경신…오병로 재경실장 "자사주 소각 등 주주환원 검토"
이호준 기자공개 2024-05-08 07:27:36
[편집자주]
"10월은 주식에 투자하기 유난히 위험한 달이죠. 그밖에도 7월, 1월, 9월, 4월, 11월, 5월, 3월, 6월, 12월, 8월, 그리고 2월이 있겠군요." 마크 트웨인의 저서 '푸든헤드 윌슨(Puddnhead Wilson)'에 이런 농담이 나온다. 여기에는 예측하기 어렵고 변덕스러우며 때론 의심쩍은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주가의 특성이 그대로 담겨있다. 상승 또는 하락. 단편적으로만 바라보면 주식시장은 50%의 비교적 단순한 확률게임이다. 하지만 주가는 기업의 호재와 악재, 재무적 사정, 지배구조, 거시경제, 시장의 수급이 모두 반영된 데이터의 총합체다. 주식의 흐름에 담긴 배경, 그 암호를 더벨이 풀어본다.
이 기사는 2024년 05월 02일 15:59 THE CFO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How It Is Now풍산의 올해 1분기 연결 기준 매출은 9635억원, 영업이익은 542억원으로 나타났습니다. 전년 동기 대비 각각 8%, 37% 감소한 건데요. 글로벌 탄약 부족 수혜를 입으며 호실적을 기록했던 작년 상황을 생각하면 다소 아쉬운 숫자를 내놨습니다.
그런데 풍산은 최근 증권사 애널리스트를 대상으로 하는 기업설명회(IR)에서 2분기 영업이익 '1100억원 이상'이라는 가이던스를 제시하며 실적 전망을 밝힌 것으로 전해집니다. 다소 아쉬운 출발을 충분히 만회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비친 것이죠.
회사의 말을 믿느냐 안 믿느냐, 그 대답을 반영하는 건 결국 주가일 것입니다. 2일 종가 기준 풍산의 주가는 7만2700원으로 올해 첫날 주가 3만8900원에 비해 87%나 치솟았습니다. 그만큼 시장이 풍산의 자신감을 믿고 응원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특히 이 신뢰 수준은 가히 절대적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풍산은 2008년 코스피 시장에 상장한 이후 3~4만원선에서 주가가 제자리걸음 중이었습니다. 다만 지금은 회사 미래에 베팅한 투자자가 결집하면서 사상 최고가도 경신한 상황입니다.
◇Industry & Event
사실 풍산은 '은둔의 아이콘'입니다. 설립 이후 쭉 기업간거래(B2B) 분야에 몸담아 온 터라 IR이나 홍보 유인이 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때 풍산그룹을 경영하는 류진 회장도 좀처럼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은둔의 경영자'로 불렸습니다.
바꿔 말하면 도대체 풍산이란 어떤 회사인지, 시장이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사업 목적. 풍산은 크게 신동과 방산 두 가지 사업 부문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신동과 방산 부문의 매출 비중은 70대 30입니다.
이 중 핵심인 신동 부문은 구리나 구리 합금을 늘리거나 펴는 사업을 합니다. 구리를 가공해서 판·대, 봉·선, 리드프레임 등의 제품을 만든다고 보면 되죠. 원자재 가공업이기 때문에 구리 가격의 상승분이 제품에 반영되면 그만큼 실적은 좋아집니다.
런던금속거래소(LME)에 따르면 최근 구리 가격은 톤(t)당 1만달러 수준입니다. 올해 초 기록한 톤당 8000달러에서 25%나 높습니다. 이 경우 '메탈게인'(원재료 매입가보다 판매가가 높아지는 현상)으로 인한 이익 급증을 예상해 볼 수 있습니다.
결국 풍산도, 시장도 이 구리 가격 강세에 기대를 걸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업계는 인공지능(AI) 열풍이 구릿값을 밀어 올렸다고 판단합니다. AI 시설 가동 수요가 늘면서 전선 생산과 공급에 필요한 구리가 귀해졌다고 보는 것입니다.
