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외평채]사상 첫 캥거루본드에 '설왕설래'…발행한도 의식했나①호주 투자자도 '생소한' 소버린 채권…국회 발행량 감소 지적에 급하게 등판 가능성
이정완 기자/ 윤진현 기자공개 2024-12-17 07:59:58
[편집자주]
기획재정부의 호주달러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 발행은 이래저래 미스터리다. 호주에서 찍는 외평채도 처음이고 해가 바뀌기 직전 투자자를 찾는 경우 역시 찾아보기 어렵다. 발행 규모도 3억달러로 외환보유고 측면에서 실익이 크지 않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연내 외평채를 발행해야 한다는 미션이 주어지다 보니 이런 일이 생겼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더벨이 과거 외평채 발행 사례를 통해 본 이번 발행 배경과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살펴본다.
이 기사는 2024년 12월 03일 15:29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연말이 되면 멀쩡한 보도블록을 헤집고 새로운 블록으로 교체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1년 동안 쓰고 남은 예산을 모두 털어내 내년 예산 한도에 영향을 주지 않으려는 것이다.이와 비슷한 일이 외국환평형기금채권(이하 외평채) 발행에서도 이뤄지고 있다. 최근 수년 동안 기획재정부가 외화 표시 외평채 발행 한도를 채우지 못하자 국회에서 비슷한 지적이 나왔다.
IB업계에서는 기획재정부가 사상 첫 호주달러 조달에 나선 이유가 한도 소진을 위해서라고 보고 있다. 호주는 각국 정부가 발행하는 소버린 채권(Sovereign Bond)이 발행되는 시장이 아니지만 우리와 회계 결산 시점이 달라 아직 투자가 활발하다.
◇발행 먼저 정하고 조달 영토 찾았나
3일 IB업계에 따르면 대한민국 정부는 첫 호주달러 표시 외평채 발행을 위한 프라이싱에 돌입했다. 5년물로 최초제시금리(IPG)는 호주 스와프금리(ASW)에 60bp를 더한 수준으로 제시했다. 최종적으로 약 26억3000만 호주달러 주문이 쌓여 4억5000만 호주달러(약 4100억원) 조달을 빠르게 마무리했다. 금리는 IPG보다 5bp 낮춘 55bp로 정해졌다.
흥행에는 성공했지만 캥거루본드 외평채를 앞두고 호주 투자자도 생소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발행을 담당하는 기획재정부는 지난달 말 호주 지역에서 로드쇼(Road Show)를 진행하며 투자자를 만나고 돌아왔다. 호주달러 시장에 나온 오랜만의 소버린 채권이었던 만큼 투자자도 왜 발행하는지 궁금해했다는 후문이다. 2005년 스웨덴 이후 정부가 발행하는 채권은 약 20년 만이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와 호주 사이에서 특별히 우호적인 이벤트가 발생하지도 않았다. 지난해 일본에서 처음으로 사무라이본드 외평채를 찍을 때만큼 정치적 필요도가 크지 않았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왜 호주였을까. IB업계에선 외화 표시 외평채 입지가 줄어드는 걸 막기 위한 조치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국정감사와 내년도 예산안 수립 과정에서 외화 표시 외평채 발행한도에 대한 의문이 있었다. 올해 외화 표시 외평채 발행한도는 13억달러였는데 지난 7월 SSA(Sovereign, Supranational and Agency) 방식으로 10억달러를 조달한 뒤 3억달러가 남았다는 것이다.
지난 8월 발표된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2023 회계연도 결산 검토보고서에도 이 같은 기조가 드러난다. 기획재정위원회는 "2022년과 2023년에 발행한도 대비 외평채 발행 금액이 적은 편"이라며 "올해는 외화 외평채 13억달러가 발행한도로 설정됐으나 6월 기준 10억달러가 발행됐다"고 검토의견을 냈다. 내년도 기획재정부 예산안 수립을 위한 예비심사검토보고서에선 외화 표시 외평채 발행한도가 12억달러로 줄어들기도 했다.
결국 연말까지 남은 한도인 3억달러를 모두 소진하는 방향에 무게가 실렸다. 하지만 연말에는 해외 기관투자자도 북클로징(회계장부 결산)을 맞아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지 않는다. 특히 미국 시장은 추수감사절 이후 휴식기에 돌입하는 분위기다.
그래서 선택한 대안이 호주 시장이다. 호주는 다른 대부분의 국가와 달리 회계연도가 6월 30일에 끝난다. 우리나라 식으로 대입하면 투자가 한창인 2분기인 셈이다. 이 덕에 남은 한도인 3억달러 어치 4억5000만 호주달러 조달이 가능했다.
◇"조달 통화 다변화 성과…자본 교류 물꼬"
기획재정부는 글로벌 투자 저변 확대에 더욱 힘을 실었다고 평가한다. 지난 10월 한국 국고채가 FTSE 러셀의 세계국채지수(WGBI)에 편입되면서 투자 여건이 개선됐다고 판단한다. 특히 호주에는 호주연금(Australian Super), 대학연금(Uni Super), 교직원연금(Future Super) 같은 우량 투자자가 다수 분포해 신규 투자자 확보 차원에서도 중요성이 크다.
통화 다변화를 통해 새로운 벤치마크를 형성하는 역할도 했다고 설명한다. 올 들어 많은 국내 기업이 캥거루본드를 선택했다. 국책은행인 수출입은행의 10억 호주달러 조달을 비롯 신한카드와 신한은행도 호주 시장에서 조달에 성공했다. 앞으로도 호주 시장 공략이 지속될텐데 우리 정부가 기준점을 세웠다는 평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외평채 발행 목적은 보유 통화 다변화와 벤치마크 형성에 있다"며 "처음으로 호주달러 채권을 발행한 만큼 의미가 크다"고 강조했다. 이어 "호주와 실물 경제 교류는 많았는데 이번 발행으로 자본 교류 물꼬를 텄다"며 "호주 자산 보유 필요성이 높아 다른 통화로 스와프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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