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풍-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재무건전성 지적받자 '3년 묵혀둔' ICR 꺼냈다미공개 등급, 최윤범 회장 측이 신평사에 공시 요청...10년만에 시장성 조달 가능성도
권순철 기자공개 2024-09-25 15:43:37
이 기사는 2024년 09월 23일 15:3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경영권 분쟁에 한창인 고려아연이 재무건전성 지적을 받자 'AA+, 안정적'에 해당하는 기업신용등급(ICR)을 공개하며 반격했다. 이미 3년 전에 받아둔 등급이지만 그동안 미공시로 분류하다가 대외 신인도를 어필하기 위해 신평사에 공시 요청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향후 조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최윤범 회장이 '트로이카 드라이브'를 천명한 만큼 투자금을 확보하고자 단기등급을 의뢰하기도 했다. 실제 조달에 나설지 여부는 분쟁 경과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실현될 경우 10여년만의 시장 등판이라 IB 업계의 관심도 집중되고 있다.
◇'3년간 미공개' ICR 공시…"재무건전성 문제 없다" 어필
크레딧 업계에 따르면 나이스신용평가는 지난 20일 고려아연의 기업신용등급(ICR)과 기업어음(CP) 신용등급을 각각 'AA+, 안정적', A1으로 평가한다고 밝혔다. 한국기업평가도 동일한 평정 결과를 내놓았다. 나신평 기준 고려아연이 ICR을 공개한 것은 2013년이 마지막으로 무려 10년 만의 발표라는 점에서 이목을 끌었다.
통상 ICR 평정 의뢰는 회사채 등 시장성 조달에 대한 의지를 간접적으로 반영하지만 고려아연의 경우에는 대외 어필 성격이 짙다. 공개 직전에 경영권 분쟁을 벌이던 영풍과 MBK 측으로부터 재무 건전성에 대한 지적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최윤범 회장이 선임된 이래 부채 증가 속도가 급격히 빨라졌다고 주장했다.
물론 이번 ICR은 재무건전성 지적 후 바로 신평사에 의뢰해서 받은 등급은 아니다. 3년 전에 받아뒀지만 당시에는 미공시로 분류했고 최근 공시 요청을 하면서 비로소 공개된 것이다. 나신평 관계자는 "어떤 사정이 있든 회사에서 미공시 등급을 택하면 공시가 되지 않는다"며 "며칠 전부터 얘기가 오갔는데 회사가 공시할 것을 요청했다"고 전했다.
당초 고려아연은 CP 등급 평정을 의뢰하고자 신평사의 문을 두드렸지만 3년 전에 받았던 ICR도 CP등급과 함께 공개될 수 있다는 안내를 받았다. 이에 회사 측도 평정 분석 보고서가 업로드되기 전에 등급을 공개할 수 있는지 되물었다고 전해진다. 우량한 등급인데다가 영풍 측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한 차원에서라도 굳이 미룰 이유가 없었다.
3년간 미공시를 택한 배경에 대해선 명확하지 않다. 다만 이를 두고 전임 회장들과 최 회장의 성향 차이에서 비롯됐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최 회장은 부임 후 IR, NDR 등 대외 접촉을 크게 확대했지만 최근까지도 고려아연은 투자자들과의 미팅에서조차 소극적인 스탠스였다. 이에 ICR을 조달 또는 마케팅으로 활용할 필요성이 적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 조달 가능성도 '대두'…10여년 만의 시장 등판 여부 '촉각'
이번 ICR 등급 공개는 물론 영풍과 MBK 측의 주장에 맞서 재무건전성을 비호하려는 의도가 강하지만 실제 시장성 조달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단기 자금 확보를 염두에 두고 CP 등급을 의뢰하고자 움직인 시점에서 ICR이 3년 만에 공개됐기 때문이다.
고려아연은 그동안 무차입 기조를 오랫동안 유지한 회사로 잘 알려져 있다. 2010년 미래에셋증권을 대표 주관사로 선임해 1134억원 규모의 공모 외화채를 찍었던 것이 고려아연의 마지막 시장성 조달이었다. 이후 2013년 나신평으로부터 ICR 등급을 받았지만 회사채 발행은 고사하고 CP 등 단기자금 조달도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단기 자금 확보에 나섰던 것은 최 회장 부임 후 본격화된 '트로이카 드라이브'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는 주력 비즈니스인 제련업에 더해 신재생에너지, 자원순환, 2차전지 등 친환경 사업을 새로운 신성장 동력으로 삼는 청사진을 그렸다. 대규모 투자가 예상되는 만큼 추가 자금을 확보하고 조달처를 다변화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고려아연은 '아직 구체적인 발행 일정은 없다'는 입장이지만 추후 시장성 조달을 개시할 가능성은 일축하지 않았다. 최 회장이 대외 PR을 크게 늘리면서 투자자들과의 접점이 확대되고 있다는 부분은 긍정적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특히 그동안 무차입 기조로 다져진 재무 체력이 견고해 차입 여력도 충분한 상태다.
다만 실제 행동에 나설지 여부는 향후 경영권 분쟁의 경과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관측된다. 영풍과 MBK가 공개매수에서 승기를 잡는다면 최 회장의 트로이카 드라이브에도 먹구름이 깔릴 전망이다. 영풍은 최 회장과 달리 무차입에 기반한 보수적 투자를 요구하고 있어 이 경우 고려아연이 시장에 등판하는 시나리오도 요원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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