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젤투자 늘어야 창업도 늘어난다 [엔젤투자 활성화를 위한 세미나]제2 벤처붐위해 엔젤투자 확대 등 제도적 뒷받침 필요
이상균 기자공개 2011-11-30 15:53:08
이 기사는 2011년 11월 30일 15:5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중소기업청의 가장 큰 고민은 창업 후 3년 이내의 초기기업 투자가 좀처럼 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벤처출자 규모를 늘리는 방안을 선택했다. 정책금융공사와 한국벤처투자, 국민연금을 필두로 수천억원이 쏟아졌다. 벤처캐피탈의 실탄이 늘어나면 초기기업 투자금도 자연히 늘어날 것이란 판단에서다.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일례로 1000억원 규모의 조합을 운영할 경우 많아야 투자기업이 20개를 채 넘지 않는다. 건당 50억원의 투자가 이뤄지는 셈이다. 이 정도 규모를 충족시킬만한 딜(deal)은 프리 IPO(상장 이전) 기업 투자에 국한된다. 투자규모가 10억원 안팎에 불과한 초기기업은 외면 받을 수밖에 없다. 초기기업 투자는 더 이상 벤처캐피탈에게 맡길만한 영역이 아닌 것이다.
중기청은 대안으로 엔젤투자자에게 기대를 거는 눈치다. 엔젤투자지원센터를 설립하고 100억원 규모의 엔젤투자매칭펀드를 결성했다. 의사결정이 빠르고 규모가 작은 엔젤투자자가 초기기업 투자에 제격이라는 분석이 깔려있다. 문제는 2000년대 초반 벤처붐이 꺼지면서 국내 엔젤투자가 급격히 축소됐다는 점이다. 정부의 정책변화로 엔젤투자자에게 주어지던 혜택이 줄어든 것이 영향을 미쳤다.
29일 서울 서초동 VR빌딩에서 열린 ‘엔젤투자 활성화를 위한 세미나'에서는 이 같은 현실이 반영된 탓인지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이날 행사에는 이민화 카이스트 교수와 고영하 고벤처포럼 회장, 강중길 카이스트-AVM 엔젤펀드 회장, 남민우 다산네트웍스 대표, 김병하 네오스페이스 대표, 권혁태 쿨리지인베스트먼트 대표, 윤범수 중기청 벤처투자 과장 등이 참석했다.
이민화 - 현재 한국의 경제성장 방식으로는 일류화가 불가능해 보인다. 기존 대기업 위주의 경제성장에서 벗어나 벤처기업 육성에 나서야할 시점이다. 특히 초기기업 육성이 중요하다.
고영하 - 10년전 10대 재벌이 고용한 인력은 200만명이었지만 지금은 130만명에 그친다. 국내 재벌들은 이제 고용 없는 성장기에 접어들었다. 더 이상 대기업 위주의 경제성장으로는 고용 창출이 어렵다.
미국의 경우 대학 졸업생의 70%가 창업을 준비한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창업이 활발해야 고용이 늘어나고 국가 경제가 발전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이번 엔젤투자지원센터 설립과 엔젤투자매칭펀드 결성은 의미 있는 변화라고 생각한다.
창업 활성화를 위해서는 장기적인 관점이 필요하다. 우선 어린 학생들에게 기업가 정신 교육을 시켜야 한다. 특히 엔젤투자와 창업 교육에 초점을 맞춰야 우리나라도 미국, 이스라엘 같은 창업국가가 될 수 있다.
이민화 - 우리나라 창업의 대부분은 생계형 창업에 몰려있다. 썩 좋은 현상이 아니다. 이보다는 고품질 창업이 늘어나야 한다.
권혁태 - 엔젤투자는 기업이 설립돼 생존을 다투는 시기에 투자가 이뤄진다. 중요성이 크다. 벤처캐피탈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투자 이후, 철저한 관리 및 지원, 멘토링(mentoring)이 이뤄진다는 점이다. 상당한 수고와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다. 이 때문에 엔젤투자자에게는 기업의 장래성을 보는 안목과 함께 투자 기업에 대한 애정이 절실하다. 외풍에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투자 철학도 필요하다.
강중길 - 엔젤투자는 현재의 벤처산업을 만들어 내는데 한 축을 담당했다. 특히 초기기업에 씨드머니(seed money)를 제공해 성장을 돕는 자양분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문제는 국내 엔젤투자자가 점점 줄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과 비교할 때 차이가 더욱 두드러진다.
2010년 미국 엔젤투자자는 총 26만5400명에 달했다. 이들이 6만1900개 벤처기업에 201억달러를 투자했다. 벤처캐피탈에 비해 투자기업 수는 25배, 투자금은 3배가 넘는다.
우리나라의 경우 벤처붐이 한창이던 1999년부터 2006년에 누적기준으로 5만8278명이 1조5737억원을 투자했다. 하지만 지난해 엔젤투자 규모는 326억원으로 급감했다. 전체 벤처투자액의 5%에도 미치지 못한다. 엔젤투자자도 백여명 수준으로 줄었다. 벤처붐 시절 엔젤투자자들이 ‘묻지마 투자'를 하면서 손실을 본 탓이 크다.
