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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건설사 달라지는 '역학관계' 채무자 옹호 법률 제도적보강 '은행권력' 약화

문병선 기자공개 2011-04-13 16:43:56

이 기사는 2011년 04월 13일 16:4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한솔건설의 워크아웃을 받아들여준다면 상황이 여의치 않은 3~4개의 다른 건설사들 역시 은행권에 책임을 떠넘기려 워크아웃을 신청할 것이다. 이런 '도미노 사태'는 막아야 한다. 그룹 입장을 제고해 달라."

지난해 말 한솔건설의 워크아웃을 결정한 한솔그룹측에 주채권은행인 우리은행 관계자가 건넨 말이다. 그룹의 지원 여력이 충분한데도 불구하고 워크아웃 등으로 은행권에 손실을 떠넘기는 행위를 받아들 일 수 없다는 뜻에서 한 말이다.

하지만 한솔그룹의 입장은 변하지 않았다. 한솔그룹 여신 '만기연장 불가' 등 비공식적인 루트를 통해 '압박'이 들어갔으나 한솔그룹의 자세는 완강했다. 한솔건설은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채 법원에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했다.

한솔건설이 법정관리를 신청한 지 반년이 되지 않아 한솔건설의 뒤를 이어 은행권과 '각'을 세운채 계열 건설사를 버리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일률적이지 않고 개별 기업에 따라 상황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은행과 사전교감없이 계열 건설사의 진로를 그룹 자체적으로 결정해버린다는 것이다.

과거라면 상상하지 못할 일이다. 기업개선절차(워크아웃)에 돌입할 지 말지, 법정관리를 신청할 지 말 지 여부를 채권은행과 교감없이 진행하면 여러모로 불이익을 받았다. 여신회수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업은 '미운털'이 박히지 않기 위해서는 은행과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채무자 옹호 법률 제도적으로 보강

이런 '반목'을 트렌드가 바뀐 것으로 받아들이는 해석이 적지 않다. 한두건이 아니라 지난해부터 연달아 예상치 못한 상황이 돌출하기 때문이다. 트렌드가 바뀐 가장 큰 이유로는 채무자를 옹호하는 법률이 제도적으로 보강됐고 자금조달의 원천이 은행에서 시장으로 다양화됐다는 점이 꼽힌다.

예컨대 개인 회생 절차만 보더라도 채권자의 권리는 줄어든 반면 채무자의 권리는 크게 나아졌다. 일정한 자격만 갖추면 금융권 빚이 아무리 많더라도 '개인 워크아웃' 또는 '개인 회생' 절차를 통해 빚을 탕감하고 회생할 수 있도록 했다.

법인에게 적용되는 회생 관련 법률(통합도산법)도 기업들이 은행의 협력없이 빠른 구조조정을 할 수 있도록 보완됐다. 은행 주도로 만들어진 기업구조조정촉진법 제정안 역시 기업이 원하지 않으면 워크아웃에 들어가지 않토록 바뀌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선택의 폭이 넓어진 것으로 봐야 한다"며 "기업 입장에서는 은행과 함께 구조조정을 하는게 나을지, 단독으로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게 나은 지를 판단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건설업 매력 떨어져..그룹 성장동력서 제외

하지만 채무자의 권리가 법률적으로 보완됐다는 점 만으로는 설명이 충분치 않다. 여기에는 건설업종의 매력도가 떨어지고 있다는 점도 한몫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한솔그룹이 빚이 많지 않았던 건설 자회사를 떼어낸 것이나 LIG그룹이 두번에 걸쳐 LIG건설 유상증자를 고민하다가 막판에 포기한 것은 그룹의 '사업 포트폴리오'와 관계가 깊다는 해석이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여전히 다수의 그룹이 건설사를 지키기 위해 많은 지원을 하고 있어서 최근의 사건은 소수의 일로 보인다"면서도 "과거와 달리 건설업을 포기하는 그룹이 늘고 있고 이는 건설로 돈을 벌 수 있다는 매력이 반감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건설 경기가 다시 살아난다고 해도 예전처럼 주택 건설로 큰 수익을 거두기가 어렵다는 인식이 자리잡으면서 빚을 내면서까지 건설사를 지키려는 매력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은행 역시 상황을 모를 리 없다. 하지만 은행도 2006년부터 2008년초반까지 급증한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부실 때문에 곤욕을 치르는 것이지 신규 PF 대출은 거의 취급하지 않는다. 은행이 비록 건설사를 버리는 대그룹 오너를 비판하고 있으나 은행 역시 건설업종의 매력이 떨어졌음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조달의 원천 다양화..'은행권력' 약화

이 밖에도 기업들이 은행의 여신에만 의존하던 과거와 달리 자금조달의 원천이 다양해졌다는 점도 은행권력이 약화된 원인으로 꼽힌다.

예컨대 삼성그룹이나 현대자동차그룹과 같은 굴지의 대그룹은 은행 여신을 거의 쓰지 않는다. 대신 자금이 필요할 때면 시장을 통해 회사채를 발행해 조달한다. 은행의 고압적 자세를 피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초저금리가 이어지면서 경쟁력있는 금리로 자금을 끌어 모을 수 있다.

혹시 은행과의 관계가 악화되더라도 기업의 투자비와 운영비를 조달할 수 있는 루트가 다양해졌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현대그룹이다. 현대그룹은 채권은행단의 재무구조개선약정 체결 요구를 거부하고 채권단과 소송까지 벌였다. 채권은행은 재무구조개선약정을 체결하지 않는다며 은행권 공동의 '만기도래 여신 회수' 조치를 취했으나 현대그룹은 꿈쩍하지 않았다.

이 사건의 결말은 '현대그룹의 위기'가 아니었다. 당시만해도 은행권 관계자들은 사석에서 "C그룹처럼 위기가 닥쳐야 알게 될 것"이라면서 현대그룹이 위험할 수 있다고 경고하곤 했다. 하지만 현대그룹은 올해 보란듯이 '주채무계열'에서 제외됐다. 은행 여신을 쓰지 못한 대신 시장을 통해 회사채를 발행하면서 자금을 조달했기 때문이다.

◇금융권 "그룹 오너의 이기주의" 불만

은행권에서는 최근 잇따른 건설사 법정관리 신청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그룹 오너들이 은행을 이용만하려 한다는 게 불편함의 골자다.

은행권 다른 관계자는 "필요할 때만 은행을 찾는 기업이 꾸준히 성장하는 걸 못봤다"며 "은행 자금을 빌려 쓴 뒤 갚아야 할 때면 모른채하거나 빌려간 자금을 헛되이 쓰는 것은 오너의 방만한 경영"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은행이 무책임한 경영의 보완 장치로 받아두었던 대주주 또는 계열사 '지급보증'의 의미가 퇴색한 점도 이유로 꼽힌다. 이번에 법정관리를 신청한 삼부토건 역시 PF 사업장에 대해 계열사가 입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지급보증은 법정관리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다.

시중은행 여신담당 지점 관계자는 "지급보증은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고 대신 은행이 추가 담보를 요구하는 사례가 많아졌다"며 "그러나 담보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기업과 은행의 감정이 상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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