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열분리 이슈 재점검]해외법인 활용해 주식 확보한 한일시멘트 오너가 3세⑧존재감 드러내는 허정규씨, 시멘트 아닌 레저·엔터·외식 등 분야 담당
김위수 기자공개 2024-05-16 11:10:40
[편집자주]
형제경영, 사촌경영과 같은 수식어가 붙은 대기업집단은 잠재적으로 계열분리 가능성이 높은 곳이다. 재계의 역사를 살펴보면 경영에 참여하는 친족들이 많을수록 분쟁 가능성이 높고, 분쟁을 사전에 확실하게 방지할 수 있는 방법은 '분리'였다. 효성그룹 오너가 3세들이 계열분리 준비를 시작하며 다른 대기업들의 분리 가능성에 재계의 시선이 다시 한번 모이고 있다. 더벨이 계열분리 가능성이 있는 그룹들의 현황을 다시 짚어보고 향후 지배구조 변화 가능성에 대해 점검해 봤다.
이 기사는 2024년 05월 14일 07:5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한일시멘트그룹 오너가 3세인 허정규(허제이정)씨가 싱가포르 소재 개인회사를 통해 지주사 및 계열사 지분을 일부 확보했다. 아버지인 허남섭 명예회장으로부터 지분을 받는 형태다. 허씨는 한일시멘트그룹의 경영에 참여하고 있지만 주력인 시멘트 사업이 아닌 레저·외식업 분야를 중심으로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사업의 연관성이 떨어지고 친척지간인 오너가 일원들의 영역구분이 확실한 만큼 독립경영에 대해 고려 중일 가능성이 크다. 아직까지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이 탄탄하지 않은 계열분리가 일어난다고 해도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향후 가족기업 및 해외법인을 어떻게 활용할지도 관심사다.
◇비상장사·해외 계열사 통해 지분 확보
허씨가 지분 78.26%를 보유한 싱가포르 법인 HHH글로벌은 최근 허남섭 한일시멘트 명예회장으로부터 한일홀딩스 주식 30만주와 한일시멘트 주식 50만주를 받았다. HHH글로벌이 확보한 지분은 한일홀딩스 0.97%, 한일시멘트 0.72%다. 시장가치 기준 약 105억원으로 환산할 수 있다. 이번 증여로 허남섭 회장의 한일홀딩스 지분율은 기존 2.58%에서 1.61%로, 한일시멘트 지분율은 2.62%에서 1.9%가 됐다.
또 허남섭 명예회장은 본인이 보유 중이던 녹십자홀딩스 주식 25만주도 증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확히 누구에게 주식을 증여했는지 나타나지는 않았다. 시기적으로 미뤄보면 녹십자홀딩스 지분 역시 HHH글로벌으로 향했을 가능성이 크다.
한일시멘트그룹 측은 가족 간의 재산 증여에 불과하다는 설명이다. 재계에서는 허씨가 한일시멘트그룹에서 3세 경영인으로서 입지 굳히기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를 위해 아버지인 허남섭 명예회장이 자신의 지분을 활용해 지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허남섭 명예회장 일가, 독자적 영역 구축 중
한일시멘트그룹은 현재 3세경영 체제가 확고히 자리잡은 상태다. 장남 중심의 승계구도가 명확히 드러난다. 창업주인 고 허채경 명예회장의 장남인 허정섭 명예회장 일가가 그룹의 경영권을 쥐고 있다.
허채경 명예회장의 장남인 허정섭 명예회장이 지주사격인 한일홀딩스의 지분 16.33%를, 허채경 명예회장의 장손이자 허정섭 명예회장의 장남인 허기호 회장이 같은 회사 지분 31.23%를 보유 중이다. 또 허기호 회장은 한일홀딩스에서 그룹 전반의 경영을 들여다보고 있으며 동생인 허기수 부회장은 한일시멘트·한일현대시멘트 등 사업회사의 등기임원으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허정규씨의 경우 그룹내 입지가 큰 편은 아니다. 아버지인 허남섭 명예회장은 창업주의 4남이다. 3세경영이 시작되기 직전 2012년부터 2016년 무렵까지 한일시멘트(한일홀딩스-한일시멘트 인적분할 전)의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형제경영 명목으로 그룹 회장을 지냈지만 실질적으로 허남섭 일가의 몫으로 여겨지는 영역은 서울랜드 정도다. 그나마도 서울랜드의 지분 중 85.67%는 한일홀딩스에 귀속돼있다. 나머지 지분을 허남섭 명예회장 일가의 가족회사 등을 통해 확보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에 따라 허정규씨 역시 서울랜드 등 레저·엔터테인먼트·외식업 분야 계열사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1991년생인 허정규씨는 다른 오너3세 경영인들과 나이 차이가 큰 관계로 2022년에서야 서울랜드 등기임원으로 이름을 올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재계와 관련업계에서는 앞으로도 허정규씨가 한일시멘트그룹의 주력 사업인 시멘트 분야의 경영에 나서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계열분리, 명분은 충분하지만 실행이 어렵다
허정섭 명예회장 일가와 허남섭 명예회장 일가의 사업영역이 뚜렷하게 구분돼 있다. 또 두 사업간의 시너지도 그리 크지 않다. 재계에서는 허남섭 명예회장 일가가 독립하는 형태로 계열분리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기도 하다.
허남섭 명예회장 일가의 독립 기반이 부족하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이들 일가의 영향력하에 있는 계열사 중 가장 핵심적인 계열사인 서울랜드의 지난해 매출은 567억원, 영업이익은 4억원에 불과했다. 배당의 재원이 되는 미처분 이익잉여금은 마이너스(-) 상태다. 아직 한일시멘트그룹을 떠나 별도 기업집단을 꾸릴만한 여력이 크지 않다.
게다가 허남섭 명예회장 일가의 지분율 자체가 매우 낮은 만큼 쉽사리 계열분리를 시도할 수도 없는 상태다. 충분한 실탄이 확보돼야 하는 상황이다. 재계 관계자는 "독립에 나설 명분은 있겠지만 현실적인 여건을 고려했을 때 조건을 갖추려면 먼 미래가 돼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허남섭 명예회장의 증여가 허정규씨 개인이 아닌 법인을 통해 이뤄진 점에 주목된다. 증여세를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볼 수도 있기도 하지만 먼 미래 승계와 계열분리 등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해 설립된 회사가 아니겠느냐는 추측도 나온다.
HHH글로벌은 컨설팅 및 자문 서비스업을 담당하는 회사라고 명시돼 있다. 지난해 말 기준 1394만4686싱가포르달러(약 141억원)의 자산을 운용하는 회사로 나타났다. 이중 단 1만557싱가포르달러(약 1100만원)만이 부채로 분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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