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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국민연금 피해만큼은 오해 풀겠다" ⑧계열사 주가 고려한 판단…비율만 문제삼기 어려워

김일문 기자공개 2017-08-11 08:10:07

이 기사는 2017년 08월 10일 07:0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법정 최후 진술에서 가장 억울해 한 대목은 국민연금이다. 구치소에서 구입한 360원짜리 초록색 노트에 적어 온 입장을 발표하며 국민연금에 피해를 끼쳤다는 부분을 언급할 때엔 '정말 억울하다'며 울먹이기까지 했다.

이 부회장의 진술 대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국민연금은 피해를 본 것이 없을까. 아니면 특검 주장대로 국민연금이 막대한 피해를 입은 것일까.

검찰은 지난 8일 뇌물공여 혐의로 구속된 이재용 부회장에 대해 징역 12년형을 구형했다. 이날 이 부회장은 최후 진술에서 "(제가)아무리 못난 놈이라도 서민의 노후 자금인 국민연금에 손해를 끼치고 그런 욕심을 내겠냐"며 "너무나 심한 오해이고, 억울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 오해가 안 풀리면 앞으로 삼성을 대표하는 기업인이 될 수 없다"고까지 항변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지난 2015년 5월말에 합병을 결의했다. 당시 국민연금은 삼성물산 지분 11.21%, 제일모직 지분 4.84%를 각각 보유중이었으며, 두 회사 지분의 가치는 1조 2000억 원 수준으로 비슷했다. 특히 국민연금은 삼성SDI 등 계열사와 총수 일가를 제외한 단일 최대주주였다는 점에서 제일모직과의 합병 성사를 판가름 할 결정적인 위치에 있었다. 양사간 합병은 특별 결의 사항으로 참석주주의 2/3 이상 참석, 발행주식의 1/3 찬성 의견을 받아야 한다.

2015년 7월 17일 열린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선 1억6086만주의 주주가 참석해 참석률 83.57%를 보였고 이중 1억3235만주가 투표에 참여, 9202만3660주의 찬성을 얻었다. 찬성률은 69.53%였다. 국민연금이 지분 11.21%에 대해 찬성 의사를 표시하지 않았다면 찬성률은 58%로 떨어져 삼성물산의 합병을 장담하기 힘들었다. 국민연금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 '키' 역할을 했다.

논란의 핵심은 합병 비율과 합병 찬성 과정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국민연금이 실질적인 피해를 입었느냐에 달려 있다.

합병 비율(삼성물산 0.35:제일모직 1)은 삼성물산에게 불리해 보인다. 자산 총계 기준으로 덩치가 큰 삼성물산의 주식 가치가 제일모직의 3분의 1 수준으로 합쳐지기 때문이다.

합병 비율을 정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비상장 회사의 경우 자산가치나 이익을 기업가치로 환산해 합병 비율을 산정할 수 있다. 하지만 이같은 합병 비율 산정은 각종 가정과 주관이 개입된다.

상장 기업의 경우 주가를 기준으로 합병 비율을 정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다. 외부 변수가 개입하지 않고 주관이 섞이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삼성이 삼성물산의 주가가 낮은 시점을 선택할 순 있다. 하지만 삼성물산의 주가를 의도적으로 떨어뜨렸다는 명백한 증거가 없는 한 합병 비율을 문제삼긴 어렵다.

더욱이 국민연금은 삼성물산 뿐만 아니라 제일모직의 주주였다. 합병 비율로 제일모직 주주에게 유리한 결과가 나왔다면 국민연금도 일정 부분 그 혜택을 누리게 된다. 삼성물산 주주로썬 손해라고 치더라도 제일모직 주주로썬 이익이 되는 셈이다.

국민연금은 주식시장의 큰 손이다. 국민연금이 지분을 보유한 삼성 계열사는 10곳이 넘고 삼성물산 합병 결정 당시 투자 지분 가치는 시가로 22조 원에 달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반대해 삼성 관련주들이 출렁일 경우 국민연금은 또 다른 평가손실을 입을 수 있었다.

올해 상반기 현재 국민연금이 보유 중인 삼성그룹 계열사의 지분 가치는 38조 원을 웃돈다. 국민연금은 삼성 관련 투자로 2년 사이에 16조원의 이익을 올렸다. 특히 삼성전자의 경우 지분 평가금액이 작년 말에 비해 무려 7조 원 넘게 늘어나 국민연금 투자 수익에 큰 기여를 했다.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 과정도 논란이 된 바 있다. 국민연금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외부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에 맡기지 않고 기금운용본부 내 투자위원회에서 직접 심의·의결한 것을 두고 외압 의혹도 제기됐다.

국민연금의 외부 위원회 결정은 의무나 강제사항이 아니다. 대부분의 의사결정은 응당 국민연금 기금운용분부에서 처리한다. 주주 표결을 통해 결정해야 하는 중요 사항 가운데 찬성과 반대를 가늠하기 애매한 사안의 경우에만 외부 위원회에 맡긴다.

무엇보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직전에 단행된 SK㈜와 SK C&C의 합병에서 곤란한 상황에 처해졌던 경험이 학습효과로 작용했다. 당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SK㈜와 SK C&C의 합병에 대한 의사결정을 외부 위원회에 맡겼고 반대표를 행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병은 성사됐고, 국민연금은 주식매수청구도 행사하지 않은 채 합병 법인의 지분 8.4%(1분기 기준)를 계속 보유하게 됐다. 사안이 더 복잡하고 중대한 삼성물산의 경우 무작정 외부위원회에 의견을 구하는 것이 더 난감한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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