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반·디·배 할퀴는 중국] '팹리스 대국' 공략 차질, 토종 파운드리 비상⑤삼성·SK·DB 등 나란히 고전, 자국 고객마저 이탈 우려
김도현 기자공개 2024-12-17 10:39:11
[편집자주]
중국이 반도체, 디스플레이, 배터리 등 첨단산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 미국의 제재를 기점으로 이같은 기조는 가속화하는 분위기다. 양강 사이에 낀 한국은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이어가고 있다. 주요 먹거리가 위협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비상이다. 소재, 부품 등 특정 품목에서는 이미 중국에게 주도권을 뺏겼다. 우위를 보이던 장비마저 중국산이 판을 친다. 중국 공세에 시달리는 국내 소부장의 현주소와 대안을 조명해본다.
이 기사는 2024년 12월 16일 07:4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우리나라는 반도체 강국으로 여겨지지만 지나친 메모리 의존도가 '옥에 티'다. 메모리 시장은 서버, 모바일 등 주요 응용처 업황에 따라 기복이 크다는 문제가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물론 이들과 거래하는 협력사의 실적이 널뛸 수 있다는 의미다.이를 타개하고자 수년 전부터 정부와 산업계는 시스템반도체 생태계 육성에 나서고 있다. 다만 성과는 아직 미미하다.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과 설계(팹리스) 기업 모두 예상보다 성장세가 더디다. 중화권 업체의 약진으로 더욱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됐다. 견인차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받은 삼성전자마저도 차질을 빚을 정도다.
◇SMIC, 내수시장 힘입어 급성장…국내 환경과 대조적
16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8인치(200mm) 파운드리 라인 가동률은 50% 아래로 떨어진 상태다. 삼성전자가 구형(레거시)인 8인치 대신 첨단 반도체가 양산되는 12인치(300mm) 라인에 인적 및 물적 자원을 집중하는 점을 고려해도 낮은 수치로 평가된다.
이는 SMIC, 화홍 등 중국 경쟁사의 활약과 맞물린다. 이들은 정부 지원에 힘입어 자국 물량을 대거 확보하면서 빠르게 몸집을 키우고 있다. 특히 SMIC는 TSMC와 교류가 끊긴 화웨이를 비롯해 크고 작은 현지 고객과 협업하면서 파운드리 업계 3위로 올라섰다.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에 의하면 올 3분기에는 삼성전자가 한 자릿수(9.3%) 점유율(매출 기준)에 그친 데 반해 SMIC는 6.0%로 집계되면서 격차가 상당히 좁혀졌다. SMIC는 미국 제재 대상에 오를 만큼 위협적인 존재가 됐다. 중국의 반도체 육성 전략이 점점 강화되고 있어 SMIC도 가파르게 성장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같은 분위기가 형성되자 삼성전자도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최근 정기인사를 통해 파운드리사업부를 이끌게 된 한진만 사장은 성숙 공정 사업화 확대를 주요 미션 중 하나로 설정했다.
추후 삼성전자가 8인치 생산능력(캐파)을 늘리진 않겠으나 가동률 향상을 위해 중국 공략에 박차를 가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발 중국 공세는 첨단 공정 위주로 이뤄지고 있어 8인치 분야에서는 협력할 여건이 충분하다. 같은 맥락에서 삼성전자는 화합물 반도체 라인을 준비 중이다. 전기차 강국인 중국에 매력적인 카드가 될 수 있다.
DB하이텍, SK하이닉스시스템아이씨, SK키파운드리 등도 중국 사업이 여의치 않다. 현지 파운드리 업계가 저가 공세 영향이다. 중국 업체들은 절반에 가까운 가격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레거시 라인 특성상 기술 차이가 크지 않아 원가경쟁력에서 밀리면 수주를 따내기 쉽지 않다.
SK하이닉스시스템아이씨의 경우 의도적으로 생산 시설을 중국으로 옮긴 바 있다. 팹리스 기업이 수천 개에 달하는 중국 시장에서 승부를 보겠다는 심산이었다. 현시점에서 실패한 선택으로 귀결되고 있다.
앞서 SK하이닉스시스템아이씨의 우시법인 지분 49.9% 은 중국 국영기업 우시산업발전집단(WIDG)에 넘어가게 됐다. 해당 법인 설립 당시 정해진 사안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가동률이 좀처럼 올라오지 않자 시간이 지날수록 SK하이닉스의 골칫거리로 전락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중국에 넘어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중국 지방정부 등에서 자국 파운드리 활용 시 메리트를 제공하는 식으로 외산 파운드리 의존도를 낮추려고 한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도 기회를 빼앗기는 추세"라고 분석했다.
◇인력 유출 등 변수, 늘어나는 난제 해결 방안은
문제는 국내 팹리스 업계까지 중화권으로 넘어가는 부분이다. 이미 인공지능(AI) 반도체를 개발하는 스타트업들은 삼성전자에서 TSMC로 갈아탔거나 병행하는 방향을 택했다.
이외에 하이엔드 공정이 필요하지 않은 팹리스 업체들은 중국 파운드리 협력사와 파트너십을 고려 중이다. 일부는 상당 부분 논의가 진척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파운드리 업계의 가동률이 올라오지 못하는 이유다.
다른 나라 고객을 유치하는 데도 관련 여파가 있다. 대표적으로 DB하이텍은 중국 경쟁사의 공격적인 행보로 미국 및 유럽 매출 비중이 10%대 후반에서 초반으로 축소했다. 삼성, SK 파운드리 계열사도 비슷한 실정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한국 소재, 장비사 등은 기회를 포착하고 있다. 넥스틴(광학 검사기), 에스앤에스텍(블랭크마스크) 등은 중국 수출로 재미를 보고 있다. 다만 중장기적으로 중국이 생태계 전반을 내재화하는 것을 추진 중이어서 수혜가 줄어들 가능성이 제기된다.
또 다른 이슈는 인력 유출이다. 중국이 한국 반도체 엔지니어를 영입하는 게 어제오늘 일은 아니나 파운드리 가동률 하락에 따라 갈 곳 잃은 이들이 중국으로 향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는 후문이다.
실제로 SK하이닉스시스템아이씨는 중국 근무 인력들이 한국으로 복귀하는 과정에서 DB하이텍으로 이직하는 길을 터줬으나 효과는 거의 없던 것으로 전해진다. 오히려 중국 등지로 이동하는 결과를 낳았다.
더불어 SMIC 등 중국 주요 반도체 제조사는 연봉 3배 인상 등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면서 국내 인재들을 유혹하고 있다. 국정원 등에서 중국행을 차단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지만 이를 회피하는 방법도 치밀해지면서 전면 봉쇄하기는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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