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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bell note]"피곤하지만 싫진 않아"

김소라 기자공개 2023-12-01 13:41:11

이 기사는 2023년 11월 30일 08:0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어떤 기업이 궁금할 때 재직 중인 사람을 떠올려 보곤 한다. 그를 통해 모든 상황을 판단할 순 없지만 생각보다 많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어떤 말을 어떻게 했는지, 느껴지는 기운은 어땠는지 등 시간을 되짚어본다.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왠지 모르게 석연찮은 느낌이 드는 부류와 상대적으로 심심하고 일상적이지만 간단명료하게 말을 전하는 부류다. 이들 모두 일부만 보여준 것뿐이지만 이 작은 단서만으로도 충분히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대놓고 경영진을 저격하는 인물들은 후자다. 디테일하고 세심한 상사 때문에 내가 좀 더 피곤하고 힘들다는 거다. 하지만 들어보면 그게 결코 싫지 않다는 게 이들의 요지다. 애정 어린 투정과 같다.

최근 공시 실수로 회장님 불호령이 떨어졌다던 한 IR 담당자는 "심각한 사안은 아니었으나 제때 공시했다면 받지 않아도 될 벌점이 떨어졌던 상황이었다"며 "관련 정보 전달이 미흡했던 영업팀 과실도 있었지만 오히려 해당 부서를 평소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는 점까지 더해서 반성문을 제출해야 했다"고 토로했다. S대 의대 교수 출신이라 빅마우스(bigmouth)에 까다롭다는 말과 함께.

또 다른 중견그룹 회장님은 시도 때도 없는 연락으로 정평이 났다. 하고 싶은 것도, 사고 싶은 것도 많은 회장님은 평일, 주말할 것 없이 전략팀장에게 말을 건다고 한다. 아침 6시가 되기 무섭게 메시지를 남기는 회장님과 토요일 오전 느지막이 일어난 그가 뒤늦게 이를 확인하는 패턴이다. 해당 그룹 관계자는 "워낙에 일을 벌이시는 편이나 당사자 입장에선 얼마나 당혹스럽겠냐"며 "회장님이 하나하나 직접 챙기셔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 말했다.

반대 사례는 저격할 힘도 없는 경우다. 내부 사정이 심각하게 돌아가다 보니 차마 뒷말을 꺼내기 어렵다. IPO 일정이 지연되고 있는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수익성이 안 나오니 상장이 어려운데 SI 압박에 난감한 상황"이라며 "이미 내부적으론 무급 휴직을 권고하고 있고 CFO도 최근 교체됐다"고 말했다. 회장 직속으로 일하던 한 코스닥 상장사 IR 담당자는 모호해진 업무 분장이 고민이다. 오너가 구속되며 당장 기업 홍보가 필요치 않은 상황에서 시간만 때우기도 고역이란 입장이다.

구성원이 자유롭게 입장을 개진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 있느냐는 중요하다. 한 IB는 투자 의사를 결정하기 위해 대상 기업에 질의했을 때 오너만 답하는 곳은 제외한다고 한다. 바지 CFO, 바지 재무팀장이 있는 곳은 원치 않는다며. 이들에게도 상사 등쌀을 씹으며 하루를 푸념할 수 있는 날들이 오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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