◇Market View
시장은 구리 가격의 상승세가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관측하고 있습니다. 구리 최대 소비국인 중국의 1분기 GDP 성장률이 상승세를 나타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흐름에서 최근 국내 증권사들은 풍산의 목표 주가를 잇달아 높여 잡고 있습니다.
가장 높은 목표가는 8만6000원의 키움증권입니다. 키움증권은 풍산의 PBR(1.03) 등을 감안해 주가가 부담스러운 수준이 아니라고 봤습니다. 이종형 키움증권 애널리스트는 "2분기는 구리 가격 상승에 따른 재고 효과로 역대급 실적이 기대된다"고 했죠.
목표가를 8만4000원으로 제시한 신한투자증권은 최근 주가 상승으로 차익 실현이 나타날 수 있으나 이는 단기 조정이 될 것으로 봤습니다. 박광래 신한투자증권 연구위원은 "구리 가격 상승은 신동 제품 가수요 및 판매량 증가로 이어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밖에도 현대차증권, 한국투자증권 등이 현 풍산 주가보다 1만원 이상 높은 8만원대를 목표 주가로 제시했습니다. 특히 대다수의 증권사는 신동 부문과 함께 나머지 사업 부문인 방산 부문도 향후 호실적의 한 축을 맡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전체 매출 비중에서 30%를 차지하는 방산 부문은 1분기 매출로 약 1743억원을 올렸습니다. 전년 동기와 견줘 27%나 감소한 것입니다. 다만 업계는 방산 부문의 실적 부진이 판매 감소가 아닌 납기 지연에 따른 매출 인식 이연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만큼 2분기에는 관련 매출이 추가로 더해져 실적이 좋아질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추가 수출 가능성도 나옵니다. 608억달러 규모의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안이 지난달 미국 의회를 통과하면서 풍산의 포탄 수출 모멘텀(동력)이 살아날 것으로 봤습니다.
이유진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기계약된 물량을 제외하고도 포탄 수요는 여전히 많아 스팟성(단발성) 수주도 기대되는 상태"라고 설명했습니다.
◇Keyman & Comments
그러나 주가가 단기간에 상승한 만큼, 사실 풍산은 현상황을 '불안한 눈빛'으로 지켜보고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구리 가격이나 방산 업황 등 그동안 주가를 끌어 올린 외부 상황이 급변하게 되면 풍산의 주가도 갑자기 떨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풍산은 회사 내에 공식적으로 최고재무책임자(CFO) 직함이 없습니다. 대신 황세영 부사장이 경영위원으로서 이사회에 참여하며 사실상 CFO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더벨은 풍산 주가에 대한 키맨의 진단을 듣기 위해 통화를 시도했지만 연결되지 않았습니다.
대신 오병로 재경실장 상무과 통화가 연결됐습니다. 오 상무는 황 부사장을 보좌하며 각종 재무적 리스크를 관리하며 경영활동을 지원하는 인물입니다. 그는 그야말로 파죽지세인 자사 주가에 대해 놀라면서도, 냉정한 평가와 팁을 시장에 건넸습니다.
오 상무는 "근래 주가 흐름이 너무 좋아서 회사도 사실 당혹스럽기는 하다"면서도 "그러나 일단 구리 가격이 강세인 상황이라 값이 더 오르기 전에 우리 제품을 사야 한다는 이른바 가수요가 증가해 주가가 오를 만한 상황인 건 맞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폴란드 2차 계약이 이뤄지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등 여러 회사에 풍산의 포탄이 쓰이는 만큼 방산 부문의 매출도 늘어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오 상무는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준비 중인 대책이 있냐는 질문에는 "정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기 위해 여러 시도를 하고 있는 만큼 풍산도 관련 정책에 발맞춰 자사주 매입 및 소각 등의 주주환원책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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