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6년 03월 23일 07:4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O2O기업 투자를 검토할 때 딱 한가지 먼저 살펴보는게 있습니다. 카카오가 진출을 준비 중이냐 아니냐, 혹은 진출 가능한 영역이냐 아니냐를 확인합니다"최근 저녁 자리에서 만난 한 베테랑 심사역은 관심있게 보는 스타트업이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4000만 명이 넘는 이용자를 보유한 카카오 플랫폼의 시장 장악 능력이 충분히 위협적이라는 의미로 들렸다.
연초부터 퀀텀점프를 노리는 숱한 스타트업들이 투자 기관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특히 다채로운 아이디어를 무기로 속속 등장하는 O2O 기업은 단연 화두다. 'Online to Offline'의 약자인 O2O는 말그대로 정보의 유통 비용이 저렴한 온라인과 실제 소비가 발생하는 오프라인의 장점을 엮은 사업 모델을 총칭한다. 배달·부동산 등 1세대를 시작으로 이제는 택시, 대리운전, 꽃배달, 이미용, 주차장, 청소 등 그 분야가 생활 곳곳으로 파고들고 있다.
벤처 업계의 맏형으로 꼽히는 카카오도 분주하다. 강력한 플랫폼을 앞세운 카카오는 커머스, 미디어, 콘텐츠는 물론 네비게이션, 택시, 대리기사까지 사업 확장에 한창이다.
카카오의 O2O 시장 진출은 대중을 끌어들인다는 장점이 있다. 일례로 카카오택시가 등장하며 너도 나도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택시를 부르기 시작했다. 콜택시의 이용 방법이 전화에서 어플리케이션으로 전환되며 사용자가 빠르게 유입됐다.
하지만 선행 업체였던 리모택시는 큰 타격을 입었다. O2O 사업은 특성상 인지도 확대를 위해 지속적인 홍보와 마케팅에 큰 비용이 필요하다. 그러나 카카오의 시장 독식을 우려한 투자자들이 선뜻 후속 투자에 나서지 못했고, 자금 유치가 어려워진 사업자는 결국 경영난에 시달리게 됐다. 폐업은 예고된 수순이었다.
특히 O2O 업체들은 사업 초기 수익 모델 구축보다 오프라인 사업자 연계와 인지도 확대에 주력할 수 밖에 없다. 시장 안착에 주력하던 리모택시 역시 당장 유료화 모델을 차용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이 때 당장 수익성을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카카오는 치명적 경쟁자였던 셈이다. 이 같은 현상은 카카오가 진출을 선언한 대리운전·이미용 시장에서도 또 다시 반복될 수 있다.
시장의 확대와 성숙을 위해서는 자금력을 갖춘 핵심 플레이어의 등장도 필요하다는 점에는 공감한다. 공정한 경쟁은 성장의 윤활유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타트업이 고군부투하며 선점한 시장에 물량공세를 퍼붓는 카카오의 모습은 낯설게만 느껴진다.
카카오는 앞서 초기 기업을 발굴해 지분 투자하고, 때론 과감하게 스타트업을 인수하기도 했다. 창업자의 아이디어와 기술력을 존중하는 카카오의 행보는 아이디어 카피캣(copycat)에만 집중하던 기존 대기업과는 차별화된 모습으로 비쳐졌다. 카카오가 창업 생태계의 포식자가 아닌 상생 속에서 성장동력을 찾는 창업 선배의 면모를 이어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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