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bell

전체기사

내 편이라고 믿어도 될까요

강종구 기자공개 2013-01-22 22:49:16

이 기사는 2013년 01월 22일 22:49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A 은행의 고객 상담실 직원들에게는 똑같은 버릇이 있다. 고객의 전화에 응대를 할 때면 "네~ 네~네~…"를 연발한다. 거기서 거기인 고객의 불만을 매일 듣다 보니 빨리 전화를 끊고 싶은 마음이 만들어 낸 버릇이다.

누구랄 것 없이 모두 그러하니 자신들끼리는 이상하지도 않다.어쩌면 그런 버릇을 스스로 알아채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전화 속 상대는 그 뉘앙스를 민감하게 느낀다. '알았으니 그만 끊어라' '또 그 소리냐. 듣기 싫다'란 속말이 크게 들린다. 종종 상담이 아니라 싸움이 되고 만다.

부모가 자꾸만 멀어지는 자식과 친해지는 좋은 방법은 남의 흉을 함께 보는 것이라고 한다. 나도 아니고 너도 아닌 남의 흉을 봄으로써 둘은 '우리', 내 편이 된다는 것이다. 비슷한 얘기로 부하 직원이나 아이와 대화할 때 마주 보지 말고 옆에 앉으란다. 마주보면 권투선수가 링위에 올라갈 때 처럼 저절로 가드(guard)가 올라간단다. 맞는 얘기다. 옆에 있어야 내 편이다. 내 편이어야 친구다. 사랑은 마주 보는 게 아니라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란 말이 그래서 나왔을 게다. 맞는 얘기인 줄은 알지만 막상 닥치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이긴 하다.

과거 10년 동안 종합주가지수는 600포인트에서 2000포인트로 3배 이상이 됐다. 수익률로는 200%가 조금 넘는다. 채권에 투자했으면 연평균 이자를 5%씩 받았다고 치고 복리로 60% 가량의 수익을 냈어야 한다. 투자의 달인인 펀드매니저들이 운용하는 수익증권이라면 더 큰 성과를 내지는 못했더라도 벤치마크 정도는 벌어줘야 수수료를 받는 게 떳떳할 수 있다.

현실은 이런 합리적인 기대를 크게 벗어난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2003년부터 2011년까지 9년간 가계는 펀드 투자로 약 30조 원을 허공에 날렸다. 민간기업은 10조 원을 날렸다. 개인이나 기업이 돈을 맡긴 신탁도 펀드에서 이익을 남겨주지 못했다. 하지만 증권사들은 같은 기간에 펀드로 2조5000억 원 가량을 벌었다. 투자기관(자산운용사 종금 투자일임 등)은 14조 원의 수익을 챙겼다. 힘 있는 고객인 연기금이나 보험사도 적거나 많을 뿐이지 부를 늘렸다.수익을 원금으로 나누면 개인은 -27%, 기업은 -30%인데 증권사는 +27%, 투자기관은 무려 +179%가 된다. 놀라운 반전이 아닐 수 없다.

돈이 주인을 차별하는 것도 아닐텐데 금융회사의 최종 고객인 개인과 기업은 재산을 날렸고 고객에게 펀드를 판 증권사와 고객의 돈을 굴리는 일을 업으로 하는 투자기관은 벌었다. 물론 그들에게 지급된 판매수수료와 운용수수료는 별도의 수입이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개인투자자들이 펀드를 고점에 가입했다가 저점에 팔고 나온다거나, 판단력이 부족해 항상 실적 나쁜 펀드만 샀는 지도 모른다. 그 외에도 증권사나 자산운용를 탓하기 어려운 이유들이 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고객의 자산을 자신의 그것처럼 잘 관리하고 증식해 주지 못했다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수수료(판매수수료 운용수수료) 수입을 늘리기 위해, 펀드 운용비용을 줄이기 위해 고객에게 잦은 환매와 펀드 갈아타기를 권했는 지도 모른다. '수수료를 내고 났더니 오히려 마이너스더라'는 말은 절대 지어낸 말이 아니다. 증권사에게, 운용사에게 고객은 내 편이 아니었던 거다.

비단 펀드에만 해당하는 건 아닐 것이다. 오로지 영업만 부르짖는 사장, 분석가가 아니라 삐끼로 전락한 애널리스트, 질보다 양을 따지는 투자은행가라면 '편'의 이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어쩌면 작금의 증권사 위기는 그들의 합작품일 것이다.

요즘 증권업계의 화두는 자산관리(Wealth Management;이하 WM)다. 유가증권 거래 수수료를 받아 먹고 살던 증권사들이 이제는 대형사 중형사 할 것 없이 WM만이 살 길이라며 조직을 바꾸고 캐치프레이즈도 바꾸고 인력을 대대적으로 재배치한다. 가능한 많은 거래를 유발해 중개 수수료를 극대화하는 것에서 고객의 재산을 증식해 주고 그 대가를 받는 것으로 아예 수익모델의 개념이 바뀌고 있다. 굉장한 궤도의 수정이라 만약 실패한다면 그 상처는 크고 깊을 것이다.

걱정이다. 고객을 내 편으로, 친구로 삼아 보지 않은 우리 증권사들이 과연 정성을 다해 재산을 증식시켜줄 수 있을까. 수익모델보다 조직보다 사람보다 먼저 그 마음을 바꿔야 할텐데 그럴 수 있을까.

< 저작권자 ⓒ 자본시장 미디어 'thebell',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주)더벨 주소서울시 종로구 청계천로 41 영풍빌딩 5층, 6층대표/발행인성화용 편집인이진우 등록번호서울아00483
등록년월일2007.12.27 / 제호 : 더벨(thebell) 발행년월일2007.12.30청소년보호관리책임자김용관
문의TEL : 02-724-4100 / FAX : 02-724-4109서비스 문의 및 PC 초기화TEL : 02-724-4102기술 및 장애문의TEL : 02-724-4159

더벨의 모든 기사(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 무단 전재 및 복사와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copyright ⓒ thebell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