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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 국책과제, 투명하고 유연하게

권일운 기자공개 2012-01-19 08:48:36

이 기사는 2012년 01월 19일 08:4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국책 과제는 벤처기업에게 단비와도 같다. 별다른 수익 모델 없이 자본금만 까먹고 있는 초기 기업에게는 특히 그렇다. 창업 초기에 국책 과제 사업비를 받아 직원 월급 줬다는 벤처 창업자들의 경험담이 줄을 잇는다.

벤처캐피탈 입장에서도 국책 과제 사업자로 선정된 기업은 매력적이다. 최소 1년은 현금흐름을 일으킬 수 있어 안정적으로 회사가 운영될 것이라는 기대감에서다. 기술력을 검증받았다는 의미도 있다.

이런 까닭에 초기기업 상당수는 국책 과제 참여를 위해 총력을 기울인다. 지식경제부나 문화체육관광부 등 정부 부처로부터 사업비를 지원받아 신기술을 개발하고 이 기술을 향후 제품이나 서비스에 적용하기 위해서다. 매년 2~3월에 집중되는 사업자 공모에서 '간택'을 받기 위해 길게는 1년을 준비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과제 수주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라는 의견이 많다. 정부과제에 맛을 들인 벤처기업이 열정과 실행력을 잃고 타성에 젖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박성준 나인플라바 대표는 국책 과제의 '달인'으로 통한다. 그가 처음 설립한 회사인 아이토닉은 작게는 수천만원에서 크게는 4억원 규모의 연구 용역을 수주해 기술력을 갈고 닦았다. 아이토닉이 개발한 3D애니메이션 플랫폼 '클로즈업닷컴'도 국책 과제의 결과물이다.

하지만 "국책 과제 안 했으면 망했다"는 박성준 대표조차 거기에 '올인'해서는 안된다고 충고한다. 당장 돈이 급하다는 이유로 회사의 비전과 무관한 정부 과제를 진행하다 보면 정체성이 위태로워진다는 설명이다. 그 달콤함에 중독되면 새로운 구상을 할수 없다는 점도 치명적이다.

사업자 선정에서부터 사업비 집행 등의 과정에 업계의 현실이 대변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국책 과제 수요 예측과 심사 등 전 과정은 주관 부처가 위임한 대학 교수가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공신력 있는 전문가 집단인데다 특정 이해관계에 휘둘릴 개연성이 적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사업자 선정 과정에 '교수님'과의 친밀도가 결정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교수님'들이 대부분 20~30대인 초기 벤처기업가들에 비해 새로운 트렌드를 읽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량적인 잣대를 지나치게 중시한다는 점도 문제다. 정부과제 사업자 선정 공고를 살펴보면 최근 3년간의 회사 재무제표 제출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부채비율이 높은 기업은 '과락'을 당한다.

최소자본금 요건만 충족해 설립한 초기 벤처기업이 제대로 된 재무구조를 보유하고 있을리가 만무하다. 아무리 톡톡튀는 아이디어와 기술력을 가졌더라도 정량적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서류 심사에서 탈락이다.

갖은 역경을 뚫고 사업자로 선정된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주관 부처에서 미리 정해놓은 항목 외에는 한 푼도 지출할 수 없다. 정부 자금이 '눈먼 돈'으로 전락하지 않게 하려는 목적이다.

하지만 지출 항목을 살펴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업무상 수도권을 벗어날 일이 없는 업체에게 출장비를 편성해 놓았다거나 PC로 모든 연구를 진행하는 업체에게 신규 장비 도입비를 지급하는 식이다. 초기 벤처기업의 경우 사실상 직원 급여가 지출의 전부인데도 전체 사업비 가운데 인건비 비중이 50%뿐인 경우도 있다.

변화는 진행 중이다. 최근 들어 국책 과제 수요조사 단계에서부터 벤처캐피탈리스트나 벤처기업가가 참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예산 집행도 종전에 비해 융통성 있게 진행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게 중론이다. 국책 과제가 좀더 유연해지고 투명하게 진행돼야 한다는 게 업계가 내고 있는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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