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4년 02월 29일 07:49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지난해 국내에서 태동하고 있는 '순환경제(Recycling Economy)' 섹터를 취재하면서 각 사의 대표에게 짓궂게 던진 질문이 있었다. "그래서 이 사업이 돈이 되는 사업입니까?" 어리석은 질문에 순환경제의 현인들은 비슷한 답을 내놨다. "이 사업이 돈을 만드는 게 아닙니다. 사람들의 인식이 돈을 만들게 될 겁니다."풀어 말하면, 소비자들의 인식이 바뀌어야 궁극적으로 새 시장이 형성되고 그 시장 안에서 각 기업들이 부가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순환경제는 기존 '선형경제'와는 다른 개념의 생산 구조를 기반으로 한 경제모델이다. 선형경제가 자원의 추출, 생산, 유통, 폐기에서 끝나는 구조라면 순환경제는 폐기와 자원 생산을 다시 연결해 원형(cycle)구조로 만드는 게 핵심이다. '쓰레기=자원'의 인식이다.
그래서 소비자들이 잘 버리는 게 중요하고, 쓰레기에서 태어난 자원으로 만든 순환경제 제품에 가점을 주는 인식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대표적인 예가 파타고니아다. 미국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는 이미 오래전부터 폐플라스틱에서 원사를 뽑아 옷을 만들었고, 제품이 팔리면 일정액을 환경단체에 기부하는 방식으로 기후위기 대응에 기여하고 있다. 창업주 이본 쉬나드 회장은 2022년 4조 2000억원 상당의 지분을 환경단체에 기부하기도 했다.
최근 경북 영천에 소재한 폐플라스틱 재생유 제조사 '한국에코에너지'를 취재했다. 2022년에 창업한 초기기업이다. 코스메틱 사업체(소망화장품)를 오랫동안 경영한 김준식 대표는 극적인 피벗의 배경을 묻는 질문에 다소 뜬금없는 대답을 했다. "돈을 넘어서 궁극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싶었습니다." 아니, 쓰레기를 수거해 열처리해 기름을 뽑는 사업에서 아름다움이라니. 그 아름다움은 외면이 아니라 순환경제와 맥이 닿는 '착한경제'를 뜻하는 걸로 들렸다. 마음을 아름답게 만드는 사업 말이다.
한국에코에너지 뿐만 아니라 폐플라스틱 재생유를 하는 기업은 국내에 약 20~30여 곳 있다. 다들 초기기업이지만, 유의미한 성과를 거둔 기업들도 있다. 경북 경주에 소재한 인지이엔티의 경우는 이미 수년 전부터 재생유를 생산해 국내 정유사들에 공급하고 있다. 열분해 방식이 아니라 세라믹 파동을 활용해 재생유를 생산하는 '도시유전'은 북유럽 등 순환경제 선진국과 손을 잡고, 플랜트 진출을 검토하고 있다. 한국에코에너지 역시 최근 국내 주요 정유사에 자체 생산한 열분해유를 초도 공급에 성공했다.
다행인 점은 사람들의 여망이 모여 법안 통과로까지 이어졌다는 점이다. 국회는 올해 초 석유사업법을 개정하고, 석유정제공정에 친환경 정제원료의 투입을 허용하는 동시에 친환경 연료에 재생합성연료 등을 포함했다. 폐플라스틱에서 추출한 재생유가 정유 공정에 본격적으로 확대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아직 다양한 규제가 남아 있지만, 최대 공급처가 될 정유사의 숨통을 틔워 관련 시장을 부흥하겠다는 의미다. 각 제조사는 수율을 끌어올리는 데 사력을 다할 전망이다.
재생유 뿐만 아니다. 생분해 플라스틱을 제조하는 세림B&G, 풍력발전 유니슨 등 순환경제의 선각자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각 영역에서 분투하고 있다. 진창에서 연꽃으로 피어나고 있는 재생유 시장을 기점으로 올해 대한민국 순환경제 시장이 순풍을 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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