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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센 지분거래, 명분이 뭔가

문병선 기자공개 2012-03-12 08:27:34

이 기사는 2012년 03월 12일 08:2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많은 기업이 가업 승계의 어려움을 호소한다. 상속 또는 증여세 부담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특정기업의 지배적 주식 100억원 어치를 2세에게 증여했을 때 약 25억원 가량을 세금으로 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고 이는 여간 부담이 아니다. 대다수 중소·중견 기업의 2세는 수십억원의 막대한 현금을 들고 있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넥센그룹의 최근 지분 이동 역시 이런 관점에서 보면 '묘안'을 찾아냈다고 볼 수 있다. 증여와 납세 과정의 어려움을 거치지 않고 그룹 지주회사의 최대주주 자리를 2세가 깔끔하게 넘겨받았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넥센그룹의 2세 승계 과정은 가업 승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견 기업 사이에서 '교본'이 될 정도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간과할 수 없는 문제는 이처럼 넥센그룹의 경영권 승계가 '승계' 문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들의 문제와 한 묶음으로 동일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일각에서는 CJ나 중외제약 등 대기업과 '절세'와 '합법적' 측면에서 같은 사례로 다뤄지기까지 한다. 하지만 넥센그룹은 가업 승계에 어려움을 겪는 여타 기업이나 지주회사 전환을 위해 '묘수'를 짜내야 하는 대기업들의 문제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성격을 갖고 있는 사안으로 다뤄져야 한다.

넥센그룹이 CJ와 LG 등 지주회사로 전환했던 대기업과 다른점은 이미 대주주 일가의 지주회사 지분이 43%를 넘었다는 것이다. CJ는 2007년말 지주회사 전환 작업 당시 이재현 회장의 지분율이 19% 남짓에 불과했다. 이 회장을 포함한 자회사 CJ제일제당의 투자자 지분을 공개매수 한 이후 모회사 CJ의 지분을 주식으로 교부했다. 이 회장은 그제서야 그룹 지주회사 지분을 43%로 늘려 안정적 지배구조를 갖추게 됐다.

반면 넥센그룹 강병중 회장 일가의 지분율은 이미 43%를 넘었다. CJ처럼 자회사 주식을 현물출자하고 모회사 주식과의 스왑(Swap)을 통해 이 지분율을 63%로 끌어 올릴 이유가 없어보이는 데도 동일한 방식을 사용했다. 안정적 지분율을 더욱 견고하게 끌어올린 것으로, '불가피성' 면에서는 큰 차이를 보이는 자본거래다.

넥센그룹은 가업승계에 어려움을 겪는 중견기업의 사례와도 비슷한 듯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역시 큰 차이를 보인다. 가업을 이어받을 2세의 현금동원력이다.

일례로 중견기업인 S기업 오너는 고등학생인 2세에게 회사의 지분을 넘겨주려 했지만 자금사정으로 여의치 않았다. 증여세를 물어야 하는데 고등학생이 그만한 자금을 가질 턱이 없다. 이 기업이 택한 방식은 일단 가치가 낮은 비상장기업의 주식을 2세에게 먼저 증여하는 것이다. 비상장 기업을 키워 2세의 자산을 늘려주는 방식은 '가업 승계 관련 컨설팅 산업'에서 가장 일반화돼 있는 방식이다.

넥센그룹의 강호찬 사장도 처음에는 비슷한 방식으로 후계 승계 작업에 착수했다. 2000년대 초반 부친과 모친으로부터 넥센타이어와 ㈜넥센의 지분 일부를 증여 받았다.

문제는 그 이후의 선택이다. 강 사장은 약 10여년이 지나 넥센타이어 지분만으로 약 2000억원에 육박하는 자금 동원력을 갖게 됐다. 승계에 어려움을 겪는 다른 중견기업이 부러워 할 만한 준비를 이미 마친 셈이다. 강 사장은 지주회사가 될 ㈜넥센의 지분을 인수하고 싶다면 언제든지 넥센타이어 지분을 매각해 그 자금으로 ㈜넥센의 지분을 인수할 수 있던 상황이다. 넥센타이어의 시가총액은 약 1조5000억원대, ㈜넥센의 시가총액은 1700억원대, 그리고 두 회사 모두 상장회사라는 점을 감안하면 어렵지 않다.

굳이 복잡한 자본거래가 필요하지 않은 상황인데도 강 사장은 ㈜넥센에 본인의 넥센타이어 지분을 넘기고 그 대가로 ㈜넥센의 신주를 지급받는 방식으로 후계 승계 작업을 마쳤다.

가업 승계의 문제는 오너 일가의 주된 고민거리 중 하나다. 거대 다국적 기업인 카길, 벡텔, 코카콜라, 록펠러 가문도 다르지 않다. 이들이 신출귀몰한 방식을 동원하는 때는 공식적인 방식으로 승계가 여의치 않았을 때다. 이럴 때는 부의 대물림에 대해 부정적 시선을 의식하면서도 '불법'의 여지가 없다면 "불가피하다"는 사회적 공감대를 이끌어 내기 위해 애쓴다.

넥센도 과연 그런가. ㈜넥센이 자산가치 평가 방식을 '원가모형'에서 '재평가모형'으로 바꾸면 지주회사 전환이 매우 쉬웠다는 점, 지주회사 전환 방식이 '주식 스왑' 방식 말고도 대략 세가지가 넘었다는 점, 그리고 후계 승계 문제가 그리 급박하지 않았다는 점 등 때문에 이번 넥센그룹의 자본거래에 대해서는 고개가 갸우뚱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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