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DB운용 엿보기]방산업체 풍산, ETF부터 OCIO까지 '공격 투자'황세영 부사장 주도, 코로나 기점 광폭 행보
이돈섭 기자공개 2024-05-07 07:43:18
[편집자주]
기업의 확정급여형(DB) 퇴직연금 운용 성과는 회사 부채 관리의 문제를 넘어 근로자들의 안정적인 노후 자금 확보와 맞닿아있다. 따라서 DB 사외적립금 투자 내용과 성과는 자금을 관리하는 CFO 뿐만 아니라 직원들의 관심이 높을수 밖에 없다. 더벨은 상장기업들의 DB운용 현황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이 기사는 2024년 04월 29일 16:0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퇴직연금 시장에서 방산업체 풍산은 공격적인 투자 행보로 유명하다. 퇴직연금 사업자 손을 거치지 않고 자체적으로 재무 상황과 시장 판세를 분석, 상장지수펀드(ETF)와 사모펀드 투자를 통해 DB적립금을 효과적으로 운용하고 있는 대표적인 사업장으로 꼽힐 정도다. 작년 한 해 DB적립금 운용 수익률은 7.5%. 금융투자업계 일각에서는 풍산같은 사업장은 전무후무하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한다.풍산의 DB 적립금 운용 방식이 일대 전환기를 맞이한 건 황세영 부사장 영향이 컸다. 한국씨티은행(과거 한미은행) 프라이빗뱅커(PB) 출신으로 강남센터장 등을 역임한 황 부사장은 2018년 풍산홀딩스의 상근감사로 그룹에 합류, 2021년 3월 풍산홀딩스와 풍산 등기이사로 선임됐다. 풍산홀딩스와 풍산의 부사장으로 CFO(최고재무책임자) 역할까지 소화하던 그는 지난해 3월 임기 2년 재선임에 성공했다.
풍산홀딩스 상근감사로 재직하던 당시 그는 그룹 DB 적립금 운용 방식에도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코로나19 확산 쇼크로 국내외 증시가 고꾸라졌던 2020년 초, 당시 황 감사는 풍산 재경실 측에 DB 적립금의 미국 증시 투자를 제안했고 실제 검토가 이뤄졌다. 당시 풍산은 DB적립금 전체 1542억원중 91%(1410억원)는 현금과 현금성자산, 나머지 9%(132억원)를 채권혼합형 펀드로 굴리고 있었다.
풍산 재경실은 황 감사 제안을 받아 DB적립금 중 일부를 미국 증시 인덱스 펀드와 달러 기반 채권에 7대 3 비중으로 투자해 연말 상당한 투자 성과를 거뒀다. 2019년 말 DB적립금 적립비율은 89.8%에 불과했지만 해외 투자 성과에 힘입어 2020년 말 106.6%로 확대했다. 실적배당형 투자 규모도 132억원에서 182억원으로 불어났다. 고용노동부는 풍산을 퇴직연금 우수사업장으로 선정키도 했다.
2021년 사내이사로 CFO직을 맡은 황 부사장은 DB 적립금을 보다 체계적으로 운용하기 위해 퇴직연금 업무에 정통한 금융투자업계 PB 출신 직원을 고용하기로 했다. 그해 7월 채용 절차를 마친 풍산은 9월부터 본격적으로 퇴직연금 사업자 중개 없이 자금팀 자체적으로 국내외 시장을 분석해 증권사와 협업해 직접 ETF 매매에 나섰다. 실적배당형 투자 규모는 1년 전과 비교해 60억여원 이상 불어났다.
당시 풍산은 산업은행과 교보생명, 우리은행 등 복수의 퇴직연금 사업자와 적립금 관리 계약을 체결하고 있었지만, 사업자들 도움 없이 DB적립금을 적극 운용했다는 점에서 금융업계 이목을 크게 사로잡았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대부분의 사업장이 전문 인력 부재로 퇴직연금 사업자 제안에 동조하기 마련인데, 독립적인 시장 뷰(View)를 갖고 투자에 임한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고 평가했다.
지금은 현행법 상 상시근로자 300인 이상 사업장은 DB적립금 운용위원회를 설치해야 하지만, 풍산의 경우 2021년 이미 위원회를 설치하고 운영한 점도 눈에 띈다. 대표이사와 인사팀, 자금팀 등이 모여 적립금 운용 전략과 중간 운용 성과 등을 논의하기 위한 장치로, 지난해 하반기 국내 증시가 폭락했을 때 해당 운용위원회에서 적립금 운용 전략을 인덱스 매수 포지션으로 재설정하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풍산은 2021년 DB 적립금 만기를 다변화에 나서 현재까지 이러한 기조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지난해의 경우 풍산홀딩스와 함께 삼성자산운용 OCIO 사모펀드를 조성, 매년 꾸준한 성과를 내기 위한 장치도 마련해놓은 상태. 지난해 말 풍산은 전체 적립금 2272억원의 17.3%에 해당하는 392억원을 펀드 등 실적배당형 상품에 투자하고 있었다. 작년 한 해 운용 수익률은 7.5% 수준이었다.
다만 DB 적립금 운용 전담을 위해 채용한 직원은 올해 초 회사를 떠난 상태다. 지금은 재경실 산하 자금팀 소속 직원들이 적립금 운용을 전담 마크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한때 자금팀이 DC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인사팀 업무를 흡수하는 방안도 검토했다고 전해지지만 실제 이행되진 못했고 DB적립금 업무는 자금팀이 전담하고 있는 상황이다. 황 부사장이 관련 업무를 모두 총괄하는 점은 과거와 변함없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DB적립금 운용 결과가 기업 재무상태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한 만큼, 기업이 자기 상황을 스스로 진단해 그에 맞춘 운용 전략을 구축했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고무적"이라며 "더군다나 풍산의 경우 DB 적립금의 장기 운용 포트폴리오를 구축해 실제 퇴직연금 사업자 성과보다 높은 수익률을 거두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전체 사업장에 시사하는 바가 상당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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