남민우 - 과거 벤처붐을 주도했던 업체들의 도덕적 해이현상도 벤처산업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됐다. 당시 거품이 꺼지면서 벤처와 코스닥이라고 하면 사기꾼이라는 인식이 많이 퍼졌다. 최근에는 정부에서조차 벤처라는 말을 금기시하는 분위기가 감지될 정도다. 부정적인 인식이 자리 잡은 것이다.
이런 영향 때문인지 우리나라 코스닥 시장은 벤처 거품이 꺼지고 1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회복을 하지 못하고 있다. 반면 도덕적 해이 현상과는 거리가 멀었던 미국은 정상궤도로 돌아온 상태다. 지난해 미국의 엔젤투자는 전년대비 13%가 증가했다고 한다. 벤처 거품 붕괴 이전과 비슷한 수준이다.
강중길 - 이제 벤처 거품 시대의 상처는 많이 아물었다. 벤처생태계의 선순환 고리를 어떻게 회복하느냐가 핵심이다. 중기청이 직접 나서야 한다. 미국처럼 국가가 공인하는 엔젤투자자를 육성해 벤처생태계를 복원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 30년 경력의 전문 엔젤투자자가 수두룩하다.
이민화 - 벤처 붐이 일었던 시절, 좋은 제도가 많았다. 엔젤투자세액 공제제도, 스톡옵션 등이 대표적이다. 당시만 해도 엔젤투자를 했을 때 소득공제율이 30%에 달했다. 그런데 2002년 벤처 거품 방지를 위해 벤처 인증제도 변경, 코스닥 적자 상장 금지, 주식옵션제의 규제 강화, 엔젤 투자세액 공제 축소 등 4대 ‘벤처 건전화 정책'을 발표하면서 치명타를 맞았다. 개선이 아닌 개악이 이뤄진 셈이다. 엔젤투자자 육성을 위한 제도개선이 시급하다.
윤범수 - 엔젤투자 활성화를 위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우선 엔젤투자 세액 공제율을 10%에서 30%로 늘리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세재 대상도 벤처기업에서 초기기업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엔젤투자자가 투자한 초기기업 지분을 3년 이내에 벤처조합이 인수할 경우 이를 벤처캐피탈의 투자실적으로 인정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이 같은 내용이 담긴 법안이 현재 기획재정위원회에 발의가 돼 있다. 내년에는 M&A 시장 활성화를 위한 검토도 진행할 방침이다.
이민화 - 짚고 넘어갈 문제가 있다. 투자금 회수(엑시트) 시장 활성화다. 국내 벤처캐피탈들은 초기기업에 투자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미국 벤처캐피탈은 약 20%를 초기기업에 투자한다. 이 같은 차이점이 생긴 원인은 엑시트 기간이 너무 길기 때문이다.
보통 엑시트 방안으로 IPO를 많이 택한다. 일반적으로 국내 기업이 IPO에 걸리는 시간이 10~12년이다. 기술개발에 5년, 시장개척에 5년, 투자자들에게 제대로 된 회사다운 모습을 갖추는데 2년이 걸린다.
집단 의사결정방식을 택하고 리스크가 큰 투자를 피하는 국내 벤처캐피탈에게는 너무 긴 시간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중간 회수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 M&A가 가장 현실적이다.
권혁태 - 지난해 미국에서는 벤처캐피탈의 엑시트 방안 중 M&A가 차지하는 비중이 72%에 달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아직 시장이 성숙되지 않은 상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우리나라는 대기업들이 굳이 M&A를 하지 않아도 종속적인 관계를 이용해 중소기업의 역량과 기술을 흡수하는 것이 쉽다. 또한 우리나라에는 M&A를 주도할만한 대형 사모투자전문회사(PEF)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의 경우 PEF들이 경쟁사간 합병을 주도해 가치를 높이는 사례가 많다.
남민우 - 다산네트웍스에서 3년간 여러 가지 신사업을 추진해봤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아무래도 회사가 매출 2000억원을 넘으면서 안정적인 단계에 진입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인것 같다. 관리모드로 넘어간 조직은 혁신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오히려 조직내 혁신 보다는 M&A를 통해 외부에서 해결책을 찾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이민화 - 선도기업은 연구개발(R&D) 비용이 많다. 반면 관리비업은 R&D 비용이 줄면서 혁신역량이 줄어든다. 도리어 M&A 비용이 늘어난다. R&D 역량을 외부에서 사오는 것이다.
고영하 - M&A에 대한 필요성이 높지만 국내에서는 5년내 시장 활성화는 아직 어렵다고 본다. 권위주의적인 문화가 걸림돌이다. 일례로 대기업이 벤처기업을 인수해도 핵심 인력이 권위주의 문화를 견디지 못하고 이탈한다. 사고방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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